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사를 만든 세가지 사건]이란 제목으로 중국 100년사를 살핀 백영서 교수는 1919년의 5.4운동, 19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989년의 톈안문 사건을 상징적인 모멘텀으로 설명하였다. 실제로 한 세기 전 오늘 발발했던 5.4운동은 비단 중국현대사에서만 중요한 사건이 아니다. 두 달 앞서 분출한 조선의 3.1운동과 일본의 자유민권운동이 연동된 동아시아적 변혁의 한 국면이었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변화와도 맞물린 ‘새 시대’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民, 자각한 주체의식이 부상했고 청년, 학생, 노동자, 지식인의 존재가 부각되었다.
2021년 5월 4일을 보내며 한 세기 변화를 또다른 차원에서 실감한다. 정작 중국부터 노동절 연휴의 대이동 소식에 뭍혀 5.4운동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듯하다. 점점 더 일본중심적이 되어가는 일본이나, 3.1운동조차 데면데면하게 보낸 한국이 5.4운동에 주목할 리는 더더욱 없다. 격동의 20세기 초, 동경과 상해와 서울을 오가며 서구의 선진문물을 적극 수용하던 당대 지식인의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모습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에 비해 시장을 통해 서로의 연결성을 절감하는 기업인, 가치사슬과 인터넷으로 얽힌 정보와 사물의 조밀한 연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실제로 정치인과 지식인, 공적 담론을 주도하는 지도층들과는 달리 일상의 삶에 충실한 경제인과 열린 가슴으로 문화를 소비하는 평범한 대중들에게서는 보다 열린 소통과 연대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지식인 중심의 과거사 해석에서 벗어나는 것을 환영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자주 지나치던 집 주변의 한 아카시아 나무가 활짝 꽃을 피웠다. 얼마전까지도 기미가 없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같은 나무들도 이제야 조금씩 꽃망울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 녀석은 아예 만개했다. 나무들도 그들 간에 경쟁을 할까? 아니면 유난히 성급한 녀석일까? 경쟁이라 하기에는 다른 나무의 속도에 관심이 없고 성급함이라기엔 제 갈 길을 가는 모습이 또렷하니 굳이 말한다면 개성이라고 할 밖에 없다. 세상사의 흐름이나 주변의 평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우주의 섭리와 자신의 생명력에 순응하면서 분출하는 이 놀라운 아름다움은 매년 이맘때 주어지는 계시적 사건이다. 섭리와 개성과 자연스러움이 함께 연동하는 우주적 신비를 드러내는 징표로서의 사건 말이다.
4월의 마지막 날이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의 평화 퍼포먼스로 온 나라가 흥분했던 때가 불과 3년 전, 냉랭한 2021년 오늘의 한반도 상황을 보며 지난 3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남북의 지도자가 판문점, 평양, 백두산에서 포옹하고 악수하며 내놓았던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한 약속이자 미래의 비전일까? 안팎의 상황 변화로 이제는 시효가 끝난 낡은 구상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정략과 트릭의 산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허상이었을까?
냉정히 볼 때 이 세 가지 측면은 처음부터 함께 있었다. 모든 정치적 기획은 선의와 명분 못지 않게 정략적 판단과 이해관계를 내포한다. 동기가 순수하고 당위성이 또렷하지만 현실성이 없는 정책이 있다. 정략적인 이해타산에 기초했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 모든 측면을 함께 고려하면서 총체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전략적 실천의 관건일 터이다. 그러려면 자신과 상대방이 내세운 명분과 당위가 얼마나 타당한지, 그것에 기초한 현실진단은 얼마나 적확한지, 미래전망의 근거는 얼마나 확실한지 냉정히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2018년 일련의 역동성은 ‘민족”에 대한 서울과 평양의 공감에 기초하여 가능했던 것이지만 그만큼 불확실하고 가변적인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민족을 항구적인 범주로 간주하고 민족감정이나 민족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 상수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네이션 (nation)에 해당하는 민족은 종족이나 혈연, 언어를 주요한 요소로 하지만 그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한국사에서 ‘민족’이란 말은 1905년 보호국화 이후 일본으로부터 소개되고 식민지로 전락한 후에야 본격적으로 사용된 개념이다. 국가가 없는 상황에서도 존속가능한 역사문화공동체의 항구적 실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20세기에 비로소 내세워지고 내면화된 새로운 개념 범주다. 신채호가 1909년 ‘국민’ 개념과 ‘민족’ 개념이 어떻게 다른지를 힘써 설명한 것도, 동아일보가 1920년 3.1운동으로 조선인이 ‘민족’을 발견했다고 언급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은 각기 자신을 ‘민족’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가’로 자임했다. 지금도 남북관계를 ‘국가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라고 부르는 것은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를 민족관계라고 부르는 것도 두 체제를 넘어선 공통분모를 강조하고 통일을 목표로 하기 위한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자신만을 ‘국가’로 간주하는 태도가 깔려있는 것이다. 조선왕조 시대에도 ‘나라’ 의식은 뚜렷했고 중국과의 영토구획을 ‘국경’이라 불렀지만 오늘날과 같은 주권공동체로서의 근대국가 개념은 1897년 독립협회활동 이후 자리잡았다. 국권강화, 국권회복 운동의 목표로서 헌법, 정부, 주권, 국민, 외교 등의 개념과 더불아 자리잡은 것인만큼 남북한 모두가 자신의 체제정당성을 위해 매우 강조해온 개념 범주다.
