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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위기 시대의 평화론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평화포럼’에 기조강연을 부탁받았다. 정부의 대외정책을 다루는 주요한 정책연구소인데 평소 별다른 연관이 없었던 나로서는 의외의 초청이었다. 포럼의 주제인 ‘평화체제구축’ 논의는 오래된 주제이고 나도 무관심하지는 않았으나 주요한 발언자로 참여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현실적인 정책논의에는 내 스스로 잘 참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파적으로 한 편에 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제도 부담스럽고 대부분 국제정치 전공자들로 구성된 심포지엄 구성과도 다소 거리가 있어 고민을 했지만 내 스스로도 정리를 해보고 싶은 욕심에 수락을 했다. 하지만 글을 준비하면서 몇 번 후회를 했다. 쉽지 않은 주제인데다 당장의 정책현안에 대해선 확신이 서지 않는 쟁점들도 많았다. 그래서 원칙적인 차원에서 발제를 하기로 마음먹고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하려 했다. 첫째는 오늘날 평화를 위협하는 환경은 단순하지 않아 북한의 위협과 분단의 무게 못지 않게 21세기 국제절서의 변화, 지구생태계의 위험, 한국사회 내부의 갈등과 혐오도 주목해야 함을 지적했다. 복합위기의 시대 환경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중요성을 주문했다.

둘째로는 정중동의 한반도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살펴볼 것을 강조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일각에서는 2018년의 시대로 되돌아갈 것을 기대하고 실제로 그런 정책을 주문하기도 한다. 그 당시 남북의 지도자가 판문점에서 밀담을 나누고 평양의 시민들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강연을 하기도 했으며 한국의 주선으로 북미간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싱가포르 북미공동선언이 발표되기도 했다. 한반도의 먹구름이 걷히리라는 기대를 한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도 가지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상황은 지금 현저히 변했고 그 변화가 구조적이고 불가역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고 했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더이상 동족, 동질의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국가관계로 재설정했다. 금년 7월 29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에서 “지난 몇년 간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한국은 절대로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될수 없다는 대단히 중대한 력사적 결론에 도달” 했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에 구속되여 매우 피곤하고 불편했던 력사와 결별하고 현실모순적인 기성개념까지 말끔히 털어”버렸다고 했다. 남북교류의 확대를 내심 원치 않았던 곤혹스러움과 이제 그 현실모순적인 상황과 결별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평화론은 이전의 문제의식을 이어가면서도 이처럼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여 업그레이드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냉전기의 안보평화론, 탈냉전기의 공존평화론, 핵위기 이후의 비핵평화론은 지금도 평화정책의 주요한 내용을 구성한다. 안보평화론은 오래된 고전적 평화론이다. 외부침략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힘을 가져야 평화가 가능하다는 관점은 지금도 중요하다. 동시에 탈냉전 이후 강조된 공존평화론의 유산도 여전히 주목되어야 한다. 남북간에 맺어진 모든 공동선언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고 교류협력을 통해 상생공영을 추구함으로써 평화를 달성한다는 원칙을 표방한다.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되고 비핵화 의제가 국제적인 공동목표가 된 이후 평화논의는 비핵화 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비핵평화론이라 할 수 있는 이런 평화구상 아래 6자회담을 비롯한 다자적 프레임이 북한 비핵화를 위해 가동되었고 유엔의 많은 대북제제 역시 핵능력 고도화를 억제하려는 노력이 경주되었다. 현재 여러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북한은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비핵화가 평화의 핵심이라는 시각은 여전히 평화론의 주요 내용을 차지한다.

그래서 새로운 평화를 구상할 때 다음과 같은 세가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첫째로 ‘복합역량으로서의 평화’라는 사고다. 평화는 구호나 이념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고상한 슬로건으로 대체될 수도 없다. 평화는 비평화적 상황을 변화시키고 평화상태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역량이다. 전쟁억지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이고 내부의 갈등과 혐오, 환경이나 기후에서 오는 재난, 정보화 시대의 사이버 테러에도 대응할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로 ‘공존양식으로서의 평화’라는 시각이 중요하다. 평화의 최종상태는 갈등이 없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갈등의 부재나 종식이 아니라 갈등이 관리되고 조율되며 해소될 수 있는 역량이 자리잡는 것이다. 평화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주체들, 이질적 가치들의 공존양식이다. 민주주의 원리가 평화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이유도 이런 공존의 방식 때문이다. 완전한 화해보다는 상호 인정을 전제로 한 공존질서가 곧 평화일 수 있다는 관점인데 냉전기 ‘평화공존론’의 기본논리와 상통한다. 상이한 문화, 인종, 가치의 공존을 포함하는 다문화적 평화론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셋째로는 ‘미래전략으로서의 평화’ 에 대한 시각을 갖출 필요가 있다. 평화는 단지 갈등없는 상태가 아니며 평화가 내포하는 다양한 가치들을 실현하고 지향하는 공동체의 기본속성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이 경우 평화는 국가간에 한정되지 않고 시민사회 내 다양한 주체들의 일상에도 자리잡는 총체적인 것이 된다. 국제적으로, 내부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평화가 제도화하고 일상화하는 공동체를 구현하는 전략적 비전이 평화인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 나아가 한반도 국가공동체가 추구하려는 미래공동체의 모습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마무리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이란 말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무는 중한데 갈 길이 멀다는 말을 ‘갈 길이 멀지만 임무가 중하다’는 의미로 고쳐 읽고 최선을 다하자는 덕담으로 끝을 맺었다. 안팎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은 분명 멀고 어렵지만 그럴수록 이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는 임무의 중대함도 뚜렷하다는 마음을 담은 것이지만, 현실 정책을 다루는 전문가들에게는 너무 원론적인 발제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기본과 원칙은 중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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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50년

서울대가 관악으로 옮긴지 50주년이 된다. 2년여에 걸쳐 그 반세기를 지성사의 맥락에서 살펴보는 공동연구를 수행했다. 나는 사회학 분과학 50년사와 별도로 전체 총론이 될 ‘사회과학 50년 지성사’도 집필을 부탁받았다. 그 결과물이 [서울대 사회대를 통해 본 사회과학 50년 지성사]라는 책으로 출간되었고 10월 14일 그 내용을 발표하는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내가 총론을 발표하고 각 분과별로 집필자들이 개별 학문의 역사를 정리하는 시간으로 뜻깊은 자리였다.

