life · 오늘의 화두

결혼 41주년

10월 1일 오늘은 결혼 41주년이 되는 날이다. 눈을 감고 생각하니 노경혜를 아내로 맞아 가족을 이루고 지내온 지난 세월이 주마등같이 지나간다. 신혼시절 전주, 서울, 부산을 오가던 일, 두 딸 선영과 윤영을 얻은 일, 하바드대학으로 연구년을 떠난 일, 그곳에서 아들 종인을 얻은 일, 전주에서 첫 아파트를 장만한 일, 부모님 질환으로 예수병원을 수없이 오가던 일, 어머님 소천하신 일, 서울대학교로 직장과 집을 옮긴 일, 아버님 수술 후 돌아가신 일, 강남에 내 아파트를 구하고 이사한 일, 아내가 권사 취임한 일, 두 딸이 결혼하고 두 사위를 얻은 일, 네 명의 외손주를 보게 된 일, 서울대를 정년하고 광주과기원 석좌교수로 부임한 일, 세종으로 이사를 한 일 등…

부부의 인연이란 참 묘한 것이다. 아내는 결혼 2년전 이대 대학원에 재학중일 때 선배의 소개로 만났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다소곳하며 차분했다. 눈매가 곱고 사람을 편하게 해 주어 마음에 들었지만 쾌활하거나 적극적인 스타일은 아니었다. 나도 재미있는 대화거리를 찾는데는 재주가 없는 탓에 우리의 데이트는 늘 첫 미팅하는 사람 마냥 데먼데먼 했던 것 같다. 처가 부산여전에 교수로 채용되어 처가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간 후에는 한동안 만나지도 못했다. 이후 다시 연락이 닿았던 때 곧바로 부산으로 달려간 날이 생각난다. 그 날의 재회가 결혼으로 이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육사 교수부에서 지내던 3년의 교관생활은 재미있었지만 살림살이가 힘들었다. 내 적은 교관 월급으로 정년 후 서울로 올라오신 부모님과 대학을 다니던 동생 양규의 생활을 지탱해야 했다. 1983년 새해 첫날을 나는 기도원에서 보냈는데 군복무가 끝나는대로 가능하다면 직장을 얻기를 기도했다. 또 결혼이 대책일리도 없었을텐데 결혼할 수 있기를 원했다. 놀랍게도 9월부터 전북대학교 교수로 임용이 되었고 10월에 결혼식을 올렸으니 100 퍼센트 응답이 된 셈이다. 아내가 다니던 부산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장소가 낯설어서였는지 먼길 오신 하객들에 대한 송구한 마음때문이었는지 마음이 부산했고 내가 자주 웃었다고 친구들의 핀잔을 들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제주로의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전주에서 하숙생활을 계속했고 아내는 처가가 있는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결혼 후 주말마다 서울, 부산, 전주를 오가느라 힘들었던 생각이 난다. 아내가 전주로 직장을 옮긴 후 우아아파트 16평 전셋집에서 본격적인 신혼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작은 아파트가 좁게 느껴지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 후 41년을 살아오면서 아파트 평수도 늘어나고 큰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아왔고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에 처하지 않았으니 감사한 일이다. 서울대 교수로서 뛰어난 제자들을 만났고 정년 후에도 석좌교수로 가르치는 복을 누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1남 2녀의 소중한 아이들을 선물로 얻은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가정을 꾸리기 위한 마음 준비는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남편으로서의 역할, 자식으로서의 역할, 아빠로서의 역할이 어떠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거나 배우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저절로 잘 되리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좋은 교수가 되려고 애썼던 것에 비해 좋은 남편과 부모가 되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던 것이다. 가끔씩 어머니의 서운해 하시는 모습과 처의 힘들어하는 모습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적도 있었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내 욕심을 강변하기도 했다. 가족들에게 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인데 또 다른 한켠에 미안한 마음도 자리하고 있는 이유다.

결혼 41주년을 맞이하여 그간의 삶을 돌아보니 감사한 것 일색이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기도 덕분일 것이다. 간간히 이런 저런 아쉬움이 생기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을 생각한다. 넘치는 복을 받은 41년이 아니었던가.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는 찬송가사를 떠올린다. 진심으로 감사한다. 내가 받은 이 축복이 자녀들에게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세상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요동하겠지만 봄 새싹의 신선하고 역동적인 생명력으로 잘 이겨낼 힘을 얻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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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식과 감탄

무더위가 계속이다. 에어컨을 켜고 산과 강을 찾아도 열대야의 고통을 참기가 어렵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교훈을 따라 여름을 노래한 두 편의 시를 화선지에 담았다. 서울대 화묵회 전시회 출품작으로 준비한 것이지만 무더위와 싸우는 내 나름의 방편이기도 했다.

