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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2) – 당신들의 천국

1박 2일간 소록도 박물관 측의 안내로 평소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섬 이곳 저곳을 두루 둘러보고 설명을 들었다. 김재형 교수가 이곳을 연구하며 쌓은 깊은 신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록도 한센병 박물관에서 시작하여 자혜의원, 하나미 원장 창덕비, 만령당, 검시실, 감금실, 중앙공원, 구라탑, 애한의 추모비, 이춘상 의거비 등을 보았고 동생리, 남생리, 녹생리, 신생리 등 여러 마을로 이어지는 섬주변 도로를 일주했다. 각 마을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세워져있는 교회당 건물,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바다, 푸른 하늘이 유난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탁트인 전망과 발밑의 해수욕장을 독점한, 최고의 휴앙지라 해도 좋을 원장공관도 보았다. 원성이 컸던 오마도 간척사업의 현장에 세워져 있는 추모공원도 들렀다.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담긴 격리공간이라는 사실과 너무나 아름다운 다도해 섬의 풍광 사이의 불일치가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각종 건물과 기념비에는 많은 애환과 긴장들이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 내용과 내 소회를 제대로 담으려면 논문이나 책 분량이 될 수 있을 테지만 그 작업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답사 도중 계속 떠올린 생각의 일단은 기록해 두려 한다. 구체적이지 못하지만 세 가지 소회를 정리해 본다.

(1) 누구의 시선으로 어떻게 개입하는가 – 한센인에게 관심을 갖고 개입한 주체는 크게 국가권력, 기독교, 의료집단의 세 부류다. 소록도의 행정동, 교회당, 병원은 각각 이 세 주체들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상징공간이다. 대한제국, 조선총독부, 대한민국 을 막론하고 국가권력은 법과 정책, 경찰력을 동원하여 강력하게 개입한 주역이었다. 소록도 앞에 붙은 ’국립‘이란 표현이나 이 섬이 보건복지부 소유라는 점은 이를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그런가하면 초기 선교사의 역할이나 교회당 건물에서 확인하듯 기독교의 개입과 실천이 매우 두드러진다. 여수의 애양원 등 한센인과 관련한 다른 시설에서도 기독교 선교사 및 종교인의 영향력이 독보적이다. 한센인 치료에 헌신한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들의 역할도 매우 큰데 이들은 대체로 국가나 종교와 연합하여 활동했다.

국가의 개입은 국민보호 또는 사회보장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기독교는 약자에 대한 사랑, 헌신적 휴머니즘, 인간애의 실현을 강조한다. 의료인은 의술을 통한 환자의 회복, 몸의 치유에 주목할 것이다. 소록도는 이 세 주체의 협력으로 관리되어온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소록도는 국가개입의 성격이 강했다. 총독부 이래로 국가의 행정력은 막강했고 교회의 영향력이나 의료인의 활동은 대체로 종속적이었다. 지금도 그 경향은 여전해서 정부의 입김, 정책과 국가예산의 힘이 가장 강하다. 역대 대통령 영부인들이 관심을 보인 곳이고 최근 갓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이 소록도를 방문했다는 것이 보여주는 함의도 같은 맥락이하 하겠다.

거주하는 한센인은 숫자도 크게 줄었고 고령화하는데다 새로운 환자 발생도 극히 적다. 최근 외국인의 발병사례가 늘어나고 있다지만 그 비중은 작아서 사회적 관심은 지속적으로 약화될 것이다. 당연히 소록도의 미래에 대한 여러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이 공간을 관광자원, 지역브랜드화 하려는 움직임이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하겠는데 지방정치와 투어리즘의 연결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소록도의 박물관과 여러 시설이 견학과 답사의 장소, 다크 투어리즘의 공간으로 변모할 가능성은 크다. 오마도 간척에 담긴 한센인의 아픔을 위무한다는 추모공원의 조각상은 그런 이중성을 잘 담고 있는 듯 했다. 이곳과 대만 및 일본의 관련 시설들을 연계하여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노력도 추진 중이다. 국경을 넘어 동아시아 공통의 ‘유산’으로 재조명하는 것은 의의가 있는데 유난히 강한 민족주의, 국가주의 담론을 어떻게 넘어설지 두고 볼 일이다.

