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 북중국경지대를 답사하고 돌아왔다. 재단법인 통일과나눔이 준비한 여행에 합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뜻깊은 여행을 했다. 두만강 동쪽 끝 방천에서 시작하여 도문, 연변, 용정, 송강하, 통화, 집안, 환인, 압록강 끝 단동을 거쳐 심양까지 가는 긴 여정이었다. 삼십여년간 여러 차례 오고간 곳인데 최근의 변화가 생각보다 크고 생소한 장면들이 적지 않았다. 놀라움과 안타까움, 기대와 우려가 혼재하는 이중적 감정이 시종 떠나지 않았다.
연길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마친 후 곧장 북중러 삼국의 국경지대인 방천으로 향했다. 두만강변의 모습은 예와 다름없었지만 국경 철조망은 더 새로워진 듯 했다. 훈춘 지역에 웅장한 세관건물이 세워져 있지만 아직 물류의 이동은 활발하지 않다 한다. 방천에는 9층 건물이 들어서 북중러 국경을 조망할 수 있었는데 발해문명의 고장임을 알리는 간판과 함께 “애국주의가 곧 중화민족의 민족심이자 민족혼“이라는 큰 표어가 걸려있다.
이튿날 아침 가본 도문의 다리는 이제 사람이 오가지 못한다. 대신 그 아래 ’두만강 나루터‘가 새로운 조망공간으로 변모했고 ‘성수동 까페‘라 이름한 대형 찻집이 관광객을 부르고 있었다. 피아노를 둔 서양식 인테리어와 서울 성수동이란 브랜드가 이곳까지 진출한 것이 놀라왔지만 전반적으로 도문의 외지고 낙후한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1991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감흥을 잊지 못하는 나로서는 저 다리가 사람들로 북적일 날이 언제 올까 궁금했다.
새로이 건립된 연변박물관을 들러 보았다. 규모나 전시내용, 설명방식 등에서 그 수준이 놀라왔다. 연변 정도의 지방도시에 이처럼 거대한 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문화정책이 얼마나 조밀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컨텐츠의 서사가 정책적으로 체계화되는데 따르는 문제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고유의 문화와 역사적 역할은 그 비중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중화민족‘의 다문화적 성격을 강조하는 기조가 뚜렷하다.. 만주지역을 개척해온 조선족의 활약상이 ’생산민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 것도 같은 맥락일 터이다.
용정을 지나는데 가이드가 박경리 ‘토지’ 이야기를 했다. 이곳이 토지 2부의 주무대였기 때문인데 얼마전 끝낸 박경리 기념 서예전 생각이 났다. 그러고보니 하동 평사리와 진주에서의 전시를 끝내고 이곳 만주지역을 오게 된 것이 당연한 일이었던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사의 맥락에서 용정의 일송정, 명동촌 명동학교, 민족시인 윤동주를 떠올리는 기억은 점차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화민족의 역사서술이란 큰 틀 속에 조선족의 역할을 배치시키는 유적의 재해석 작업이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백두산 등정은 언제나 이 지역 여행의 핵심이다. 이전에 천지를 세번 올랐었지만 남파로 올라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송강하의 리조트에서 새벽 6시에 길을 나섰는데 북파나 서파에 비해 남파는 하루에 입장가능한 사람수를 훨씬 적게 제한한다고 한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별로 혼잡하지 않았고 큰 기다림 없이 13인용 승합차를 탈 수 있었다. 천지로 올라가는 길 바로 옆으로 북중 국경선을 알리는 철책이 길게 이어져 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이십여분 동안에도 기상은 시시각각 변해 긴장하게 했지만 마침내 정상에서 파란 하늘과 툭트인 천지를 만났다. 과연 장관이었고 북파에서 보던 모습과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수많은 인파로 자리다툼을 해야 했던 이전과는 달리 여유롭게 천지를 조망할 수 있어서 특히 좋았다. 전망 좋은 곳은 돈을 내고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이곳에서 돈을 아낄 사람은 없지 싶었다. 천지의 사진을 걸어두고 답답한 일상과 숨막히는 더위에도 가능하면 푸른 하늘과 파란 물빛을 잊지말고 지내자 마음 먹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