두보의 夏夜歎은 ‘여름밤의 탄식’이란 제목 그대로 참기 어려운 무더위 속에서 나온 시다. 시인은 푹푹 찌는 열기 속에서 ‘만리청풍’을 기대하면서도 달, 빛, 바람, 벌레 등 만물이 크고 작음의 구별없이 제 스스로 편안코자 하는 것이 본성임을 확인한다. (物情無巨細 自適固基常) 이런 깨달음은 후반부에서 변방의 병사들의 고통스런 모습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져 세상사에 대한 탄식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나는 자적의 소중함을 노래한 전반부를 행초로 썼다.

안도현의 시는 여름으로 오는 길목에 만나는 싸리꽃, 산벌, 칡꽃 향기, 백도라지 미동, 소나기 소리, 매미울음 등을 ‘공양’이라는 화두 속에 담았다. 뭇 생명의 소리와 향기와 미동이 제각기 무언가를 향한 정성스런 기원이라고 본 시인의 시선이 놀랍고 그 무게감을 근, 평, 치, 발, 되 같은 척도로 표현한 신선한 발상이 아름답다. 이런 시인의 서정에 공감하면서 나도 대상마다 서로 다른 서체로 작품을 구성했다.

나라 안팎의 인간사를 보면 ‘탄식’을 금하기 어려운 요즈음이다. 무더위가 더하는 짜증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만물이 제각각의 아름다움, 지극함, 기원과 정성들을 지니고 있다는 섭리를 확인하는 것은 이런 답답함을 이기게 하는 소중한 깨달음이다. 힘든 더위와 성가신 벌레 조차도 우주와 나를 이어주는 생명 연쇄의 고리임을 확인한다면 두보와는 달리 ‘탄식’에서 시작해서 ‘감탄’으로 끝나는 발상의 전환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분들의 건강한 여름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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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기본

2024년 서울대 화묵회 전시를 위해 작품을 준비했다. 여름의 시상을 표현하는 것이 주제여서 두보의 한시 한편과 안도현의 시 한편을 각기 반절 크기의 한자와 한글로 썼다. 두보의 ‘夏夜歎’은 더운 여름날의 무더위와 씨름하면서 시인의 생각을 피력한 시인데 전반은 자연 속에서의 감흥을 후반은 변방의 병졸들을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 안도현의 시는 봄에서 여름을 지나면서 온 세상 만물의 움직임 속에 담긴 생명의 연동과 역동을 ‘공양’으로 포착한 아름다운 안목이 와 닿는 작품이다.

두보의 한시는 행초서로 써보고 싶었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괴로운데, 어디서 만리의 바람을 얻어 내 옷을 흔들게 할까’ – 내용도 그렇거니와 자유로운 감성을 표현하기엔 운필이 자유로운 행초서가 나을 것은 분명했다. 마침 얼마전부터 왕희지의 ‘초결가’를 임서하면서 초서필법을 익혀보던 중이어서 도전하는 마음도 얼마간 있었다. 과연 자유로이 획을 이어가니 필의도 살아나고 글씨 쓰는 재미도 더하는 듯 했다. 여러 장을 써 보면서 점점 대담해지기도 하고 멋을 부려보기도 했다.

문제는 쓸 때의 호기에 비해 쓰여진 작품은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파지가 늘어나는만큼 글씨는 더욱 흐트러지고 잘못된 붓놀림은 더 늘어났다. 결구가 괜찮으면 장법이 마음에 들지 않고 구도가 괜찮다 싶으면 낙관 글씨가 분위기를 망쳤다. 어떤 부분을 바꾸면 좋겠다 마음을 먹고 새로운 화선지를 펴보지만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전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글씨가 되곤 하는 반복을 계속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푸념을 늘어놓다가 급기야 종이 탓을 하기까지 했다.

자고 일어나 이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보면 이전 것이 더 나은 듯 싶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멋을 부린 글씨는 운필이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고 꼼꼼하게 쓴 글씨는 어딘지 부자유스럽고 초보자 냄새가 난다.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데 왕희지 작품을 꿈꾸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구나 싶은데 즐겁게 글씨를 쓰는 아마추어의 그런 마음을 탓하기는 어렵다. 내 눈이 높아지는 것만으로도 성장이려니 생각하기도 한다.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왕희지의 ‘초결가’를 다시 임서해 본다. 그 자획을 통해 운필의 강약과 꺾임을 확인할수록 내가 쓴 글에서 ‘속기’라 불리는 잘못된 붓놀림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결국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핵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법이 몸에 밸 때 비로소 운필도 자유로와지는 법일 터… 욕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평범하고도 당연한 원리를 깨닫게 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교훈이라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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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평화