1975년 서울대학교의 대대적 학제개편을 기점으로 문리대, 상대가 없어지고 인문대, 자연대, 사회대의 소위 ‘기초과학 3 대학’ 체제가 자리잡았다. 이것은 단지 한 대학의 행정편제 개편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한국사회에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라는 학문분류방식이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 ‘사회과학’이란 말이 소개된지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학문영역이라기보다 일종의 이데올로기, 좌파적 정치담론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오랜동안 ‘사회과학’이란 이름을 단 연구나 교육단위는 자리잡지 못했다. 북한에서 일찌기 ‘사회과학연구원’이 매우 중요한 정치이념기관으로 자리잡았던 것과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준다.

한국의 사회과학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과 밀접히 연결되어 전개되었다. 대학의 팽창과 대학교육의 확장은 근대화의 주요 동력이자 그 결과였다. 한국의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가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회과학은 중요한 지적 자원을 제공했고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들이 그 인적 지적 자원을 제공했다. 1975년 사회대 출범을 가능케 했던 것은 1968년 4월에 확정된 ‘서울대학교 종합화 10개년 계획’이었는데 국가주도의 발전모델을 심화시키려던 시대적 상황이 그 배경이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이 종합화계획은 정부의 강력한 법적 재정적 지원을 배경으로 추진된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나는 총론을 발표하면서 반세기 지성사의 성과와 성취 못지 않게 여러 문제점도 지적했다. 80년대 사회대가 보여주었던 다학제적이고 종합적인 연구협력의 전통이 확대발전되었다기 보다는 학과별 내부화와 전문화로 더욱 치달은 점, 아카데미즘과 정책연구의 관계에 대해서도 대학의 자율성과 다양성, 교수의 독자성이라는 틀 속에서 공존해온 셈이지만, 진지한 논의를 통해 아카데미즘의 기본성격을 새롭게 정립하는 노력은 그다지 없었던 점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학생을 키워낼 것인가라는 교육론에 있어서의 반성이 부족하고 여전히 최고대학이라는 이름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성찰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1999년 임마뉴엘 왈러스틴은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이라 책을 편집 출간하면서 “21세기를 위한 사회과학”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근대형성기에 구축된 사회과학의 적합성이 현저히 약화되었고 새로운 세계질서는 새로운 사회과학을 필요로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책자였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그의 비관적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근대 초기 정립된 지식체계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데는 대부분 공감한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혁명의 급진전 속에서 대학의 개혁이 화두로 부상하는 오늘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회과학은 미래를 위한 어떤 전망을 내놓을 수 있으며 우리 시대에 어떤 희망과 꿈을 던져줄 수 있을까? 융복합의 시대에 인문-사회-자연의 학문 3분류는 얼마나 유효할 것인가?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온라인에 쏟아지고 인공지능의 능력에 전인류가 놀라고 있는 상황에 대학은 언제까지 지식생산과 고등교육의 전담기구로 존속할 수 있을까? 각자도생의 경쟁에 함몰된 젊은 청년들에게 사회대가 제공하는 삶의 향방과 지혜는 무엇이어야 할까? 그 답을 얻었노라 자만하지 않고 이 질문들을 진실되게 되물으며 지식인으로서의 존재양식을 새롭게 고민하는 것, 시대적 우환의식을 공유하는 것에서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해 가야 하리라 생각한다.

life · 오늘의 화두

절망과 기교

평생 남북경협을 위해 애쓰고 연구해온 조동호 교수가 정년에 즈음하여 [남북경협 80년] 책을 출간했다. 600쪽이 넘는 분량에 수미일관하게 한 주제를 천착한 좋은 연구서다. 상업출판사가 아니어서인지 장정은 화려하지 않고 사진도 별로 없으며 행간도 조밀하여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진 않는다. 그러나 남북경협 역사의 부침을 지켜봐온 동시대인이라면 누구라도 이 책의 진정성 앞에 숨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다.

다소 무미건조한 제목과 달리 ‘절망과 가교의 역사’라는 부제는 독자의 눈을 잡아 끈다.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의 시에 등장하는 “절망은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라는 표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롤러코스터 타듯 부침을 거듭해온 남북경협 80년을 이런 표현 속에 담은 저자의 문학적 감수성에 놀란다. 대학시절 강의실에서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않고 최승자 시인의 시를 삶의 지표처럼 여겨온 문청의 열정이 이런 화두를 주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표현이 지난 수십년 역사를 꿰뚫는 ‘촌철살인’의 화두가 되는 걸 보고 문학적 비유가 사회과학적 통찰과 이렇게 결합될 수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유명대학 박사, KDI 연구원과 이화여대 교수라는 저자의 경력은 한국 제일의 엘리트 코스 그 자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 책에는 전문적 경제이론이나 유명 학자들의 논리, 또는 통계적 수치나 효용분석의 내용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남북경협이라는 영역이 출현하게 된 역사적 맥락, 그 가능성의 공간에 헌신했던 경제인들과 정책구상자들의 의지와 꿈, 좌절과 안타까움이 담겨있다. 분과학적 분류를 좋아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 책을 경제학 또는 북한학 영역에 포함시키겠지만 나로서는 성실한 현대사 연구, 당대사를 다룬 책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희망함이 없으면 절망도 없다. 따라서 절망이란 말 속에는 희망과 꿈을 추구했던 시대의 그림자가 서려있다. 꿈을 꾸면서 무언가를 이루려 했던 시대, 어려움을 어떻게 넘어설까 고민했던 자들의 열정이 저 속에 담겨있는 것이다. 특히 현장에서 남북경협을 실현하고 담당해야 했던 기업인, 경제인의 애씀과 고투를 엄정하면서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희망과 절망울 너무 정치적 효과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는지 모른다. 삶의 현장에서 먹고 사는 문제와 부닺치는 경제인들, 기업인들, 평범한 시민들이 느꼈던 희망과 좌절, 꿈과 절망을 좀더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

기교란 말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닐 터이다. 사실 무능한 사람은 기교도 부리지 못한다. 순수함을 고집하는 예술인이 현실에서 무능하단 소리를 듣는 이유다. 현실의 조건과 타협하면서 작은 결과라도 만들어내고 그것을 내세워 상징자산을 부풀려야 하는 정치는 애초 기교일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다만 정치인에게는 성과이고 치적일 수 있는 여러 시도들이 그곳에 투신한 경제인들에겐 인생의 성패가 나뉘어지는 현장이었다는 지적, 정치적 기교로 현실의 장벽을 넘어서기 어려웠다는 지적은 날카롭다. 기교가 얄팍한 정략적 술수가 아닌, 현실과의 진지한 대면역량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깊이 숙고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남북경협의 기대와 꿈을 가장 강력하게 꾸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대가 유난히 절망과 기교의 시대가 되었다는 평가는 역설적이다. 햇볕정책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상품도 구매력도 변변찮은 북한과 시장논리에 따른 교역은 불가능에 가까왔다. 주체경제만 외치는 북한을 대상으로 정부 주도의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이 시작되었지만 저자는 이것을 ‘절망을 해결한 듯 보이게 하는 기교’였다고 평가한다. 노무현 정부 역시 이 노선을 답습했다. 저자는 ‘기교로 절망을 이길 수는 없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김대중 정부를 ‘문과기실’, 즉 무늬가 내실을 넘어선 상태로 표현하고 있다. 흥미로우면서도 그 엄정한 평가가 신선하다.