(2) 어떤 공동체를 향한 어떤 거버넌스? – 답사를 하는 내내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16세기 유럽 지성인들이 쓴 [유토피아] 소설들을 생각했다. 토마스 모어, 캄파넬라, 베이컨 등 지상낙원을 꿈꾸던 지식인들이 한결같이 유토피아의 공간으로 ’섬‘을 상정했던 사실이 소록도라는 섬과 묘하게 오버랩되었다. 왜 그들은 외부와 격리된 섬을 유토피아의 전제처럼 간주했을까? 사유재산이 없고 모두가 평등하게 노동하고 생활하며 같은 규범과 도덕으로 통합되는 공동체가 가능하려면 외부와의 단절이 필수적이라 생각했던 때문일텐데, 그렇다면 애초 보편적 유토피아는 불가능한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이청준은 왜 소록도 한센인들의 삶을 그린 소설에서 ’당신들의 천국‘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단순하게 이해하면 일제 강점기 소록도 원장으로 대표되는 관리인들의 허구적 명분이나 위선적 시혜를 시니컬하게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입시 논술문제의 모범답안도 아마 이런 유형일 것이다. 실제로 소록도의 옛 원장관사를 들렀을 때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발밑의 모래사장을 독점한 그 천혜의 위치에 탄성이 절로 났다. 이 고립되고 격리된 공간에서 가히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을 원장에게 이곳은 실제로 천국일수도 있었겠구나 생각했다. 감시와 격리의 아픔을 겪고 있던 한센인들과 너무도 대립적인 이미지로서의 천국이란 단어는 그런 점에서 ‘당신들’이란 말 속에 담긴 적개심과 자연스레 결합된다.

하지만 소록도 내부에서, 한센인 스스로 상상하던 천국, 유토피아는 없었을까? 이곳은 개별 경제활동이 없고 모든 것이 국가로부터 지급되고 보호된다. 적어도 내부에선 교육이나 위세의 차별이 없고 환자공동체로서의 결속력도 강하다. 질병이라는 문제, 가족들과 떠나 있어야 하는 안타까움을 제쳐두면 이곳은 중세의 수도원과도 유사하고 김용기 장로가 세웠던 가나안 농군학교의 모습과도 겹친다. 병원과 의료시설은 베이컨이 말한 과학적 관리를 담당한다. 비록 그 수준은 높지 않았으나 초중등 교육기관도 있다. 신체의 결함을 지닌 이들에게 육체 너머의 천국을 상상하게 하는 종교적 공간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실제 한센인 들 가운데는 이곳에 들어오기를 희망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한다. 사진 속에는 환하게 웃는 한센인들의 모습이 적지 않은데 ‘격리’와 ‘차별’의 맥락을 넘어서는 또 다른 차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록도 입구에 ‘애한의 추모비’라는 큰 비석이 서있다. 해방 직후 소록도 자치를 요구하던 주민 84인이 내부 갈등으로 희생된 사건을 기린 것이다. 내부의 똑똑하고 생각이 깊은 인물들이 희생되었다는 설명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애한(哀恨)이란 표현 속에는 드러내기 어려운 내부의 긴장과 대립이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해방 공간에서 이 섬을 어떤 공동체로 만들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이 소록도 내부의 비극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외부의 힘을 빈 효율과 관리를 중시할 것인가 내부의 자치와 자율을 중시할 것인가 상이한 지향이 부닺쳤을 수도 있다. 권위적이었던 일본인 원장을 살해한 이춘상 사건을 이해하면서도 이를 ‘의거’로 추앙하려는 움직임이 주민 모두의 마음을 쉬 얻지 못했다는 설명도 내부의 복잡한 정서를 반영한다. 지배와 저항, 통제와 인권의 단순대립을 넘어, 이들이 추구하던 공동체, 바라던 가치의 맥락에서 표현되지 못한 목소리들에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3) 희망의 자리는 어디에? – 소록도는 외부와 격리된 곳이지만 전혀 이질적인 공간은 아니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고 사람의 문제가 가득한 작은 사회공동체였다. 제각기 자신만의 행복과 희망을 붙잡고 견뎌낸 삶이 곳곳에 서려있는 공간이다. 한센병은 손과 발, 얼굴 등 몸의 훼손이 심한 질병이다. 신체적으로 타인과 구별되고 그로 인해 일찍부터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성경에서도 나병환자는 ’몸‘이 나음을 얻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늘날 의학과 의료인이 이들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이유도 신체의 치유라는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 한센병이 치유가능하다는 의학적 근거가 확립되면서 더더욱 몸의 회복을 희망과 행복의 핵심으로 간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중앙공원에 세워진 ‘구라탑’의 하단에 새겨진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구호는 이들의 ‘희망’이 무엇이었는지를 또렷히 보여준다.