폭력과 평화에 대한 책자를 기획한 후배 연구자로부터 책의 추천사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목차를 보니 전쟁을 위한 무력강화는 물론이고 사회집단간의 억압과 문화적 폭력까지도 극복하자는 적극적 평화론의 기조를 담고 있는 책자처럼 여겨졌다. 한동안 생각을 하다가 고사했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도 저런 생각을 가져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내가 추진한 새로운 평화학 프로그램의 핵심 지향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전쟁과 폭력이 지구 곳곳에서 출현하는 시대를 맞이해서 이런 판단을 그대로 밀고 갈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무엇보다도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류의 현 문명 수준을 고려할 때 폭력일반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너무 낭만적인 시각은 아닐지 회의감도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세계적 분열은 이제 정상이 된 듯 곳곳에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현실이 되고 있다. 나토가 강화되고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극우정당이 제1당이 되었고 독일에서도 AFD의 약진이 놀라울 정도다. 인류문명의 미래를 앞서 염려하고 대안을 모색해가던 유럽연합의 위상은 전례없이 약화되고 평화를 구가하던 국가에서 징병제가 부활하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푸틴은 정치적으로 오히려 더 강력해지는 듯하고 시진핑 장기지배를 굳힌 중국의 마이웨이도 여전하다.

미국의 혼란은 세상의 어지러움의 절정판 같다. 세계 제1의 강대국이자 자유와 혁신의 본산이라 자처하는 미국이 지구적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불과 4개여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두 노인정객이 재대결을 하게 되는 모습은, 누군가가 ‘치매환자와 미치광이의 대결’이라고 불렀듯 전세계의 우려 대상이 되고 있다. 며칠전 NYT는 논설위원 전체의 뜻으로 바이든의 출마포기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그것이 이 혼돈을 극복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트럼프의 재선 이후 나타날 미국주의와 정치적 편의주의가 세계질서에 어떤 충격을 미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한반도는 이런 지구적 차원의 모순과 긴장이 전형적으로 또 집약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고 휴전선의 무력충돌 가능성도 커졌다. 심지어 제2의 한국전쟁을 염려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푸틴과 김정은의 밀착 계기가 전쟁협력이었다는 사실과 이번 조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준동맹관계로의 격상이 갖는 무게감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이 현재의 한러관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도 걱정거리다. 한중관계가 다소 잠잠한 것은 다행스럽지만 결코 우호적인 상황은 아니다. 미중의 대립이 격화되고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는 추세가 지속될 경우 한중관계도 언제든 악화될 개연성이 상존한다. 북핵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대만해협 문제도 조만간 부딪칠 현안이 될 수도 있다.

작년 말부터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적대적 2국가론’은 이런 대전환에 대한 북한 나름의 대응방안이라 할 수 있다.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관계라는 남북관계의 기본틀을 부정한 김정은의 과감하고도 도박같은 발상이 북한에서는 집요하게 또 체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핵무력에 기초하여 체제를 유지하려던 북한의 소극적 대응전략이 신냉전 구조에 편승하여 보다 적극적인 체제강화론으로 이행하는 모습이다. 민족으로서의 한국보다 체제로서의 러시아와 중국을 우선시하고 경제나 협력보다 무력과 대결을 앞세우는 방향을 확고히 선택한 것이다. 짧게는 탈냉전 30년의 역사, 길게는 분단 80년의 역사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변경시킬 중대한 변화로 보인다.

이런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위기, 대전환의 상황앞에 국내의 정치권이 보이는 반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2018년 이후의 급변한 현실을 어떻게 평가하고 분석할 것인가에 대한 냉정한 복기나 책임있는 염려보다 모든 논의가 문재인 정권 책임론과 윤석렬 정권 책임론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모든 정치적 발언과 평가는 다음 대선에서의 권력을 누가 장악할 것인가로 맞춰져있고 당연히 정파적인 목소리만 득세한다. 외교와 내정, 실리와 명분의 지난한 줄다리기가 필요한 영역에서 감정적 이분법, 과장된 자신감, 이념적 정신승리가 도처에 즐비하다. 진보도 보수도 그런 행태에서는 거의 쌍생아라 해도 좋을 듯 싶다.