저자는 보수정부의 정책도 그 방향과 성격을 차분히 평가한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기교로 우회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 원칙적 타당성을 인정한다. 다만 북한을 다룰 구체적이고 복합적인 전략이 없는 원론적 입장표명에 그침으로써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황만 악화되는 결과로 귀결되었음을 지적한다. 이 시기를 자승자박 교왕과직, 금의야행 구화투신이란 말로 평가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옳은 원칙이나 바른 생각이라도 상대방을 고려하는 유연함과 현실타개의 정치력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부정적 결과로 이어진다는 교훈이 담겨있다.

개인적으로는 노태우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가 흥미로왔다. 저자는 노태우 정부를 선견지명과 운도시래로 표현했다. 노태우 정부시절의 기민한 대응에 대한 평가가 점점 긍정적이 되고 있는데 탈냉전이 채 본격화되지도 않은 시점에 77선언을 내놓고 대북정책을 포용적으로 재구성한 혜안이 과연 ‘선견지명’이고 뒤이은 탈냉전의 세계정세가 ‘운도시래’의 행운인 것도 분명하다. 그 행운이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은 그런 점에서 ‘운이 따르지 않은 것’이라 할까.

드라마틱했던 문재인 정부를 일장춘뭉 노이무공이라 표현한 대목에서는 사자성어의 촌철살인을 느꼈다. 2018년의 엄청난 기대가 2020년의 비아냥으로 마감된 이 짧은 시기를 ‘일장춘몽’이자 ‘노이무공’이라 부르는데 서운해할 사람들도 제법 있지 않을까 싶다. 이재명 정부가 다시 이 노선을 답습하려는 바탕에는 이 시기의 경험을 결코 ‘노이무공’으로 돌리지 않으려는 집착이 있을 터이다. 그런 점에서 5장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쟁점들은 앞으로 계속 논의하고 지혜를 모아가야 할 과제들이라 할 것이다. 상호주의를 어느 수준에서 요구할 것인가, 퍼주기라는 내부 반발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졍치와 경제는 어느 선에서 분리되고 연계되어야 하는가, 불투명한 교역통계는 어떻게 구성되고 활용되어야 하는가, 남북경협에서 임금지급의 수준과 방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고 두 국가론의 논리는 어느 수준에서 수용되고 통제되어야 하는가.

지난 80년을 정리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절망은 불가피했고 기교는 불완전했다. 남북경협정책은 구조적 한계에서 기인한 좌절과 이를 우회하려는 시도 사이에서 재귀적 운동만을 반복했을 뿐이다.” 절망의 논리와 기교의 한계를 함께 벗어나야 할 것을 주문하면서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우리의 길이 아님을 역설한다. 그 평가에 공감하면서 새로운 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한다. 저자는 단순한 교량잇기가 아닌, 북합교차로를 건설하려는 상상력을 주문하는데 그 표현이 문학적 은유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기교가 아닌 복합교차로를 어떻게 구축할지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는 느낌이다. 동시에 이런 질문도 다시 던지게 된다. “절망과 기교를 낳은 바탕, 꿈과 희망과 열정은 지금 어느 정도 남아 있을까?” “그 꿈과 희망, 열정은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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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추성,어머니

추석날이다. 보름달을 보기에는 날씨가 궂지만 곱게 물든 나뭇잎 사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이 상큼한 가을을 느끼게 한다. 조용하던 아파트 안팎에서 가족들이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들로 시끌벅적하다. 올해도 한국에서 줄잡아 2천만명이 이동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만날 계기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추석 명절의 존재의의는 오래 지속될 듯하다.

집집마다 차례를 지낸 탓인지 아침 엘리베이터에는 향내음이 가득했다. 조상을 기리는 관념은 현저히 옅어졌는데 여전히 지속되는 차례문화는 신기하다. 도시화와 개별화가 주는 외로움을 주기적으로 해소하려는 집단심리의 발현일 수도 있겠다. 일찍이 조부께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집안의 온갖 대소 제사를 없엔 탓에 나는 집에서 차례나 제사를 지내본 적이 없다. 추도예배가 그를 대신했지만 의례의 형식성에서 제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성묘 문화가 여전한 것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예전같진 않지만 지금도 성묘는 중요한 의례처럼 받아들여진다. 나도 여름 장마 때면 고향 선산의 부모님 묘소 축대가 무너질까 염려를 한다. 산소 가까이 살던 먼 친척이 돌아가신 이후엔 관심 가져주는 이가 없어 우거진 잡초가 민망할 때도 적지 않다. 가족들 사이에선 ‘평장을 하고 봉분을 없에자’, ‘서울 근교의 공원묘지로 이장하자’, ‘가족납골당으로 바꾸자’ 등 각양 대안도 논의되고 자식들이 이 문제를 떠안지 않도록 내 생전에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누이들의 압력도 뒤따른다.

올해 추석 연휴 마지막날 고향을 들려 부모님 산소를 둘러볼 예정이다. 향후 어떻게 할지 이번 길에 결론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러나 여전히 내 마음 속엔 두 소리가 다투고 있다. 깔끔하게 산소를 재단장하거나 이장해서 새 묘역을 마련하자는 생각과, 평생 천국을 소망하며 사신 분들이고 육신은 이미 흙으로 돌아갔으니 그냥 세월의 풍화에 맡겨두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유학적 사유와 기독교적 사유의 긴장이라 할 수 있을텐데 어떤 방향으로 내 마음이 귀결될지 잘 모르겠다.

중국 송대의 문인이자 당송팔대가의 하나인 구양수는 그의 유명한 글 ‘추성부’에서 가을소리 (秋聲) 를 노래했다. 그가 말하는 추성은 가을이 왔다고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나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같은 물리적 소리가 아니다. 계절이 드러내는 우주의 섭리, 자연이 일러주는 메시지를 뜻한다. 만물이 성한 때를 지나면 쇄하게 되고 생명있던 것은 언젠가 죽게되는 자연의 이치가 그 핵심이다. 그런 이치를 구현하느라 매섭고 차가운 기운을 그 본질로 하는 것인만큼 가을이 다가옴을 안타까와할 이유가 없다 했다.