판문점에서 남북정상이 서로의 손을 높이 들고 천명한 3년 전의 약속이 금새 빛이 바래고 긴장상태로 바뀐 것은 ‘국가’ 차원을 뒤로 미루어둔 채 ‘민족’범주만을 부각시킨 편의적 접근이 초래한 예상가능한 결과다. ‘우리민족끼리”라는 슬로건은 잠시의 화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국가관계와 갈등하고 긴장할 수밖에 없다. 남북한은 언제든 필요하다면 민족개념을 뒤로 하거나 무시할 가능성이 높은데 수령 유일체제를 최고가치로 강조하는 북한은 특히 그러하다. 앞으로 북한은 점점 더 민족개념을 약화시키고 국가주의를 강조할 개연성이 크다. 이 불일치를 정면으로 대응하면서 정책의 의외성과 불확실성에 대응할 총체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 앞으로 절실하고도 긴요한 숙제가 아닐까 싶다.
4월 26일이 셰계 지적재산권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2001년부터 시작되었다니 21세기적 현상임이 분명하다. 지적소유권이라고도 불리는 이 권리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첨단 지식, 혁신적 아이디어와 컨텐츠의 홯성화의 근간으로 간주된다. 오늘날 BTS를 비롯한 K-Pop과 한국 영화가 전세계에서 환영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무형의 문화상품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제도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인류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해온 공유자원과 오랜 커먼즈들이 사유화, 상품화의 대상이 됨으로써 빚어지는 문제들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적 재선권의 보호와 그 과실의 범인류적 공유가 서로 함께 갈 수 있는 방도를 찾는 일이 더더욱 중요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도서관에서 제작한 서예전 영상이 갑자기 삭제되었다는 연락을 아침에 몇 분들로부터 받았다. 알아본 결과 도서관 담당자가 내 직함 표기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유투브 주소가 달라진 탓으로 빚어진 일이었다. 새 주소로 그 영상은 다시 열렸지만 어제까지 이 영상을 본 600여명의 기록은 사라졌고 내용을 모르는 분들은 이 자료가 사라졌다는 생각을 계속할 가능성도 있다. 기술적인 요인이나 행정적 조치 만으로 0와 1 사이, all or nothing 을 오갈 수 있는 디지털 자료의 특성을 실감하면서 이 양면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큰 숙제임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달력은 각종 기억들의 저장소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즐거운 과거와 아픈 기억이 뒤섞여 있다. 우리는 특정 기억들을 끄집어내거나 갈무리하면서 자신만의 시간 감각을 개별화한다. 아름다운 신록 속에서 4.3의 역사, 세월호의 아픔, 4.19의 기억을 함께 떠올려야 하는 4월은 잔인하다. 아픈 역사를 멋진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일컬어지는 베를린에서 기억의 사상자가 되지 않고 그 속에서 새 힘과 동력을 얻을 방법은 무엇일까를 자문했던 때를 떠올린다. 그 지혜를 배우고 내면화하는 것 – 개인에게나 집단에나 큰 숙제일 터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시한 세한도를 접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관람객이 의외로 적어 오랜 시간 작품 앞에 혼자 머무르며 감상했다. 갈필로 정갈하게 그린 두 그루 소나무, 세한도라는 화제, 귀양살이하는 자신에게 변함없는 관심을 보여준 이상적에게 쓴 글 등이 모두 추사의 기품과 성정을 드러내기 족했다. 나로서는 이 작품을 돌려받으려 시간과 재산을 아끼지 않은 소전 손재형의 정성과 넓은 빈 칸을 남겨두고 자신의 글을 적은 위당 정인보의 겸손이 새삼 마음에 다가왔다. 작품 자체의 무게감과 깊은 울림을 절감한 귀한 기회였다.
우리시대 최고의 藝人이자 탁월한 작가이기도 한 가수 이적으로부터 자필 메시지가 담간 trace 음반을 선물 받았다. 카세트와 CD, streaming 음악으로 사라지는가 했던 LP 판을 다시 보니 옛 생각이 뭉클 난다. 재생할 방도가 없음을 알았는지 시인 사회학자 심보선 교수와 더불어 멋진 턴테이블과 블루투스 스피커도 보내왔다. 고마운 마음으로 오랫만에 아날로그 음악을 즐기게 되었다. 그 배후엔 여전히 디지털 기술이 자리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번 서예전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것 하나 – 받을 사람, 글의 내용, 그리고 글씨 서체가 함께 어우러져야 만족스런 작품이 나온다는 것… 글 내용과 형식, 오가는 마음이 삼위일체를 이루어야만 써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감동이 생기는 묘한 이치가 어디 서예에 한정된 것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