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관심과 시력

세종으로 이사오면서 안경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안경이 없이 보낸 두 달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 원래 시력이 크게 나쁘지 않은 탓이겠지만 애초 시력이 문자 해독에 맞추어져 있었던 탓도 있는 것 같다. 책 보는 것과 글 쓰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때는 시력이 조금만 나빠도 불편을 크게 느꼈지만 정원을 돌보고 산책을 하며 저녁 노을을 감상하기에는 지금의 시력으로도 큰 불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 안경을 쓰지 않고 지내보려 마음을 먹었다. 책을 보거나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여전히 적지 않으니 언젠가는 안경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 만이라도 소나무의 잎이 자라는 것과 대추나무 열매가 커가는 것을 안경 없이 바라볼 생각이다. 노트북과 핸드폰이 필수품이 되는 시대에 시력의 불편이 나를 조금 더 그런 기기들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곰곰 생각하면 관심에 따라 시력이 좌우되는 것 못지 않게 명료한 시력을 중시하는 것 자체가 내 생각을 좌우하기도 한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 내 눈이 미치는 대상에 내 마음과 정신도 쏠리게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본다’는 행위는 단순히 보이는 영상을 인지하는 것 이상의 주관적 행위임을 새삼 느낀다. 안경을 잃어버린 것이 불편한 다행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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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고 거두는 것

손바닥 만한 텃밭이지만 채소를 심고 싶은 욕구가 컸다. 조치원 시장을 가서 상추와 고추, 쑥갓과 깻잎 모종을 사 오던 날, 매우 무더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작은 모종 속에 담긴 생명이 새로웠기 때문일까.

심은지 꼭 일주일이 되는 날 첫 상추잎을 따서 먹었다. 향긋한 내음이 입안을 가득 채웠고 사서 먹던 맛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입견이었을테지만 내가 심어 거두는 행동에 수반되는 어떤 감정이 입맛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심고 거두는 일 사이에는 내가 하는 일이 없다. 물을 주기도 하고 간간히 흙을 돋우어주기도 하지만 그 녀석들이 자라는데 내가 미칠 힘은 전무하다. 자라게 하시는 이는 그 분이라는 성경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대지의 생명력, 흙의 약동함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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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 백신과 디지털 거버넌스

코로나 19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 1차 접종을 마쳤다. 온 세계가 힘을 모으고 국가역량이 총동원되다시피 한 탓이겠지만 예약부터 접종 후 안내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거버넌스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는 기회가 되었다. 인터넷 예약에서 질본의 실시간 안내, 접종 의료기관의 역할과 곧 이은 확인 증명서 발송 등 전 과정이 가히 일사분란하다 할만치 체계적이었다. 이 놀라운 효율적 동원에서 선진국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도 많겠고 감시 시스템의 심화를 염려하는 사람도 제법 있을 법하다.

어쨋든 백신 접종은 감염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개인에게도 절실한 일이고 국가 차원에서도 경제회복과 정치적 리더십에도 결정적인 변수다. 그런가 하면 전인류가 함께 극복해야 할 문명적 사안이기도 하다. 오늘 접종을 받은 일은 나의 개인적 안전을 넘어서 대한민국의 국격, 인류공동체의 숙제와 과학기술문명의 자부심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명사적 사건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 국가, 인류 차원의 관심과 노력이 중첩되는 한편으로 그 불일치와 간극에서 비롯되는 긴장을 감당하는 일이 앞으로의 큰 과제일 듯하다. 통계적으로 ‘증명’하는 총체적 성과가 뚜렷하더라도 0.1 퍼센트의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통계적 증명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라는 말을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한다고 볼 때 통계의 확실성과 실존적 불확실성을 연결할 지점이 어디일지는 여전한 숙제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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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에 살다

오랜 아파트 생활을 마감하고 단독 주택으로 이사한 후 땅 위에 산다는 느낌이 새삼 와 닿는다. 넓지는 않으나 정원이 있고 소나무와 대추나무, 살구나무와 매화나무가 줄장미와 함께 자라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 밖을 나서도 동네 한바퀴를 돌아도 흙과 땅이 보이는 환경 그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아파트 생활이 무려 40년이었으니 그간 땅은 여행할 때만 밟는 곳처럼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공중에 떠서 살다가 땅 위에 내려와 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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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讀五車書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3층 로비에 ‘수독오거서’라는 글씨 액자를 걸었다. 김명환 관장의 부탁으로 두보의 시구 중 한 부분을 쓴 것인데 학생들이 더 많은 책과 가까이 할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 한자와 친숙하지 않은 지금의 학생들을 감안하여 아래에 한글로 그 뜻과 함께 중앙도서관이 지혜로운 인재의 산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재직한 모교의 중앙도서관에 정성을 담은 글을 기증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 그것이 학생들에게 격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기쁘고 보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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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and new

조형근 박사가 장인이 만든 수제품 만년필을 보내왔다. 정성이 깃들였을 그 만년필을 대하니 초보 강사 시절 ‘old and new’란 쪽지와 함께 받았던 선물이 떠올랐다. 그 속에는 붓과 만년필이 들어있었는데 보낸 분의 탁월한 감각에 감탄했었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학자에게 문방사우나 필기구에 대한 욕심은 없을 수 없다. 실제로 붓과 펜은 동양의 선비와 서양의 지식인들의 가장 중시하던 아이템이었다.