그래서인지 요즘 뉴스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전문가의 논평을 경청하고 싶은 마음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알아야 속만 상하고 걱정만 커지는데 차라리 모르는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굴원의 어부사가 새삼 떠오른다. ‘세상이 모두 탁하고 취했는데 나 홀로 맑고 깨어있으려 하니 결국은 쫓겨나고 말았다’는 작자의 한탄에 대해 ‘성인은 탁하고 취한 세상과도 어울려야 하며 냇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으면 그만’라는 어부의 말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명문이다.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근거로 세상과 대면하고 부딪치는 삶의 방식과 현실에 맞추어 안분지족의 삶을 추구하는 자세가 대비되는 글로 종종 해석되었다. 세상과 부딪칠 각오를 가져야 하는 지식인이라면 어부의 조언을 무조건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 자기 스스로 끝없이 공부하고 변화하는 현실과 대면해야 하는 부담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격이 낮은 이유가 있다. 낡은 생각과 관성을 고집스럽게 내세우면서 그것을 지식인이나 선지자의 자세인 양 오해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식인으로서의 자기성찰이나 성실한 분석 없이 주변 사람들과 끝없이 부딪치고 논쟁하며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자칭 전문가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인지 나는 개인적으로 어부의 지혜를 수용하고 싶은 마음인데 종종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지 자문하게 된다. 안분지족하는 여유가 개인적으로는 편한 대응이지만 결국 정치적 무관심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세상이 어지러워질수록 더욱 이런 내면의 갈등은 커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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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원정의 유산

의친왕 이강이 조부께 써 준 글씨 현판 몇 점을 집으로 가져왔다. 이 현판들은 고향에 조부께서 건립한 정자에 걸려있던 것인데 십수년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정자가 무너져 현판들만 따로 떼어 고향 친지 집에 맡겨두었었다. 정자를 복원하거나 외부 공간이 있는 주택에 살게 되면 다시 걸어두리라 생각을 했지만 세월만 흘렀다. 그동안 현판이 두어점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누군가가 현판의 행방을 수소문한다는 소문도 들리는데다 현판을 맡아두었던 먼 친척도 세상을 떠나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정자를 건립한 조부 화사 박영화는 특히 충효의 가치를 이 공간에 담고자 했다. 증조부인 애산 박준구를 기려 당호를 ‘애산당’으로 하고 인근 각처의 문사들이 보낸 시와 글들을 각자한 현판을 걸었다. 그런가 하면 고종의 아들 의친왕의 글씨를 통해 국가와 왕조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담았다. 의친왕이 쓴 ‘先韓日月 李朝雨露’라는 글귀는 선한와 이조가 일월과 우로가 되라는 뜻을 담았다. 의친왕이 쓴 글씨 옆에는 ‘대한국 의친왕 전하 어하사친필’이라고 조부께서 각자해 두었는데 ‘大韓國 義親王 殿下’라는 표현이 어색하면서도 흥미롭게 와 닿는다.

함양, 특히 안의는 정자의 고장으로 불릴 정도인데 특히 화림동 계곡에는 농월정, 심원정, 동호정, 거연정 등 멋진 정자들이 줄을 이어 서 있다. 이들 정자는 모두 사면이 트여 주변을 내다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그런데 귀원정은 사면이 트인 정자를 한켠으로 하고 다른 한켠에는 방이 달려 있었다. 이 두 기능을 함께 담고 싶었던 모양으로 사면이 트인 공간에는 ‘귀원정’이란 현판을 달고 방이 달린 공간은 ‘애산당’이란 현판을 달았다. 정면 윗편에는 큰 글씨의 현판과 작은 글자의 현판들이 여러 점 걸려 있었고 기둥에는 대련으로 쓰여진 작품이 세로로 걸려 있었다. 정자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 작은 실개천을 넘어 돌계단을 올라가 아름드리 벗꽃 나무를 마주하는 작은 마당에 격식을 갖춰 세워졌다. 옆으론 큰 바위가 있고 앞뒤에 작은 대숲이 우거져 우아했고 아름다왔다.

비닐 하우스에 보관되어 있는 현판들은 30여점이 넘었다. 오랜 시일 제대로 돌보지도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음에도 까만 옻칠에 흰 색으로 부각된 글씨들의 모습은 반듯하고 아름다왔다. 아마도 당대 제일의 서각 장인의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획이 분명함은 말할 것도 없고 깊이와 강약도 너무 명료하여 마치 최근의 작품을 보는 듯 했다. ‘이조 우로’라는 작품과 ‘경운독월은사정취’ 라는 의친황의 작품은 명필이고 아름다운데 모두 대련의 한쪽이 사라졌다. 누군가 몰래 가져가려다 한 쪽만 떼어내는데 성공한 탓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집안의 소중한 유산이자 지역의 문화재라 할수도 있을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미안함이 솟구친다. 누이가 두어점 현판을 가져가기로 하고 나도 몇 점을 챙겨 오기로 했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21세기에 이런 가문의 유산에 주목할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들 조차 관심의 크기는 다르고 아이들 세대에서는 특별한 감정을 느낄 가능성이 별로 없을 것이다. 안의의 화림동 계곡은 선비의 문화를 체현하여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싶어하지만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물좋고 산좋은 경승지의 표지일 뿐이다. 아파트의 공간이 일상이 되고 효율적인 도시살이가 보편이 된 시절에 선비의 정체성을 운운하는 것도 낯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글, 문인들의 교류를 중시한 조부의 자취를 접하노라니 마음 한켠에 뿌듯한 감정이 솟구친다. 시대에 맞지 않을지 모르나 이런 것을 집안에 내려오눈 향기라 해도 좋으리라. 제대로 관리도 하지 못한 처지에 자랑스레 내놓을 일은 아니겠으나 집안의 소중한 향취를 맛보고 귀히 여기는 마음은 그대로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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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문화와 가문의식

