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vities

복합위기 시대의 평화론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평화포럼’에 기조강연을 부탁받았다. 정부의 대외정책을 다루는 주요한 정책연구소인데 평소 별다른 연관이 없었던 나로서는 의외의 초청이었다. 포럼의 주제인 ‘평화체제구축’ 논의는 오래된 주제이고 나도 무관심하지는 않았으나 주요한 발언자로 참여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현실적인 정책논의에는 내 스스로 잘 참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파적으로 한 편에 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제도 부담스럽고 대부분 국제정치 전공자들로 구성된 심포지엄 구성과도 다소 거리가 있어 고민을 했지만 내 스스로도 정리를 해보고 싶은 욕심에 수락을 했다. 하지만 글을 준비하면서 몇 번 후회를 했다. 쉽지 않은 주제인데다 당장의 정책현안에 대해선 확신이 서지 않는 쟁점들도 많았다. 그래서 원칙적인 차원에서 발제를 하기로 마음먹고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하려 했다. 첫째는 오늘날 평화를 위협하는 환경은 단순하지 않아 북한의 위협과 분단의 무게 못지 않게 21세기 국제절서의 변화, 지구생태계의 위험, 한국사회 내부의 갈등과 혐오도 주목해야 함을 지적했다. 복합위기의 시대 환경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중요성을 주문했다.

둘째로는 정중동의 한반도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살펴볼 것을 강조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일각에서는 2018년의 시대로 되돌아갈 것을 기대하고 실제로 그런 정책을 주문하기도 한다. 그 당시 남북의 지도자가 판문점에서 밀담을 나누고 평양의 시민들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강연을 하기도 했으며 한국의 주선으로 북미간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싱가포르 북미공동선언이 발표되기도 했다. 한반도의 먹구름이 걷히리라는 기대를 한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도 가지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상황은 지금 현저히 변했고 그 변화가 구조적이고 불가역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고 했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더이상 동족, 동질의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국가관계로 재설정했다. 금년 7월 29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에서 “지난 몇년 간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한국은 절대로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될수 없다는 대단히 중대한 력사적 결론에 도달” 했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에 구속되여 매우 피곤하고 불편했던 력사와 결별하고 현실모순적인 기성개념까지 말끔히 털어”버렸다고 했다. 남북교류의 확대를 내심 원치 않았던 곤혹스러움과 이제 그 현실모순적인 상황과 결별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평화론은 이전의 문제의식을 이어가면서도 이처럼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여 업그레이드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냉전기의 안보평화론, 탈냉전기의 공존평화론, 핵위기 이후의 비핵평화론은 지금도 평화정책의 주요한 내용을 구성한다. 안보평화론은 오래된 고전적 평화론이다. 외부침략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힘을 가져야 평화가 가능하다는 관점은 지금도 중요하다. 동시에 탈냉전 이후 강조된 공존평화론의 유산도 여전히 주목되어야 한다. 남북간에 맺어진 모든 공동선언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고 교류협력을 통해 상생공영을 추구함으로써 평화를 달성한다는 원칙을 표방한다.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되고 비핵화 의제가 국제적인 공동목표가 된 이후 평화논의는 비핵화 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비핵평화론이라 할 수 있는 이런 평화구상 아래 6자회담을 비롯한 다자적 프레임이 북한 비핵화를 위해 가동되었고 유엔의 많은 대북제제 역시 핵능력 고도화를 억제하려는 노력이 경주되었다. 현재 여러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북한은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비핵화가 평화의 핵심이라는 시각은 여전히 평화론의 주요 내용을 차지한다.

그래서 새로운 평화를 구상할 때 다음과 같은 세가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첫째로 ‘복합역량으로서의 평화’라는 사고다. 평화는 구호나 이념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고상한 슬로건으로 대체될 수도 없다. 평화는 비평화적 상황을 변화시키고 평화상태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역량이다. 전쟁억지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이고 내부의 갈등과 혐오, 환경이나 기후에서 오는 재난, 정보화 시대의 사이버 테러에도 대응할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로 ‘공존양식으로서의 평화’라는 시각이 중요하다. 평화의 최종상태는 갈등이 없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갈등의 부재나 종식이 아니라 갈등이 관리되고 조율되며 해소될 수 있는 역량이 자리잡는 것이다. 평화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주체들, 이질적 가치들의 공존양식이다. 민주주의 원리가 평화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이유도 이런 공존의 방식 때문이다. 완전한 화해보다는 상호 인정을 전제로 한 공존질서가 곧 평화일 수 있다는 관점인데 냉전기 ‘평화공존론’의 기본논리와 상통한다. 상이한 문화, 인종, 가치의 공존을 포함하는 다문화적 평화론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셋째로는 ‘미래전략으로서의 평화’ 에 대한 시각을 갖출 필요가 있다. 평화는 단지 갈등없는 상태가 아니며 평화가 내포하는 다양한 가치들을 실현하고 지향하는 공동체의 기본속성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이 경우 평화는 국가간에 한정되지 않고 시민사회 내 다양한 주체들의 일상에도 자리잡는 총체적인 것이 된다. 국제적으로, 내부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평화가 제도화하고 일상화하는 공동체를 구현하는 전략적 비전이 평화인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 나아가 한반도 국가공동체가 추구하려는 미래공동체의 모습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마무리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이란 말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무는 중한데 갈 길이 멀다는 말을 ‘갈 길이 멀지만 임무가 중하다’는 의미로 고쳐 읽고 최선을 다하자는 덕담으로 끝을 맺었다. 안팎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은 분명 멀고 어렵지만 그럴수록 이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는 임무의 중대함도 뚜렷하다는 마음을 담은 것이지만, 현실 정책을 다루는 전문가들에게는 너무 원론적인 발제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기본과 원칙은 중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