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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문화가 될 때

제14차 한독통일자문회의가 11월 17, 18일 이틀간 베를린에서 개최되었다. 엘리자베스 카이저 동독특임관 겸 재무부 정무차관이 독일측 단장으로, 국감으로 참석하지 못한 김남중 통일부 차관을 대신한 김병대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이 한국측 단장으로 회의를 주재했다. 현저히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야 할 한국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와 AfD의 급부상이라는 환경에 직면한 독일이나 분단과 통일, 통합의 쟁점이 만만치 않음을 재확인한 자리였다

독일이 통일된지 35년, 우리가 일제 식민통치를 받았던 것과 꼭같은 시간이 흘렀다. 장벽이 있던 곳은 유적지가 되었고 1990년의 대격변도 교과서에서 배우는 과거사가 되었다. 하지만 ‘화해의 교회’의 낡아진 외벽처럼 과거는 사라졌다기보다 변색된 형태로 지속되면서 또다른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중이다. 건축을 통해 분단과 통일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현장답사를 하면서 나는 도시공간도 정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 또 시간이 흐르면 살벌했던 정치적 대립도 달빛 속 풍경같은 문화가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독일측이 기획하고 안내한 현장답사의 첫 방문지는 소련전승기념공원이었다. 나찌 독일군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한 소련군의 위용을 드러내고 희생당한 장병들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조성한 곳이라 한다. 공원의 규모가 엄청나고 공산주의 조형물의 전형적인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소련과 동독이 사라진 이후에도 이 공원이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신기했는데 지금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북한 주체탑을 연상시키는 추모탑을 둘러보며 나는 8.15 광복절 김정은 위원장의 연설을 떠올렸다. 광복 80주년을 맞는 해, 북한은 ‘쏘련군 장병들의 숭고한 국제주의 정신’과 ‘조선-러시아 친선의 영원한 생명력’을 힘주어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 러시아 정서가 복잡해지는 오늘 독일인들은 이 공간에서 어떤 과거를 떠올리고 어떻게 그 시기를 재해석할까 궁금했다.

오후엔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대로를 축으로 2차대전 직후에 조성된 근대건축지구를 답사했다. 동서 베를린에서 각기 경쟁적으로 도시재건사업을 전개했던 현장인데 이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다는 전문가가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동쪽에는 스탈린 거리로 명명되고 이후 칼 마르크스 대로로 개칭된 거리의 양편에 사회주의의 위용을 과시하는 거대한 건축물이 세워졌다. 고대 로마건축의 느낌도 포함된 웅장하고 아름다운 외양이 강조된 건물들이었다. 반면 서베를린에서는 한자(Hansa)지역을 중심으로 자유주의의 이념을 드러내는 도시계획이 추진되었다. 전세계의 유명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다양성과 개별성을 강조하는 다른 유형의 주거공간을 조성한 것이다. 고층빌딩 대신 낮은 주택들, 외부공간보다는 내부를 중시하고 녹지공간을 곳곳에 배치한 설계로 서베를린의 개인주의와 다원주의를 드러내려 한 특징이 뚜렷하다.

동서를 잇는 이 거리는 언뜻 여느 도시의 한 구역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주목해보면 건물의 외양도 모습도 사뭇 다르다. 그래서 동서독의 자존심을 대변하려는 체제경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전시공간이 되고 있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동베를린은 노동자들의 주택이 강조되고 서베를린에서는 ‘사회주택’을 강조한 차이가 있지만 모두 공동주택의 개념을 공유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왔다. 이념적인 체제대결에도 불구하고 동서독 공히 주민 모두의 집단적 생활공간을 중시하려는 공동체적 지향이 강했음을 보여주는 현장인 셈이다. 어쩌면 그런 특징이 서독에서도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이 사라지지 않고 SPD의 오랜 정치적 위상과 역할을 가능케 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값비싼 주거지대로 변했으나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쉽게 변형할 수는 없다고 한다.

회의가 개최된 연방 재무부 청사 역시 역사성이 뚜렷한 건물이었다. 브리핑에 따르면 이 건물은 히틀러 시대인 1935년 독일제국의 ‘힘의 상징’으로 건축된 곳인데 2차대전 중에는 공군사령부가 위치했던 곳이다. 전쟁 중에 심한 폭격을 받았지만 상당부분이 온존했던 덕분에 동독의 건국과 개혁이 진행되는 주요한 정치공간으로 활용 되었다. 1991년 통일 직후엔 그 논란 많던 신탁청이 이곳에 자리잡았다. 통일직후 동독의 구조조정, 국유재산 민영화를 담당했던 기관인데 이 업무를 관장했던 데틀레프 로베더 신탁청장이 집에서 총격으로 살해될 정도로 심한 갈등이 내재되었던 곳이다. 이 사건은 [퍼펙트 크라임: 로베더 암살사건]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당대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히틀러 시대(1935-45), 분단시대(1945-1990), 통일시대(1990- )를 거쳐오면서 뒤섞이고 중첩된 상이한 시대성을 고스란히 보존하는 방식으로 현재를 이해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히틀러의 독일 제국, 동독의 의회, 그리고 통일독일 신탁청의 역사가 같은 공간 안에서 이어짐을 담담하게 드러내는 저런 방식은 ‘잘못된 역사’를 지우고 ‘바른 역사’를 다시 쓰려는 우리의 열망과 꽤나 다르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평가는 섣불리 내리기 어렵지만 정치적 차원과 문화적 층위가 무분멸하게 뒤섞이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과거가 재해석될 때마다 정파적 정쟁으로 비화되지 않으려면 인간사의 모순과 역사적 갈등을 문화적 입체화로 그려보는 역량이 중요할 터이다. ‘역사의 현장’이라는 말은 이런 역설적인 중첩성과 아이러니를 함께 보여줄 때 더 잘 어울리고 그런 속에서 새로운 상상력과 대응력도 더 잘 길러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