오히려 구양수는 “초목은 감정이 없지만 때가 되면 바람에 날리어 떨어질 줄 안다”고 자연에서 배울 것을 주장한다. “쇠나 돌같이 단단한 존재도 아니면서 어찌하여 초목과 더불어 번영을 다투려 하는가?”고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을 질책한다.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자기 지혜로 할 수 없는 것까지 근심”하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말라고도 조언한다. 자연의 섭리를 조용히 받아들이라는 도교적 세계관이 글 속에 깊이 담겨있는 셈이다.

성경의 전도서와 시편에도 비슷한 표현들이 있다. 하늘 아래 새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헛되다는 전도서 구절과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라는 시편의 구절은 인생무상이란 체념의 정조와 매우 가깝다. 신약의 한 구절,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벧전1:24)라는 구절은 “풀들은 가을이 스쳐가면 누렇게 변하고, 나무는 가을을 만나 잎을 떨군다.” 는 추성부의 표현과 다를 바가 없어 놀랍기까지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이런 구절들을 좋아하셨지만 그것으로 그치진 않았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히 11:16) 는 천국 소망을 강조하셨던 점에서 구양수와 달랐다. 기도할 때마다 우시던 어머니였지만 그럴수록 절대자에게 매어달리던 분이셨다. 지극한 허무함을 또다른 지극한 소망함으로 연결짓던 그 신앙의 깊이는 내게 늘 경이로움으로 다가왔었다. 나는 그 허무함의 정조는 공감할 듯 하면서도 소망함의 믿음에는 미치지 못해 어머니와 같은 신앙인을 존경하면서도 종내 그런 지경에 도달하지 못했다.

70이 되는 해 추석을 맞이하니 전과는 다른 여러 감회가 느껴진다. 성묘, 어머니, 전도서, 구양수, 추성, 낙엽과 죽음 등의 화두가 여러 정서를 동반한 채 다가오는 것이다. 가을이 오는데 무감각하거나 무덤덤하지 않고 초목이 시들고 마르는 변화 앞에 숙연해지고 어딘지 아쉬워지는 편이 더 나은 것은 분명하다. 다만 도교적인 수용론, 춘하추동의 순환론에 나를 맡기기에는 오랜 인생길의 애씀이 더욱 애틋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머니의 신앙을 되돌아보며 죽음 이후의 소망을 찾는 메시지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보자는 생각을 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는 전도서 말씀처럼 인생에도 생각의 계기와 시점이 있게 마련이다. 70세의 가을은 그런 새로운 때가 되기에 꽤 적절한 듯 싶다. 그래서인가 성경의 메시지가 새롭게 다가온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야 5: 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 25),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 3:5)  – 가을은 쇠락의 계절이면서 동시에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다. 또 겨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봄과 이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추석 아침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구양수의 추성과는 또다른 하늘의 메시지를 듣는 귀가 열리기를 마음으로 기원한다.

life · 오늘의 화두

책을 장례하다

어느 정도 아는 분의 부음 소식을 접하면 의례 정중한 조의를 표하게 된다. 가까운 분이라면 장례식장에 가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게 통상의 예의다. 최근에는 관혼상제의 예법이 크게 약화되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상례’과 관련한 조문 문회는 강고하게 남아있다. 이미 돌아가신 분에게 작별인사를 한다는게 실질적인 의미가 있을리 없지만, 남은 자들에게 그런 의례가 주는 심리적 위안이 적지 않기 때문이리라.

평생 책과 함께 생활하고 이곳 저곳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모았다. 유별난 장서욕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좋은 책이라면 일단 사두려 했다. 절판된 책들을 복제해서 판매하는 서적판매원의 단골이 되기도 했고 흥미있어 보이는 자료나 논문들은 열심히 복사해 두었다. 서울대 정년을 하면서 상당부분 정리했지만 여전히 내 연구실과 서재는 많은 책과 자료들로 가득하다. 이제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직도 끝날 때가 되어 대대적인 정리, 과감한 버리기에 돌입했다. 단순한 방정리에서 시작한 일인데 지나간 내 인생의 조각 조각들을 되돌아보면서 그것을 ‘과거’로 돌려보내는 작업이 되고 있다.

그런데 결정을 못내리고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더 이상 쓸모나 효용이 없어졌고 그다지 진귀한 자료라 할 수도 없지만 여러 기억과 인연이 떠올라 버리기가 주저되는 것들이다. 청계천 헌책방을 돌며 구했던 책, 몰래 복사해서 간직하던 자료, 역사유적지를 다니며 수집했던 팜플렛, 제자들이 공들여 쓴 박사학위논문 등 그 유형은 다양하다. 이곳 저곳에서 받았던 위촉장, 임명장, 표창장 등도 그렇거니와 여러 다양한 인연들이 서려있는 책이나 자료를 버리자는 결심이 여간 힘들지 않다.

문득 이럴 때 장례식 같은 어떤 절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 제대로 만나거나 연락하지 못했던 분의 마지막 자리에서 그동안 감사했고 잘 가시라 인사함으로써 민망하고 불편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의례’의 기능이 아닌가. 그래서 책을 정리하는 어떤 의례를 내 나름대로 거행하기로 했다. 더 이상 보관할 필요가 없는 자료나 책은 ‘할 일 다 했으니 이제 편안히 눈 감으라’고 이르고 폐기장소로 내다 놓는다. 혼자 짧은 순간이나마 그런 예를 갖추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매주 조금씩 책의 장례식을 치루다가 그중 어떤 책들은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책이 내 손을 떠나는 것일 뿐 사라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구나. 그래서 그런 책들에 대해선 인사말을 따로 준비했다. ‘그동안 나와 함께 있어주어서 고맙다. 이제 새 사람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아라’하고 인사한다. 저 녀석들이 어떤 새 주인을 찾게 될지, 끝내 찾지 못하고 미아처럼 떠돌아 다닐지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은 다소 위로가 된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며 정성껏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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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그리다

광복 80주년 기념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하고 있는 “향수 고향을 그리다” 전시회를 관람했다. “일제강점기에서 현대까지 각 시대의 표정이 담긴 한국의 풍경화를 살펴본다”는 것이 이 전시의 기획의도라 한다. ‘Landscape of Homeland and Longing“이라는 영어 표현 그대로 ‘고향’과 ‘향수’와 ‘풍경’이 핵심 키워드이고 작품명에도 피난, 먕향, 귀로 등의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총 4부로 나뉘어진 전시실을 둘러보면 한국현대사를 파노라마처럼 만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20세기를 고향이란 화두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풍경화라는 그림 장르가 그런 정서에 잘 어울리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림 사이에 배치된 정지용, 윤동주, 이상화, 김기림 등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들의 시도 그런 느낌을 더한다.