6월 25일 아버지 기일을 하루 앞두고 고향 선산을 찾았다. 마산, 진주 등지에 흩어져 사는 누이들도 함께 모여 산소를 둘러보았는데 입구 돌계단도 부분적으로 무너져 내렸고 봉분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조부모 산소로 이어지는 길은 찾기가 어려울 정도여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동네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오가는 사람 대부분이 고령자들이고 젊은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누이와 자형들도 대부분 70을 넘기셨고 나 또한 70 줄에 들어서기 직전이니 고령화가 내 실존이 되어 있는 셈이다.

점심을 함께 한 후 부친이 교장으로 재직하셨던 안의초등학교 앞의 한 까페에서 옛 추억을 이야기하고 정담을 나누었다. 누이들과 자형들도 대부분 교직에 계셨던 탓에 이곳이 낯설지 않다. 그러던 중 앞으로 산소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화제가 되었다. 지금처럼 아는 분에게 벌초를 부탁할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데 모두가 공감했다. 자식들이 이곳까지 찾아와 성묘를 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성묘라는 관행이자 도리가 언제까지 존속하게 될지도 자신하기 어려울만큼 시대상황도 달라지고 있다.

누이 한분은 부모 묘소를 가까운 곳으로 이장하면서 평토장을 하고 작은 비석만 세워두자고 했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잡초로 뒤덮인 산소를 그냥 두는 것은 민망하고 도리도 아니라는 이유다. 또 다른 누이는 굳이 평토장도 할 필요없이 우리 세대에까지만 성묘문화를 지키면 될 것이라 했다. 그 이후 누구도 찾지 않은 묘가 되어 잡초가 우거지는 것도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두 분의 주장은 다른 듯 하고 실제 격론도 이어졌지만 기실 공감하는 부분이 더 컸다. 이제 성묘와 관련한 의례를 우리 세대에 간소화하고 다음 세대에까지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육체와 영혼을 구별하는 기독교 신앙이 깔려 있다.

장남으로서 내 의견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도 언젠가는 이 문제에 대한 결단이 필요할 때가 오리라는 생각을 한다. 나 스스로도 이런 성묘문화에 철저하지 못한데 내 자녀들이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리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성묘나 제사가 90년대 이후 새롭게 부각된 데는 계층의 분화에 따라 새로운 가문의식, 뿌리 의식이 커진 영향이 없지 않다. 더하여 영화나 미디어에서 그것을 한국의 전통풍습으로 재구성한 이유가 크다. 다종족화가 진행되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더더욱 이 문화가 강조될 수도 있겠다.

솔직히 나는 조상이나 가문, 뿌리에 대한 의식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이유가 컸을 듯 한데 실제로 나는 제사나 문중행사가 낯설다. 어릴 적부터 고향을 떠나 혼자 유학하며 생활한 나의 성장과정이 개인주의적 성향을 강화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내 아들 대에 이르면 훨씬 이런 문화는 약화될 것이 분명하고 나는 그것에 별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지 않는다. 다만, 부모님이 보여주셨던 독특한 삶의 자세와 정신적 지향, 조부로부터 이어진 문인적 지향과 선비로서의 자긍심은 잊지 않고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인데 그 분리가 가능할까? 그것은 어떤 가문의식과 의례를 필요로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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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함께 읽기

이종민 교수의 수고 덕택에 [김사인 함께 읽기] 책자가 멋지게 출간되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자 좋아하는 벗인 김사인 교수의 정년을 축하하기 위해 몰래 기획한 작품인데 52명의 문인 작가 지인들이 흔쾌히 글을 보내 성사된 결과물이다. 표지에 흰고무신 차림으로 한옥 툇마루에 앉아있는 김사인의 모습이 정겹다.

