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마지막 날이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의 평화 퍼포먼스로 온 나라가 흥분했던 때가 불과 3년 전, 냉랭한 2021년 오늘의 한반도 상황을 보며 지난 3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남북의 지도자가 판문점, 평양, 백두산에서 포옹하고 악수하며 내놓았던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한 약속이자 미래의 비전일까? 안팎의 상황 변화로 이제는 시효가 끝난 낡은 구상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정략과 트릭의 산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허상이었을까?
냉정히 볼 때 이 세 가지 측면은 처음부터 함께 있었다. 모든 정치적 기획은 선의와 명분 못지 않게 정략적 판단과 이해관계를 내포한다. 동기가 순수하고 당위성이 또렷하지만 현실성이 없는 정책이 있다. 정략적인 이해타산에 기초했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 모든 측면을 함께 고려하면서 총체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전략적 실천의 관건일 터이다. 그러려면 자신과 상대방이 내세운 명분과 당위가 얼마나 타당한지, 그것에 기초한 현실진단은 얼마나 적확한지, 미래전망의 근거는 얼마나 확실한지 냉정히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2018년 일련의 역동성은 ‘민족”에 대한 서울과 평양의 공감에 기초하여 가능했던 것이지만 그만큼 불확실하고 가변적인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민족을 항구적인 범주로 간주하고 민족감정이나 민족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 상수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네이션 (nation)에 해당하는 민족은 종족이나 혈연, 언어를 주요한 요소로 하지만 그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한국사에서 ‘민족’이란 말은 1905년 보호국화 이후 일본으로부터 소개되고 식민지로 전락한 후에야 본격적으로 사용된 개념이다. 국가가 없는 상황에서도 존속가능한 역사문화공동체의 항구적 실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20세기에 비로소 내세워지고 내면화된 새로운 개념 범주다. 신채호가 1909년 ‘국민’ 개념과 ‘민족’ 개념이 어떻게 다른지를 힘써 설명한 것도, 동아일보가 1920년 3.1운동으로 조선인이 ‘민족’을 발견했다고 언급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은 각기 자신을 ‘민족’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가’로 자임했다. 지금도 남북관계를 ‘국가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라고 부르는 것은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를 민족관계라고 부르는 것도 두 체제를 넘어선 공통분모를 강조하고 통일을 목표로 하기 위한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자신만을 ‘국가’로 간주하는 태도가 깔려있는 것이다. 조선왕조 시대에도 ‘나라’ 의식은 뚜렷했고 중국과의 영토구획을 ‘국경’이라 불렀지만 오늘날과 같은 주권공동체로서의 근대국가 개념은 1897년 독립협회활동 이후 자리잡았다. 국권강화, 국권회복 운동의 목표로서 헌법, 정부, 주권, 국민, 외교 등의 개념과 더불아 자리잡은 것인만큼 남북한 모두가 자신의 체제정당성을 위해 매우 강조해온 개념 범주다.
판문점에서 남북정상이 서로의 손을 높이 들고 천명한 3년 전의 약속이 금새 빛이 바래고 긴장상태로 바뀐 것은 ‘국가’ 차원을 뒤로 미루어둔 채 ‘민족’범주만을 부각시킨 편의적 접근이 초래한 예상가능한 결과다. ‘우리민족끼리”라는 슬로건은 잠시의 화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국가관계와 갈등하고 긴장할 수밖에 없다. 남북한은 언제든 필요하다면 민족개념을 뒤로 하거나 무시할 가능성이 높은데 수령 유일체제를 최고가치로 강조하는 북한은 특히 그러하다. 앞으로 북한은 점점 더 민족개념을 약화시키고 국가주의를 강조할 개연성이 크다. 이 불일치를 정면으로 대응하면서 정책의 의외성과 불확실성에 대응할 총체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 앞으로 절실하고도 긴요한 숙제가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