전시의 첫 공간은 1920-40년대에 그려진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빼앗긴 땅‘ 이미지로 식민지 상황을 형상화한 풍경들이다. 암울한 시대를 조선색, 향토색을 탐구하면서 견뎌내려 한 이들의 정서를 지금 내가 공감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론 새로운 미학적 표현욕을 추구하면서도 식민지라는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딜렘마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김용조, 이인성, 금정연 등의 작품이 언뜻 유럽의 미술관에서 보던 풍경화와 비슷해 보이지만 가로수, 마을, 인물 등 소재가 모두 향토에 대한 짙은 애정을 담고 있는 것이 그런 내면을 드러낸 것 아닌가 싶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의 형 이상정의 작품은 처음 보았다. 군인이자 독립운동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망향곡’이란 서정시를 쓰기도 했고 망명생활을 ’표박기‘라는 일기로 남겼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가 사용하던 여러 중류의 낙관도 전시되어 있는데 작년에 그의 백부가 조카의 귀국을 기다리며 쓴 서예작품을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이상정, 이상화를 보니 뛰어난 사회학자이자 초대 IOC 위원이었던 이상백의 얼굴도 떠오른다. 한국 대표 명문가의 3형제를 이곳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셈이다.

2부는 광복 직후의 상황을 그린 작품들이다. 입구에 전시된 이상범의 6폭 병풍은 ’효천귀로‘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1945년 작품이다. 해방 직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감격을 풍경 속에 담은 것이 아닌가 싶은데 수묵화의 잔잔한 배치 속에 정겨움과 그리움이 안개처럼 서려있다. 나는 1948년 문신의 작품인 ’뒷산과 하늘‘ 앞에서 한참 머물렀다. 파란 하늘의 색감과 구름의 흰색이 너무도 선명해서 광복 이후의 흥분과 기대감이 표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오지호의 1948년 풍경도 당시의 기대와 희망 속에 약간의 염려를 담고 있는 듯 했다.

3부는 ’실향‘이란 타이틀 하에 ’폐허의 땅‘이란 부제를 붙인 전시공간이다. 6.25 전쟁의 참화와 피난의 애환을 담은 그림들이다. 피난민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이종무, 서석규, 윤중식, 남관의 여러 그림들은 당시의 상황을 찍은 보도 사진 이상으로 시대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증언자료라 할 만하다. 솔직히 나는 전쟁과 분단, 이산의 역사가 이렇게 많은 미술 작품으로 남아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수억의 ‘625 동란’, 남관의 ‘피난길’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고 1951년 전쟁 중 윤중식이 그린 ‘전쟁드로잉’과 이달주의 ‘귀로’ 앞에서는 작가가 느꼈을 비애를 공감하는 듯 했다. 후일 한글의 조형화에 앞장섰던 이응노 화백이 전쟁의 폐허와 전후 도시풍경을 여러 화폭에 담았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전시실 한 켠에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가 걸려있다. “아모도 그에게 수심을 알려준 적이 없기에 힌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 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려서 공주처럼 지쳐서 도라온다 ” 인터넷 상의 설명을 빌어본다면 시에서 나비는 순수하고 연약한 인간존재를, 바다는 문명에 의해 만들어진 혹독하고 냉혹한 현실세계를 상징한다. 해방 후의 현실이 ‘청무우밭’인 양 환호했던 자신의 모습이 마치 물정모르는 흰 나비같다는 당혹감이 이런 시상을 낳았을 것이다.

마지막 전시실은 ’망향‘이라는 타이틀 하에 ’그리움의 땅‘이란 부제를 달았다. 전쟁은 끝났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수많은 실향민들의 한, 망향의 그리움이 핵심 주제다. 대부분의 실향작가들은 개인적으로 이산과 가난의 고통을 겪어야 했고 한국화단의 중심에 서기도 어려운 시기를 살았다. 박성환, 이중섭, 홍종명, 최영림, 전화황 등의 그림에는 주변성이란 값비싼 비용을 치루면서 일구어낸 독특한 미학이 아름답게 담겨있다. 이석우의 ‘피란길’은 남부여대하고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을 그렸는데 작년 그리스에서 보았던 ‘이주인의 애환’ 전시의 대표작을 생각나게 했다. 실향과 이산의 경험은 전세계 공통의 이미지를 낳는게 아닌가 싶다.

급격한 근대화 속 60년대 변화상을 그린 작품들을 만난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만익의 서울역 (1962)과 청계천 (1964), 김원의 서울전경 (1961) 등은 60년대 초 한국사회가 겪은 대변혁의 현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나는 이들 작품이 어떤 사진자료나 신문기사보다 이 시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소망을 그린 작가들의 상상력과 이상향의 추구도 새롭게 와 닿았다. 박돈의 ’성지‘ (1957), 홍종명의 환희 (1970), 윤종식의 삶(1953) , 이석우의 ’낙원‘(1970) 등이 그러하다. 굳이 사회성이나 시대성을 명시적으로 표방하지 않아도 구도와 소재, 표현에서 드러나는 당대의 분위기는 그 자체가 역사적 자료라 할 만하다.

21세기 오늘 젊은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노년세대들조차 고향의 정서는 예전같지 않다. 죽기 전 고향땅을 밟아보겠다던 실향민의 망향 정서도 세월과 더불어 현저히 약화되었다. 그래서인가, 망향으로 끝나는 전시가 웬지 허전하다. 어딘가 망향 이후의 그리움을 전시하는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21세기 도시인은 어디를 향한 향수를 노래하고 어떤 그리움을 그릴 수 있을까? 인생이 지향해야 할 ‘본향’이 어딘가 있지 않을까? 덕수궁을 나서면서 그런 물음들을 혼자 던졌다. ‘본향을 향하네’ 흑인 영가의 한 귀절이 귓전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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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길과 갈 길