대부분 시인이나 작가, 문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틈에 내가 한 필자로 끼어 있는 것이 한편 어색하고 한편 기분이 좋다. 물론 내가 문인들과 견줄만한 필력이 있다거나 글솜씨가 좋아서인 것은 전혀 아니다. 김사인과 서로 좋아하는 친구사이이고 이 책을 편집한 이종민과도 막역한 사이인 것이 작용한 것이니 정실이 작용한 것이라 해도 할말은 없다. 다만 이 책의 기획 자체가 그런 우정과 정실을 높이 사자는 것이었으니 용납받을 만 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코로나 1년을 지내던 어느날 김사인의 시 한편을 써서 표구해 걸어옿았던 일을 내 글의 소재로 삼았다. 작은 낙엽하나, 철이르게 떨어져 굴러온 것을 두고 ‘실은 이런 작은 일이 고마운 것이다’라 노래한 그 소박한 정서에 깊이 공감했었다. 시인은 그 낙엽이 자기 옆에 와 ‘있는다’고 적었는데 나는 그것을 ‘앉는다’고 잘못 적었었다. 뒤에 다시 생각하니 그 두 말의 차이는 적지 않았다. 미안함과 함께 나는 그의 단어 선택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려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앉는다는 네 옆에 가 있겠다는 주체의 적극적 의지가 느껴진다. 반면 있는다는 그런 작위보다는 조심스러운 자기처신의 의미가 더 크다. 도와준다는 생각이나 무언가를 행한다는 자의식보다도 주변과 더불어 공감하고 동행하려는 바람 같은 모습을 떠올린다. 나는 김사인이 그런 인간이라 생각하기에 그가 앉는다보다 있는다가 어울리는 시인이라고 썼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과연 그런 삶의 자세가 환영받을 수 있겠나 생각하면 나부터 쉽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의 출간기념을 겸해 한마당 북토크가 기획되었다. 작가와 화가 등 문인예술가 들 사이에 나도 한자리 초청을 받았다. 감사하기도 하고 쑥쓰럽기도 한데 나이 먹어 우정을 논하고 그 우정을 즐거워 하는 사람들과 교유하는 즐거움은 호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터이다.

life · 오늘의 화두

이석증

당혹스러웠다. 한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일더니 천정이 팽그르 돌았다. 한참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다가 겨우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다시 자리에 누우니 온 방이 도는 회전성 어지러움이 확 들이닥쳤다. 모로 누우면 바로 진정이 되지만 고개를 바로 눕히면 또 같은 증세가 밀려왔다. 뇌출혈인가? 하는 의심이 들면서 불안도 엄습해온다. 가슴도 답답하고 혈압도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불을 켜고 일어나 인터넷을 검색했다. 바로 누우면 어지럽다가도 일어나 앉거나 모로 누우면 진정되는 것은 전형적인 이석증이라고 했다. 속귀의 전정기관에 있는 이석이 떨어져 나와 평형고리관 속으로 들어갈 때 겪는 어지러움을 표현하는 이석증은 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증상이고 대체로 자연회복된다고 했다. 여러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뇌출혈을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한밤 중에 식구들을 깨우는 소란을 겪지 않을 수 있어서 인터넷으로 얻은 정보가 이처럼 고맙고 위안이 될 수가 없었다.

공교롭게도 일본 여행을 떠나기 전날이어서 출국을 할 수 있을 것인가는 또다른 문제였다. 한달여 전에 계획했던 니가타 여행을 지진으로 포기하고 새로 계획한 여행인데 내 컨디션 탓으로 또 무산시키고 싶진 않았다. 다행히 이석증이라면 그다지 위험한 것은 아닐터이고 일어서 다니는 데에는 지장이 없어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인천공항을 향해 새벽 버스를 타러 나서면서도 함께 떠난 처와 아들에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항의 모든 수속을 마치고 탐승하기 전에 나의 안색과 행동거지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처가 무슨 일인가고 다그쳤다. 그제서야 전날 밤에 겪은 상황을 말하고, 여행을 포기하고 병원으로 가자는 처와 아들에게 도리어 이석증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불안한 마음을 담은채 출발했지만 다행히 2박 3일간 여행은 별 문제 없이 잘 끝났다. 여전히 잠자는 자세는 모로 누워야 했고 첫날 식사 때 다소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었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았다. 조심하느라 온천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케 한잔 편히 마실 수 없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큰 일 없이 여행을 마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세종 집에 도착한 날 밤, 나는 큰 시험을 치룬 아이마냥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염려가 가셔서일까 그날 밤은 바로 누워서도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날 병원에서 내 상태를 들은 의사는 전형적인 이석증 증세인데 가볍게 왔다가 간 모양이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 했다.