동서양 문명이 붓과 펜 위에 성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편리한 연필과 불펜이 등장하면서 점차 일상에서 멀어졌고 컴퓨터 시대가 되어서는 아예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뛰어난 글을 쓰는 작가나 학자들도 정작 글씨는 초등학생 같은 경우도 적지 않다. 붓으로 쓴 글씨에 놀라는 중국 학자도 적지 않다. 기술이 동서문명을 통합시키고 있다고 환영해야 할 지 오랜 문명의 품격을 폐기한다고 아쉬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짐을 정리하면서 붓과 만년필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어떤 것은 자주 써서 손때가 묻었고 어떤 것은 아예 새 것으로 남아 있지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는 시대의 ‘new’는 디지털 첨단기기의 몫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붓과 만년필에 담겨온 정성과 품격은 결코 사라지거나 무의미해지지 않을 것이다. ‘流水居然’이란 글씨까지 새겨진 정갈한 만년필을 접하니 法古創新을 표방한 새로운 도전을 해볼 마음이 생기는 듯 하다. 무모한 과욕일까 참신한 발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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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축의 시간

어제 오늘 달라지는 잔디와 나무잎의 초록빛을 감상하다가 아 어제가 5월 18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자 고요하던 마음에 파문이 인다. 40년 전 그 날 아침 신문을 보면서 느꼈던 당혹스러움과 그 이후의 역사적 부침, 오늘의 정치적 소란에 대한 소회까지 파장의 폭은 넓다. 평온하던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이 싫어 애써 생각의 깊이를 축소시키려 하는 나를 발견한다.

개인이 실존적으로 경험하는 시간과 공동체의 역사가 구성되는 시간은 그 결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라의 흥망성쇄가 개인의 생노병사와 별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할 수 없으니 양자가 모두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인류 공동체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실존적 시간은 부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헤겔은 ‘역사의 간지’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종교가 가르치는 우주적 시간, 신의 개입, 카이로스의 순간은 국가공동체가 전유하는 시간감각의 한계를 더 문명론적이면서 실존적인 차원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코로나의 위험, 기술문명의 충격 앞에서, 여전히 삶의 무게와 질병의 두려움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5월 18일을 맞이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간감각을 국가화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실존적 삶과 문명사적 시간성까지 포괄하는 해석의 폭과 다양성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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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탈출

아파트를 벗어났다. 결혼 후 40년 가까이 몸에 밴 아파트의 편리함 대신 흙과 정원을 손 보는 즐거움으로 바꾸고 싶은 바램의 결과다. 휘어진 살구나무 가지에 줄을 매 주면서 맛보는 새로운 기쁨이 앞으로의 기대감을 높인다. 하지만 분주한 일상과 각종 모임에 익숙해진 탓인지 오랜 삶의 방식과 연결망에서 소외될 수도 있으리라는 일말의 불안도 없지 않다. 일과 여유, 대화와 사색, 함께와 홀로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은 내게 주어진 새로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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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연휴 속 5.4운동

[중국현대사를 만든 세가지 사건]이란 제목으로 중국 100년사를 살핀 백영서 교수는 1919년의 5.4운동, 19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989년의 톈안문 사건을 상징적인 모멘텀으로 설명하였다. 실제로 한 세기 전 오늘 발발했던 5.4운동은 비단 중국현대사에서만 중요한 사건이 아니다. 두 달 앞서 분출한 조선의 3.1운동과 일본의 자유민권운동이 연동된 동아시아적 변혁의 한 국면이었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변화와도 맞물린 ‘새 시대’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民, 자각한 주체의식이 부상했고 청년, 학생, 노동자, 지식인의 존재가 부각되었다.

2021년 5월 4일을 보내며 한 세기 변화를 또다른 차원에서 실감한다. 정작 중국부터 노동절 연휴의 대이동 소식에 뭍혀 5.4운동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듯하다. 점점 더 일본중심적이 되어가는 일본이나, 3.1운동조차 데면데면하게 보낸 한국이 5.4운동에 주목할 리는 더더욱 없다. 격동의 20세기 초, 동경과 상해와 서울을 오가며 서구의 선진문물을 적극 수용하던 당대 지식인의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모습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에 비해 시장을 통해 서로의 연결성을 절감하는 기업인, 가치사슬과 인터넷으로 얽힌 정보와 사물의 조밀한 연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실제로 정치인과 지식인, 공적 담론을 주도하는 지도층들과는 달리 일상의 삶에 충실한 경제인과 열린 가슴으로 문화를 소비하는 평범한 대중들에게서는 보다 열린 소통과 연대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지식인 중심의 과거사 해석에서 벗어나는 것을 환영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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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일어난 사건

자주 지나치던 집 주변의 한 아카시아 나무가 활짝 꽃을 피웠다. 얼마전까지도 기미가 없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같은 나무들도 이제야 조금씩 꽃망울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 녀석은 아예 만개했다. 나무들도 그들 간에 경쟁을 할까? 아니면 유난히 성급한 녀석일까? 경쟁이라 하기에는 다른 나무의 속도에 관심이 없고 성급함이라기엔 제 갈 길을 가는 모습이 또렷하니 굳이 말한다면 개성이라고 할 밖에 없다. 세상사의 흐름이나 주변의 평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우주의 섭리와 자신의 생명력에 순응하면서 분출하는 이 놀라운 아름다움은 매년 이맘때 주어지는 계시적 사건이다. 섭리와 개성과 자연스러움이 함께 연동하는 우주적 신비를 드러내는 징표로서의 사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