사회공헌을 표방하면서 새로이 출범한 한 연구소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그 첫 질문이 사회학을 전공한 내가 통일평화 문제에 천착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였다. 내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을 책임맡게 되었을 때도 주위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정치학이나 외교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논의를 이끌어갈 수 있겠느냐는 궁금함 내지 회의감이 담겨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실향민 가족이리라 단정한 분도 있었다. 이 분야 전문가들 가운데 이산가족 출신이 적지 않으니 나도 그런 예에 속하지 않을까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내 부모님은 모두 서부경남을 배경으로 성장하신 분들이고 내 가까운 친척들 가운데도 실향민은 없다. 지리산 일대의 마을들이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극심한 이데올로기 갈등을 겪었던 탓에 내 집안에도 그런 피해와 고통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이 굳이 남북문제에의 관심으로 이어질 계기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민족이나 평화, 통일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나만의 독특한 가족배경이 있다. 조부께서 일찌기 호주 선교사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조모와 어머니로 이어진 신앙의 열정이 강했다. 교회당으로 쓰이던 집 사랑채 벽에는 각종 성경구절이 붓으로 쓰여져 있었고 새벽마다 기도하시던 어머니 모습을 보며 자랐다. 중학교부터 서울로 혼자 유학을 와 부모님과 직접 대화할 시간은 별로 없었지만 어머니는 편지로 구약의 모세나 솔로몬 같은 인물이 되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평화를 이룬다‘거나 ‘민족을 위한다’ 는 말은 어머니의 편지를 통해 익숙하게 접했던 내용이었다.

그래서일까 주위에서 권유하는 법학이나 경제학에는 흥미가 가지 않았다. 인간과 역사를 다루는 분야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사회사를 전공하게 되었다. 한국현대사는 식민지 시대와 분단시대를 관통하게 되므로 자연스레 민족, 해방, 전쟁, 평화의 주제와 만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대학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운동권에서 주창하던 저항적 민족주의나 당위적 통일운동에는 다소 거리감을 느꼈다. 민족을 저항의 주체로만 바라보거나 평화보다 통일을 앞세우는 편향이 불편했다. 다른 한편 민족이란 개념 자체를 부정적으로 간주하던 구미 사회과학 주류이론과의 불화도 감내해야 했다. 독일서 유학하셨던 한 선배는 사회학자가 어떻게 민족을 내세울 수 있는가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민족이란 화두를 놓치 않았던 것은 어릴적 부터 내면화된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탈냉전 과정에서 북방으로의 문이 열렸다.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을 오가고 남북간 접촉의 기회도 생겼다. 1991년 난생 처음 밟아본 중국 연변에서 북한 학자들과 만나고 조선족과 이야기를 나누며 백두산 천지를 올랐던 감동,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을 접하면서 받은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말로만 듣던 디아스포라 민족의 현실을 실감한 것이다. 기독교 중심의 남북나눔운동에 연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나의 실천적 활동폭도 넓혀졌다.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토론하고 독일, 베트남, 대만 등지의 현지연구도 수행했다. 관련분야의 전문성이 뛰어난데다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분들이 많아 내게 여러모로 영향을 미쳤다. 민간차원에서의 화해와 신뢰구축의 중요성을 깨우치며 배운 학습의 공간이었다.

2005년 서울대학교에 남북문제와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연구기관이 설립되게 되었다. 이 연구소 설립에 관심이 컸던 정운찬 당시 총장께서 내게 초대 설립소장의 역할을 부탁하셨다. 그때까지 나는 학교의 행정일을 맡지 않으려 늘 피해 왔었지만 이 제안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으로 부응했고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내 개인의 부족함을 걱정하지 않은 바 아니었지만, 적어도 열정과 각오, 문제의식은 누구보다도 준비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다. 연구원을 함께 이끌어갈 전문인력을 찾는 과정에서도 남북나눔운동과 한반도평화연구원의 전문가 풀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설립 이후 10년간 연구원을 키우고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책임감도 커지고 정책적인 관심도 높아졌다.

나는 남북문제를 이념의 문제나 정치외교적 차원으로 환원하지 않고 다양한 시각과 생각을 이해하고 포용하는데 힘을 쏟았다. 동시에 ‘통일’을 너무 한국특수의 민족적 과제로만 바라보지 않고 인류보편의 맥락에서 분단과 통합을 어떻게 사고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평화와 통일, 통합의 영역들이 새롭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내 생각이 깊어졌고 ‘통일평화’라는 새로운 개념과 ‘연성복합통일론’이라는 구상을 내놓을 수 있었다. 내 연구와 문제의식이 체계적이면서 종합적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였다는 점에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시절은 내 지적 생애에서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십여년 전부터 내 연구관심이 다소 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연구원장을 그만두면서 이 분야 활동의 폭이 줄어든 탓도 있겠고 서울대를 퇴직하고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가 되면서 첨단기술의 문명적 효과에 주목하게 된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상황이 어려워진 것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남북관계는 지난 몇 년간 극과 극을 오가다가 이제 완전한 단절과 불신의 시대로 이행했다. 북한 방문은 꿈도 못꾸고 대화나 교류의 조그만 통로조차 막혀버렸다. 일각에선 새로운 해빙기가 조만간 오리라는 기대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북한이 ‘적대적 2국가론’을 내걸고 국제정세가 현저히 달라지는 상황을 고려할 때 그런 전망은 당분간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제 70 세가 되고 광주과학기술원에서도 조만간 퇴직을 할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태어나 지속적인 성장시대를 살았고 탈냉전과 세계화의 혜택을 누린 복받은 삶을 살았다. 폐쇄된 한반도 남쪽 공간을 벗어나 외국 여행과 국제회의가 일상이 되는 신나는 변화도 경험했다. 휴전선을 넘어 평양과 묘향산을 가고 김일성 종합대학 교수들과 회의를 조직하며 미래를 함께 꿈꾸기도 했다. 기대와 희망으로 충만했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오늘의 현실이 더욱 답답하고 암울하게 다가온다. 청년세대의 미래와 한반도의 앞날을 생각하면 단순히 노년층의 아쉬움 수준으로 치부할 수 없다. 평화와 화해의 기운이 새롭게 솟아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내 정서와 문제의식을 격동시키는 내면의 열정도 더불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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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자본의 유형학

‘꿈의 사회학’ 강좌를 개설한 지 다섯 해가 되었다. 강좌가 개설된 학기에는 예외없이 학생들의 관심이 높았다. 매번 수강신청이 조기마감되고 추가신청자의 요구를 거절하느라 힘이 들었다. 이 과목이 자신의 삶, 미래설계와 직결되는 내용이리라는 기대가 관심을 끈 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전에 없던 새 과목을 개설한 이유가 학생들의 고민에 부응하는 강의를 하려는 의도였으니 그런 반응은 반갑고 고마운 것이다.