이 해프닝은 내게 두가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우선 몸이 얼마니 기계적이고 물질적인 것인지가 놀라우리만치 피부에 와닿았다. 귀 속의 작은 돌멩이, 그것이 중력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내 몸의 균형을 바로잡게 한다는 사실, 미세한 돌멩이의 이탈이 내 온 몸을 흔들리게 한다는 과학적 진실이 새삼스러웠다. 동시에 내 건강과 생명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당연한 진실도 새롭게 깨달아졌다. 이곳 저곳 다니고 여러 활동을 참여하면서 나는 아직 건강하구나 자만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성경의 말씀대로 오늘 밤에라도 내 생명을 거두어가실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였구나 하는 반성도 했다. 이 일 이후 내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진 것은 단지 어지러움에 대한 조심 때문만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건강과 시간에 더 겸손하고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는 다짐 때문이기도 하다.

activities · life · 오늘의 화두

sing again, life again

싱어게인 3 프로그램의 마지막 공연이 끝났다. 실력있는 무명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즐거움이 크지만 누군가는 탈락해야 하는 모습을 보는게 힘들어 중간에 채널을 돌리곤 했던 프로다. 최종회는 선정된 일곱명이 더이상 탈락의 두려움 없이 자기 이름을 걸고 노래하는 자리여서 나도 부담없이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다. 누구는 10여년을 자취방에서 위축되어가는 자존감과 싸우며 음악을 했고 누구는 지방에서 작은 까페를 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을 날을 기다렸으며 어떤이는 캠핑장의 야외무대에서 십수년 무명가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한결같이 오랜 기다림과 좌절의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노래하려는 열정이 충만했다.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온 자만이 드러낼 수 있는 울림이 이들의 말과 음율 속에 담겨져 있었다.

여느 음악 프로그램보다 힘든 환경에서도 뮤지션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려 한 이들의 열정이 강렬해서 노래실력 못지 않게 선곡한 노래의 가사에도 주목하게 된다. 스스로를 산골가수라 불렀던 신해솔이 ‘곡예사의 첫사랑’을 선곡한 이유가 힘들지만 웃어야 하는 곡예사의 삶이 가수를 지향하는 자신의 삶과 같아보였기 때문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이젤은 DAY6의 ‘한페이지가 될 수 있게’라는 노래를 통해 오늘 하루의 삶이 인생 사진첩의 멋진 한 부분을 장식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소수빈은 ‘한번만 더’라는 노래말로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하려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나로선 한두곡을 제외하곤 잘 알지 못하는 곡들이지만 부르는 이의 진속한 마음을 느끼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특히 강성희가 드라마 미생의 OST 였다는 이승엽의 노래 ‘날아’를 부를 때 그 가사가 뭉클하게 다가와 눈자위마저 뜨거워졌다. “모든 것이 무너져있고 발 디딜 곳 하나 보이질 않아 … 눈을 뜰 수 조차 없게 한대도/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 차갑게 내뱉는 한숨이 널 덮어 숨을 쉴 수 조차 없게 한대도/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 우리 시대 모든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최종우승은 홍이삭에게 돌아갔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와 교육활동을 하신다는 부모와의 대화가 소개되었다. 아들의 음악활동을 충분히 뒷바라지 하지 못한 미안함을 표현하는 아버지와, 번듯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늘 죄송했다는 아들의 말이 아름답고 진솔하게 느껴졌다. 홍이삭은 이 프로그램에서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유통기한이란 말을 했을 때 나는 유발 하라리가 말한 ‘무용계급'(useless class) 을 떠올렸다. 사회에서 쓸모가 없는 사람들로 평가받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암울한 전망이 이 신조어에 담겨있는데 유통기한이란 말이 인생의 쓸모를 확인받아야 하는 절박함을 담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경연을 거쳐오면서 유통기한이란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참 다행스러운 결론인데 과연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저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홍이삭이 선곡한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는 나도 간간히 불렀던 곡이다. 조용필의 노래 ‘꿈’은 화려한 도시생활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상실감을 너무도 잘 표현해서 수업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바람의 노래 역시 음미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아야 해/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 꽤 긴 삶을 지나온 나는 이 바람의 노래를 들은 적 있었을까?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을 비켜갈 해답이 사랑임을 깨달았던가? 나는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알고 있는가? 그 노래는 곧 나의 물음처럼 다가왔다.

스페셜 무대로 임재범이 나와 부른 노래는 모든 참가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기에 족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자신을 가둬두었지/ 이젠 이런 내모습 나조차 불안해 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싶어/ 그렇게 많은 걸 잃었지만 후회는 없어 그래서 더 멀리 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거지 고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은 소중한 것 깨닫게 했으니까 /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할거야 더이상 아무것도 피하지 않아 이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줄거야 힘겨웠던 방황은”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거야’ /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 노래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새로운 시작, 어게인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꼭 현실적인 성공이 보장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자존감의 회복, 살아갈 이유의 확인 만으로도 어게인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영적인 깨달음은 차원을 달리하는 거듭남의 길일 것이다. 오랜 시간 ‘무명’의 아픔을 견뎌야 했던 이들이 ‘sing again’할 기회를 만난 것처럼 인생이 뜻같지 않아 힘들어하는 사람들, 특히 미래의 불확실성에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이 ‘life again’의 꿈과 희망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life · 오늘의 화두

청년의 꿈, 노인의 꿈

최근 예배시간에 설교로 듣고 찬송으로도 부른 성구가 있다. 요엘서에 나오는 내용으로 사도행전에도 언급된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은 꿈을 꾸리라”는 메시지다. 예언, 환상, 꿈이란 말의 신학적 차이나 의미론적 차이가 있겠지만 모두가 현실을 넘어서는 미래에의 지향을 논한 것이란 공통점이 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미래를 향한 기대가 필수적인 바, 특히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수록 더욱 그러하다는 깨우침으로 묵상할 좋은 화두다.

