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라 하지만 90년을 건강하게 활동하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공부한 사회학계에 한정해서 본다면 한완상 교수님, 김경동 교수님, 신용하 교수님 등이 모두 구순이 되셨거나 가까왔는데도 변함없이 명석하고 열정적이시다. 직접 스승 제자 사이는 아니지만 이런 저런 관계로 가까이 뵈었던 백낙청, 이만열 교수님도 여전히 건강하고 지적인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각자 몸과 마음을 지키는 노력이 컸겠지만 이미 고인이 되셨거나 건강의 어려움을 겪는 동세대의 여러 분들에 비해보면 복을 많이 타고 나신 분들임에 틀림이 없다.
지난 6월에는 한완상 교수님을 모시고 몇 제자들이 모여 9순을 축하하는 조촐한 식사 자리를 만들었다. 걸음걸이가 다소 불편하고 질환도 있으시다지만 기억력과 말씀이 여느 젊은이들 못지 않았다. 특히 사회학 공부를 하던 학창시절, 유학시절의 이야기를 하실 때는 젊은 때의 꿈을 상기하시는 모습이 장년같이 보였다. 기독교의 정신과 사회학 공부를 연결시키려던 당신 삶의 스토리를 정리하는 일을 도와달라신 청에 부응하지 못한 송구한 마음이 한켠에 여전하다. 나는 한 선생님 얼굴과 함께 평생 추구한 지적 화두들과 내 감사함을 담은 족자 한 점을 제작해서 헌정했다. 이후 한선생님 댁을 방문한 여러 분으로부터 그 족자가 거실 한복판에 걸려 있었다는 인사를 전해 듣고 다소나마 도리를 다한 듯 마음 한켠이 가벼워진 느낌을 받았다.
지난 9월에는 서울대 중앙도서관이 제작하는 서울대 샤복샤복 유투브에 신용하 교수님과 대담을 나누는 역할을 했다. 다리가 다소 불편하지만 여전히 건강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모습이 후학 제자들에게는 큰 귀감이 된다. 내가 사회학자로 활동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학은과 배려를 베푸신 분이기에 굳이 연세와 상관없이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서울대에 기증하신 화양 신용하 문고 특별전시가 현재 준비 중이어서 그 행사와 함께 구순을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어볼 계획인데 모든 분들께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학은에 감사하는 자리를 어떻게 만들어볼지 고민 중이다.
이번 주엔 호산 김경동 교수님의 구순기념논문집 봉정식이 있었다. 60년대 학번인 김성국 교수와 70년대 초반 학번인 배규한 교수 등이 힘을 모아 두툼한 기념 책자를 간행했다. [선구자의 길- 김동의 동서융합 사회학] (박영사) 이라는 책인데 모두 3부로 구성되어 1부는 김경동의 학문세계의 총괄적 조망, 2부는 김경동 사회학의 계승과 확장을 다룬 논문들로 3부는 인품과 추억들을 담은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에세이를 쓴 분들은 대체로 70년대 관악시절을 기억하는 선후배 들인데 시대는 암울했지만 학창생활에는 나름 열정과 낭만이 없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요즘 분위기로는 구순기념논문집을 내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자칫 민폐가 되기 쉽고 자발적이고 흔쾌하게 진행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부분 60대를 넘기고 현재 70대 중반을 넘어서는 후학들이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했다. 교수님 댁을 방문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받던 일, 청아한 노래와 그림솜씨에 경탄하던 일, 꾸중을 들으면서도 고마왔던 일 등이 담겨있어 글 속에 훈훈한 온기가 가득하다.마치 60-70 들의 동문회장 같다는 농담이 오갈 정도로 학창시절의 추억담으로 행사장 역시 따뜻했다. 나도 참 오랜만에 선후배들과 옛날 생각을 하는 자리가 되었다.
아마도 이런 것이 가능했던 까닭은 호산 선생의 푸근한 인품, 이론적 포용력, 그리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지적 탁월함이 두드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누구보다 뛰어난 영어실력과 국제적 감각을 가진 분이면서도 동양사상, 선비정신을 이론화하려는 문제의식도 남달랐다. 시를 쓰고 소설에도 도전하며 기타도 치며 노래하는 르네상스형 지식인의 풍모가 이런 결과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나는 명심보감의 한 귀절을 쓴 서예작품을 봉정했다. 김경동 교수님이 매우 좋아하셨고 사모님은 집안 거실에 두고 매일 감상하겠노라 하셨다. 아이오와대 김재온 교수님 축하글과 함께 책의 맨 앞을 장식하는 영광도 누렸다.
그러고보니 세 분의 선생님들을 올 한 해 이런 저런 계기로 뵙고 축하드리는 기회를 가진 셈이다. 변변치 않지만 여러 형태로 감사의 뜻을 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이 세 분은 학문의 지향은 물론이고 인품과 인격의 색깔도 매우 다르다. 감사하면서 나는 90의 때 어떤 빛깔로 사람들에게 비칠까 생각해 본다. 그 때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부터 불확실한데 너무 이른 고민일수도 있겠다. 아름답게 물든 낙엽들 보면서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이 어렵고도 귀한 것이란 생각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