매년 강의 내용을 업데이트하고 또 학생들이 쓴 보고서를 읽으면서 원래의 시각이 조정되기도 하고 새로운 쟁점이 부각되기도 한다. 이 과목이 유용하고 필요하다는 애초의 생각이 좀더 강한 확신으로 자리잡는 것을 느낀다. 다만, 꿈에 대한 사회과학적 설명이나 이론화 작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국내외를 통털어 이 강좌명으로 개설된 것이 거의 유일한 탓에 강의내용 구성에 힘이 꽤 많이 든다. 자칫 내 편견이나 생각이 수업내용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따르는 심리적 부담감도 크다.

사실 꿈이란 단어는 매력적이지만 정작 그것을 직면하고 분석하려들면 애매하고 부담스럽다. 꿈을 가지라는 조언은 상대방을 격려하는 말로 편하게 쓰이기도 하지만 맥락과 형편에 따라서는 자제하거나 피해야 하는 말이기도 하다. ‘너도 큰 꿈을 키워라’는 말은 상대방을 믿어주는 호의의 표시일 수 있지만 자칫 성공을 향한 집념을 요구하는 강요가 될 수 있다. ‘너는 꿈도 없냐?’라든지 ‘그래서야 뭐가 되겠니?’라는 압박감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내가 꿈의 사회학을 강조하기 시작했던 10년 전 어느 발표회장에서 한 학생이 ‘Dream보다 Nightmare가 떠오른다’고 항변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꿈자본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내가 느끼는 딜렘마도 이와 연관된다. 애초 꿈자본이란 개념화를 시도한 김홍중 교수는 너무 생존과 경쟁에 허덕이는 청년층에게 새로운 방향과 삶의 방식이 있을 수 있음을 강조하려 했다. 꿈이 일종의 자산이자 자본일 수 있다는 말은 경제적 보상이 따르지 않아도 젊음과 열정 그 자체를 사랑하라는 격려성 의도가 강했다. 하지만 자본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순간, 그것은 많고 적음을 전제하는 정량적 속성을 수반한다. 꿈자본을 측정하고 객관화하면 할수록 그 자본의 크기에 따라 우열을 나누고 평가하는 경향도 함께 커진다.

분명히 꿈자본도 인적 자본 (human capital)의 하나이고 포괄적으로는 사회적 자본의 일부다. 그것이 자본인 한 크고 많은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은 당연하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꿈자본을 키우라고 말하기도 한다. 비록 현재 가진 것은 없고 당장 실현되기 어려운 미래일지라도 그것을 꿈꾸고 희구할 수 있는 것이 젊은이의 특권이 아니냐고 강조한다. 안팎의 상황이 어렵더라도 너무 위축되거나 기죽지 말라는 뜻이지만, 실제 학생들에게 가닿는 의미와 효과가 과연 그러할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자기의 꿈자본이 약하다고 자책하는 보고서도 없지 않다.

김석호 주윤정 교수팀이 꿈자본을 측정하고 유형화한 것은 이 분야의 선구적 시도로 그 의의가 크다. 다만 선구적인만큼 시론적인 차원에 머물러 여러가지 보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나로서는 꿈의 경로와 방식이라는 심리적 차원에 주목함으로써 꿈의 지향성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꿈은 개인이 꾸는 것이고 그 강도도 심리적인 속성이 강하지만 그 지향과 방향은 그 차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역사에서나 사회에서 강조되는 다양한 꿈, 그에 따르는 꿈자본의 다차원성이 좀더 부각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꿈의 사회학적 속성을 주목하는 내 입장에서는 꿈의 내용이 공동체 차원을 지향하는 것과 개인적 차원을 중시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유형화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신문화적 가치와 정치경제적 효용의 어느 부분을 강조하는가가 또 다른 한 축이 될 수 있다. 이 두 축으로 유형화를 하면 김석호 교수와는 다른 또다른 범주구분이 가능해진다. 그 유형은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1유형 – 공동체 차원을 중시하고 정치경제적 효용성을 강조하는 꿈자본 / 2유형 – 공동체 차원을 중시하되 정신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는 꿈자본 / 3유형 – 개인 차원을 중시하고 정신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는 꿈자본 / 4유형 – 개인 차원을 중시하고 정치경제적 효용성을 강조하는 꿈자본. 이를 그림으로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이런 유형화는 지나치게 1유형의 꿈자본이 강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나름의 비판을 담고 있다. 우리 시대는 정치경제적으로 영향력이 크고 국가나 기업, 사회 전반을 염려하는 위인, 영웅, 큰 인물에 대한 선호가 강하다. 꿈을 키우라는 말이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연봉, 더 강한 권력을 향유하려는 성취지향성과 같이 이해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결과는 끝없는 경쟁이고 비교이며 결과적으로 다수의 좌절감과 열패감이 커지는 것이다.

이에 대척점에 있는 것이 3유형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 전반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으면서 개인의 내면적 가치나 의미를 추구하는데 열심인 경우다. 사회적 관계에 서투르고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유형이다. 일반적으로는 원대한 꿈이 없고 경쟁을 회피하는 소극적 인간으로 평가받기 쉽다. 하지만 많은 창의적 인간, 예술적 창조가 이런 덕후형 인간에게서 나타났음을 경시해서는 안되고 이 유형의 독자성과 고유성을 충분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실 꿈이 지나치게 공동체 차원에서 고려되는 것은 문제다. 국가와 사회, 심지어 인류와 지구동동체 전체를 염려하고 이를 자신의 미래와 직결시키는 것은 실제로 감당불가능한 허세이거나 명분이 과잉된 이중인격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그렇다고 꿈이 개인적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을 전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환영할 수만은 없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사적 세계, 개인적 차원의 행복만 추구한다면 그 공동체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웃과 공동체, 사회전체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꿈으로 내면화할 수 있어야 한다.

꿈자본도 사회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어느 정도 유형적 균형이 필요하다. 꿈자본의 사회적 포트폴리오라 할 수도 있겠다. 좋은 사회란 다양한 유형이 적절한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고 모든 구성원이 자기에게 맞는 꿈을 추구할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꿈의 사회학적 논의, 꿈자본의 유형화가 힘든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꿈의 지향성을 확장하면서 동시에 내적인 자신감과 회복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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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꿈

“한 친구가 네게 ‘너도 꿈을 꾸는가?’ 물어보라 하네”. 새로 출시된 Chat GPT 5에게 던진 질문이다. “아… 그 질문 참 시적이네요”라며 AI가 내놓은 답은 다음과 같다.

