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향연 – 바둑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이야기다. ”새 나라 새 미술“이란 타이틀로 조선의 건국을 예술사적으로 조명하려는 대형전시인데 평소 접하기 어려운 조선 전기의 자기, 서화, 서적, 조상 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국보 5점, 보물 12점을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니!!
조선은 새로이 성장한 신흥 사대부들이 기획한 국가다. 그 설계자라 할 정도전은 유학에 뿌리를 둔 문화국가를 지향했고 이를 위해 인문정신을 중시했다. ”일월성신은 天文이고 산천초목은 地文이며 시서예약은 人文“이라 말한데서 알 수 있듯 지식인의 고아한 품격에 어울리는 이상국가를 세우려 한 것이다. 하늘, 땅, 사람을 두루 아우르는 우주적 감각에 바탕을 두면서, 사람들이 만드는 흔적 (人之文)을 시, 서, 예, 악에서 찾는 발상은 독특하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다.
전시는 흰색에서 시작하여 세가지 색을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백白의 흰색인데 ”조선의 꿈을 빚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2부는 묵墨의 검은색으로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라는 부제를 붙였다. 3부는 금金의 색인데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백, 묵, 금의 세 빛깔이 조선초기의 모습임을 보여준다는 의미인데 특히 백자로 대표되는 흰색을 시대적 전환의 상징으로 부각시켰다. 그런데 고려에 더 어울리는 금색이 포함된 것이 다소 의아했다. 이전의 예술이 단절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졌음을 보여주는데는 효과적임이 분명한데 내게는 백과 묵의 검박함으로 금의 화려함을 멀리하려던 사대부 노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처럼 느껴졌다.
백자의 흰빛 — 가까이서 살펴보니 그 빛의 아름다움이 정말 놀랍다. 흰색이라는 표현만으로는 포용하기 어려운 미묘한 색감을 제각기 지니고 있다. 백자는 주자와 매병, 합, 사발을 막론하고 대칭형의 담백한 곡선미를 지닌다. 복잡한 장식이나 화려한 문양이 없기에 더욱 색과 형태에 시선이 집중된다. 길이 14m, 높이 3m의 거대한 벽면에 도자기의 색의 변화에 따라 300여 점을 배치했는데 가장 왼쪽에 분청사기로부터 오른쪽 끝의 순백자에 이르기까지의 긴 세월이 한 벽에 담겼다. 마치 흰색을 향한 순례자들의 여정을 보는 듯 했다.
백자의 공간을 지나면 먹의 공간이다. ’묵-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란 부제처럼 먹은 조선의 정신, 인문적 사유를 반영하는 또하나의 문화다. 수묵으로 표현된 작품들은 물론이고 시서화를 중요한 인격공부로 여긴 선비의 삶 전반에서 먹은 핵심적 역할을 했다. 먹과 붓, 종이와 벼루를 가까운 친구로 삼던 인문정신이 글씨나 그림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저런 담백함으로 화려함과 세속적 욕망을 불식시키려는 꿈을 꾸다니 대단한 인문주의가 아닐 수 없다.
채색이 없는 수묵산수화는 단순소박하다. 안견풍으로 불리는 이 시기 그림에는 인물도 잘 드러나지 않고 자연의 모습도 진경이 아니다. 고려불화의 화려함이나 현대미술의 자유로움에 비해보면 그 정형성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먹은 5색을 담고 있다고 할 정도로 그 빛이 다양하다. 먹의 재료, 물의 농담, 붓놀림의 속도, 선의 굵기와 여백에 따른 구성은 생각보다 섬세하다. 서두르지 않고 현실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으면서도 수신에는 누구보다 까다로운 선비다움이 저런 수묵의 정신과 상통한다는 생각을 했다.
도자기의 흰색과 시서화의 묵색은 제각기 어떤 정신을 지향한다. 간간히 이 두 색이 한데 모여있는 작품도 있다. 나는 힘찬 대나무가 그려진 백자 항아리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백과 묵의 놀라운 협연, 향연을 듣는 듯 했고 과거의 고결한 선비를 만난 듯 했다. 담백한 흰색, 단순한 곡선, 소탈한 표면, 날렵한 대나무 줄기와 잎 –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조선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편리함과 화려함을 좋아하는 현대인으로서 백, 묵의 인문정신은 멀리하고 싶을 수도 있으나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고 필요한 품격이 아닐까 싶다. 조선을 건국한 사람들은 문명사적으로 너무 앞서 나간 자들이었을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