그런데 몸 중심의 사고, 치유 중심의 희망서사는 어떤 역설, 아이러니를 동반한다. 분명 몸의 치유는 가장 근원적인 바램이었을테지만, 모든 사람이 완전 치유의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짓무른 손발을 안고 살아야 하는 한센인들이 있고 그들에게 몸 중심의 세계관은 더 큰 좌절로 이어진다. 이들에게는 ‘구라'(求癩)를 넘는 꿈, 다시 말해 몸의 치유를 넘어서는 희망, 육체 이후의 미래에 대한 꿈이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다. 소록도 마을마다 건립되어 있는 예배당이 그런 마음을 보듬는 공간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내세의 구원이란 희망을 제공해온 종교의 기능은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의학과 의료가 발전하면서 몸의 치료가 우선시되고 병원과 행정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20세기 시대정신과도 연동된 이 합리화의 과정은 앞으로도 강화될 것이 분명한데 과연 의학적 치료나 관리지원이 이들에게 충분한 희망과 내일을 약속해 줄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1박을 한 숙소는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에서 설립한 나눔연수원이었다. 이곳은 소록도 환자들과 일생을 함께 한 두 수녀의 헌신을 기려 설립된 곳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두 간호사는 20대인 1960년대부터 40여년간 한센환자들을 돌보며 짓물린 환자들의 손과 몸 구석구석을 직접 소독하고 치료하는 일에 전념했다. 유럽의 카톨릭 재단들의 도움을 받아 더 높은 의료혜택을 받게 하면서도 두 사람은 일생 3평 남짓한 방에서 성자처럼 살았다 한다. 한 분은 돌아가셨는데 이들을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추천하는 범국민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아침 일찍 기념관 내부를 걸으며 오래전 손양원 목사의 자서전을 접했던 기억, 애양원과 순교자 묘역 등에서 받았던 그 고결한 감동을 회상했다. 학자나 지식인이 되는 것,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르면서도 고결한 삶을 가능케 하는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한데 저 동력은 무엇이며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할지 자문해 본다.

소록도를 답사하면서 막스 베버를 떠올렸다. 그는 탈주술화를 환영하면서도 가치와 의미의 약화가 초래할 인간소외를 우려했다. 베버가 오늘 이곳을 답사한다면 관리와 치료 중심의 이 시대변화를 ’탈주술화‘로 환영했을까 아니면 ’가치의 소멸‘로 우려했을까? 앞으로도 국가의 관심 하에 병원과 행정동은 여전히 튼튼할 것이다. 다크 투어리즘의 확대와 함께 박물관을 비롯하여 소록도 곳곳이 문화상징공간으로 변모할 가능성도 있다. 연구자들과 학자들이 이곳을 대상으로 뛰어난 논문과 저서를 쓰고 예술가가 그림과 시로 형상화하는 사례도 늘어날 것이다. 소록도에 대한 외부의 새로운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 한센인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며 그들이 꿈꾸는 희망서사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궁금하다. 합리화되고 과학화하며 세속화하는 이 시대에 희망의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소록도는 그 물음에 대해서도 진지한 성찰과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