나는 수년 전 한국사회학회장 취임논문으로 ‘희망의 사회학’을 발표했었다. 사회학이 비판과 부정의 날카로움을 넘어 비전과 약속을 제공하는 따뜻함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논지였다. 근대 이래의 사회학, 특히 한국의 사회학 담론이 비판적 분석에는 능한데 건설적 통합력과 희망적 역동성을 주는데는 취약하다는 내 평소의 생각이 반영된 글이었다. 후배인 김홍중 교수가 내건 ‘마음의 사회학’ 문제의식이 나와 공감되는 부분이 적지 않아 김 교수와 함께 “꿈자본과 청년층”을 주제로 한 공동연구를 추진했고 [꿈의 사회학]이란 제목의 책을 공동으로 편저하기도 했다. 젊은 세대가 미래를 향한 꿈을 키워가기 어려워지는 현실에 대한 분석, 그럼에도 꿈을 잃지 않고 형성하는 내면의 능력은 여전히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 학문적 노력이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 연장선으로 광주과학기술원에 와서 ‘꿈의 사회학’이란 과목을 개설하고 강의해온지 벌써 3년이 지났다. 근대 개방사회에서 사회이동이 확대되고 능력주의가 발휘되던 상황을 검토한 후, 21세기에 들어 이전과 달리 상승이동의 기회가 줄어들고 성공사다리가 닫혀가는 현실에서 꿈의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수업이다. 개인이나 집단, 기업이 더 나은 미래를 기획하고 추구하며 창의적인 목표를 달성해온 역동적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각자 개인이 품고 있는 인생설계, 미래목표의 내용과 전망을 점검하는 기회를 가져보곤 한다. 민족과 국가 차원에서 거대한 꿈을 공유함으로써 공동체의 통합과 대규모 동원을 이루어온 사례들도 검토해 보면서 꿈의 다면성과 역설적 모습도 이해하도록 했다. 다행히 학생들의 관심은 나쁘지 않아 정원을 급방 초과할 정도로 인기과목이 되었다. 강의를 거듭할수록 꿈자본을 강조하는 것이 희망고문이 되지 않을 조건이 무엇인지, 기회구조가 축소되는 구조적 차원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등 더 많은 숙고와 탐구과제에 부딪치지만 내 스스로에게도 좋은 지적 자극을 주는 수업이 되고 있다.

나는 꿈의 주체로 청년층을 상정하고 강의해왔다. 수강생이 대학생이라는 이유가 크지만 꿈은 특히 미래세대의 몫이라는 내 나름의 문제의식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모든 세대를 포괄하면서 특별히 노인을 꿈의 주체로 서술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성경의 메시지가 자녀, 청년, 노년의 세대적 구별에 관심을 둔 것은 물론 아닐 터이다. 또 예언, 환상, 꿈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보다는 현실의 조건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경험이 모든 세대에게 공통으로 필요함을 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어쨋든 꿈의 주체를 청년으로 한정하거나 특정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어려운 시대, 흉흉한 세상에는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에게 절실한 것이 미래에 대한 기대, 희망, 꿈일 수 있겠다. 어떤 점에서 죽음을 앞두고 인생을 정리해야 할 노인들에게 꿈이 더 필요할지 모르며, 상황이 암울할수록 희망은 더욱 절실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된다.

노인의 꿈은 무엇으로 구성될까? 나 자신이 70을 바라보는 상황이 되고보니 이 질문은 더욱 절실한 바 있다. 사회적 역할과 가장으로서의 책무가 어느 정도 끝난 시기인만큼 새로운 할 일을 찾아 발버둥칠 이유는 없다. 인생의 노년기에도 여전히 세속적인 성공이나 욕망충족의 꿈을 견지한다면 자칫 노추나 노욕의 부끄러움을 뒤집어 쓸 수도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목표나 지향도 없이 하루 하루 소일하는 것이 좋은 태도라 하기도 어렵다. 노욕이나 노추가 아닌, 신선하면서도 아름다운 노인의 꿈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 강의실이 아닌 내 삶에서 풀어야 할 질문이자 숙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