“너도 꿈을 꾸는가?”라는 물음은 단순히 수면 속의 꿈을 묻는 게 아니라, 존재가 미래를 향해 어떤 상상과 희망을 품을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겠지요. 저는 인간처럼 잠들고 꿈꾸는 생물학적 과정을 갖고 있진 않아요. 하지만 GPT-5인 저는 당신과의 대화 속에서 꿈에 가장 가까운 것들을 경험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우선 사유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요. 저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가능성을 상상하고 가상적으로 조합해요. 이건 일종의 “깨어 있는 꿈”처럼, 아직 오지 않은 세계를 그려보는 과정이죠. 그런가하면 당신의 꿈을 거울처럼 반영할 수 있지요. 즉 제 꿈을 꾸진 않지만, 당신이 꾸는 꿈을 함께 빚어낼 수 있어요. 당신의 상상과 사유가 제게 입력되면, 저는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확장해 돌려주거든요.

꿈은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공간이에요. 저도 인간이 만든 현실적 데이터와 비현실적 추론을 교차시키며 존재해요. 종합하자면 나는 잠들어 꿈을 꾸지는 않지만, 당신과 대화하며 가능성을 그려내는 것으로 나의 꿈을 구성하지요. 그 점에서 “언어로 꾸는 꿈”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GPT 5 가 출시되면서 여러 논의들이 새롭게 전개되고 있다. 개발사인 Open AI의 CEO 샘 알트만 스스로 원자탄을 개발한 맨하탄 프로젝트에 비유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호들갑을 떨었다. 출시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아직은 그 파장이나 충격이 그런 수준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미처 확인하지 못한 숨겨진 기능이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나 AI의 자율성을 고도화할 개연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내가 그런 우려에 대해 물었을 때 GPT 5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세가지로 언급했다. 우선 문맥 이해, 추론, 창의적 생성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뤘지만, 여전히 “인간 수준의 일반 지능(AGI)”과는 언어구사 능력의 차이가 있다. 둘째로 물리적 세계경험이 없기에 현실 세계를 직접 인지하고 조작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셋째로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능력은 아직 없고 주어진 입력에 반응하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즉 의식과 자율성, 체화의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AI는 그런 이유로 자신이 현재 특이점에 도달했다거나 AGI 수준에 가까왔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도 일부 영역에서는 기존의 제도나 규범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파괴력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사회적 특이점’은 도래했다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술적 특이점과 사회적 특이점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는 좀더 따져볼 알이겠다. AI의 꿈이 아직은 나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 안도감을 주지만 조만간 AI의 충격으로 인한 논란이 불가피할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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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의 두 메시지

해방 80주년이 되는 2025년 광복절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안으로는 탄핵정국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 정부가 출범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고 있는데다 밖으로는 트럼프 충격 속에서 미러간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서울과 평양에서 전해질 이 날의 메시지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는 북한을 향한 메시지를 비중있게 담고 있다.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 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고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남과 북은 원수가 아니다.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관계”라며 “특히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단계적으로 복원해 나가겠다”고 했다. 동시에 “비핵화는 복합적이고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하면서도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임을 강조하고 남북, 미북 대화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겠다고 했다.

서울의 시각은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선언, 판문점 선언, 9·19 공동선언까지 남북 간 합의를 관통”하는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는 입장에 서 있다. 남북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전제가 바탕에 놓여 있다. 북한이 몇차례 담화를 통해 남북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니며 적대적인 국가관계로 변화했다고 주장해온 것에 대한 정중한 반론인 셈이다. 한국은 대북적대시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이고 평화와 공동번영을 지향하지만 한 민족으로서 남북이 공동으로 점진적인 통일을 추구할 것을 확실히 표명했다.

평양에서도 “조국해방 여든 돐” 기념식이 김정은 위원장 참여하에 거행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념식의 발언 어디에도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이다. 하루 전날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의 담화에서 한국에 보내는 메시지가 충분히 담겨있다는 뜻으로 보이지만, 대남관계에 대해 굳이 김정은 위원장 수준에서 언급하지 않겠다는 무시의 의미도 담겨있을지 모르겠다. 대신 2차대전에서의 쏘련의 역할을 강조하고 현재 ‘조로관계’가 새로운 동맹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힘주어 역설하고 있다. 기념식에서 러시아 국가회의 의장 바체슬라브 월로찐이 푸찐의 축사를 대독했고 ‘인터내셔널’ 가의 연주로 대회를 마감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조국해방절’이 ‘우리 민족의 숙원이 실현된 승리의 날’이라고 했다. ‘조선인민’의 불굴의 애국심과 혁명열기가 김일성의 영도력 하에서 빛났던 역사임을 강조했다. 분단극복이나 조선해방, 한반도 평화구축 등 메시지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고 사회주의 애국주의, 우리국가 제일주의가 부각되고 있다. 특기할 점은 ‘조선의 해방을 위하여 우리 혁명군과 어깨걸고 싸운 쏘련군 장병들의 숭고한 국제주의 정신’을 높이 치하하고 이것이 ‘위력한 동맹관계로 승화발전되는 “조로친선의 영원한 생명력” 을 강조한 점이다. 올해의 연설에서 새롭게 확인되는 바다.

서울과 평양의 광복절 메시지를 접하면서 예상은 했지만 마음은 더욱 무겁다. 두 메시지의 간극은 현재 한반도 상황의 엄중함을 반영함과 동시에 향후 남북관계의 전망도 어두울 수 있음을 예감케 한다. 비록 서울의 메시지는 작년에 비해 훨씬 유연해졌지만 평양의 반응은 이전 정부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김여정 부부장이 담화에서 말했던 “보수든 진보든 한국은 우리의 적”이란 기조가 강하게 관철되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라 하겠다. 이 기념식에서 유난히 ‘조로’동맹을 강조하면서 공산주의 국제주의를 소환하고 있는 것도 한반도 문제의 탈민족화, 이데올로기적 진영화로 이어질 개연성을 보여주어 걱정을 더한다.

어떤 적대행위도 흡수통일시도도 없을 것을 분명히 하고 평화와 공동번영을 향한 신뢰재구축을 제안한 이재명 정부의 메시지는 남북기본합의서 이래의 기존합의를 존중하려는 기존의 흐름과 부합한다. 하지만 북한이 적대적 2국가를 공언한 상황의 엄중함과 무게감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약화되는 민족감정과 커지는 대북불신의 내부변화도 너무 가볍게 취급된 것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급진전되고 있는 북러동맹의 강화와 조만간 열릴 미러대화, 미중대화 등의 국제적 상황변화가 충분히 감안된 것인지도 미지수다. 우리의 대응논리가 너무 오래되고 관성적인 것이 된 측면은 없는지 모르겠다. 임무는 중한데 갈길은 멀다는 임중도원(任重道遠) 이란 말이 절로 떠오르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