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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삶 (1)] 1989년의 충격

[탈냉전 역사의 현장을 건네오다 : 나는 1989년 7월부터 1년 반동안 미국 하바드 엔칭 연구소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하기 위해 도미했다. 이 시기는 세계사적 변화가 심대하여 한국사회는 물론이고 내 개인사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40년 가까운 그 이후 나의 활동은 대부분 이때 이루어진 변화와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이 격동의 과정은 예상한 바 아니었고 이러한 변화의 성격을 헤아리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탈냉전과 세계화의 시대가 저물고 나도 청장년기를 지난 오늘, 내가 겪어온 삶의 궤적을 통해 시대전환의 함의와 전망의 단초를 찾아보려한다.]

1989년 새해 한국은 세계여행을 지유화했다. 그리고 동구권 구공산권국가와 수교하는 북방정책이 시작되었다. 전지구적 탈냉전 흐름이 뒷받침한 것이지만, 87년 민주화와 88년 서울올림픽 성공에 뒤이은 국내의 자신감이 큰 요인이었다. 학계와 정치권에서 국제화, 세계화 논의가 커지고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이 히트를 치기도 했다. 북한 역시 이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세계청년학생축제를 거행하고 북한체제의 강고함을 대내외로 선전했다. 임수경이 비밀리에 이곳에 참석함으로써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것도 기본적으로는 이 시대적 흐름에 대한 광범위한 낙관과 희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1989년의 변화는 한반도 바깥에서 더욱 심대했다. 2차대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쇼와 천황이 연초에 사망함으로써 일본도 새로운 시대로 이행했다. 폴란드를 비롯한 동구권 내부에서 자유화 움직임이 가시화되었고 6월 4일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발했다. 중국정보는 무력으로 이를 강제진압했는데 이것이 오늘까지 중국체제의 기몬조선을 좌우한 결정적 사건이 된 셈이다. 8월에는 소련에서 발트국가들을 중심으로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분출되었다.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곧이어 동독의 에곤 크렌츠 서기장이 물러남으로써 사실상 동독이 해체의 길에 접어들었다. 루마니아에서도 격렬한 시위가 발발하여 독재자 차우체스쿠 동상이 시민들에 의해 끌어내려졌고 마침내 차우체스쿠 부부가 처형당했다. 12월 2일에는 몰타 섬에서 부시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역사적인 ‘냉전종식’을 선언했다. 1990년에 접어들어서 이런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어 폴란드 집권당이 해체되었고 몰도바와 벨라루스가 연이어 소련으로부터 탈퇴했다. 9월 30일엔 한국이 소련과 수교하는 역사적 변화가 시작되었고 10월 3일에는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나는 이 모든 변화를 보스턴에 앉아 뉴스로 접했다. 엔칭 연구소에는 주로 중국, 일본, 한국 학자들이 모여있었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격동의 역사가 어디로 향할 것인지, 그것이 자국 사회에 어떤 충격을 미칠지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제한된 뉴스와 행동반경 탓에 이런 사건들의 중대함과 깊은 영향력을 즉각적으로 깨닫진 못했다. 다만 중국에서 온 학자들은 천안문 사태 이후 개혁개방노선, 중미관계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가도 좋을 것인지 걱정이 많았고 실제로 자신들의 향후 진로를 두고 고민을 계속했다. 국제정치 전문가가 아닌 일반적인 미국의 학자와 시민들도 격동하는 세계적 변화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돌이켜보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그 세 격동이 함께 진행되는 과정에서 기대와 우려, 확신과 주저함이 끝없이 교대했다. 내 젊은 시절의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었고 과잉된 확신으로 큰 소리를 치기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공부도 모자랐고 지혜는 부족했으며 종종 부끄러운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 때 시작된 탈냉전 세계화 자유화 개방화의 큰 흐름 탓에 의 삶이 역동적이고 새로운 도전으로 점철될 수 있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2026년의 오늘을 보는 마음은 어둡다. 1989년에 시작되었던 그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느낌은 강하다. 탈냉전 30년의 변화, 놀라운 과학기술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해묵은 전쟁과 문화 갈등, 지진과 기상이변으로 인류공동체의 종말을 논의하는 시점에 도달한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때 미국 잔류를 선택했던 중국 학자들은 오늘의 변화된 모습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던 1989년의 저 감격을 목도했던 독일 시민들이 오늘 AfD 극우정당이 급부상하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찬찬히 지난 40년의 개인사를 돌아보면서 이 시대적 성취와 아이러니에 마주쳐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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