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4월 16일 저녁,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창립 20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설립을 주도한 정운찬 전 총장을 비롯하여 오랜만에 뵙는 학교 안팎의 여러분들을 반갑게 만났다. 2006년 4월 초대 소장으로 임명된 후 다섯번의 임기를 연임하면서 내 50대의 전부를 쏟아부은 곳이기에 그 20년의 족적을 되돌아보는 자리에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남북관계는 모순적이다. 가까우면서 멀고 신뢰를 원하면서 불신한다. 정파와 이념, 이해관계에 따른 남남갈등도 심하다. 균형잡힌 시야와 종합적 판단이 절실한 분야인데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열린 토론과 객관적 분석이 쉽지 않고 신뢰가능한 데이터도 부족하다. 나는 서울대학교가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미력이나마 그 사명을 감당하고자 안깐 힘을 썼다.
2007년부터 시작된 통일의식조사, 2008년부터 발표된 남북통합지수, 2009년부터 추진한 평화인문학, 2012년부터 조사한 북한 사회변동 등은 그런 노력의 사례들이다. 그 분석자료와 문제의식이 지금도 중요하게 언급되고 공유되고 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 한동안 낯설어하던 ‘통일평화’란 말이 익숙해진 것도 통일과 평화가 병행연계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확산에 기여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10년의 기간, 힘들었지만 보람된 시절이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꿈같은 일들을 추진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눈덮인 금강산에서 워크샵을 열기도 했고 평양의 병원과 영유아 시설, 학교도서관을 돕는 일로 여러 기관과 협력체계를 모색하기도 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서울대-김일성대-연변대의 공동학술회의가 성사되고 그 정례화를 상의할 때의 감격은 지금도 또렷이 남아있다.
안타깝게도 이 모두 과거사가 되었다. 오늘 남북관계는 냉전시대를 방불할 정도로 철저히 단절되었다.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은 민족관계나 통일목표 자체를 부정하기에 언제 새로운 기회가 열릴지도 막막하다. 전세계가 전쟁의 비극 앞에 첨단무기를 자랑하고 핵무력을 선망하는 상황에서 평화의 깃발도 외면당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연구원을 이끌어가는 김범수 원장을 비롯한 후배교수들에게 격려와 성원을 보낸다.
사방이 막혀 있을 때 하늘을 보라 했다. 나는 요즘 1930년대를 종종 떠올린다. 일본제국이 만주와 동남아를 아우르는 대동아공영권의 맹주로 승승장구할 때, 독립의 가능성이 희미해지던 그 때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선각자들이야말로 푸른 하늘을 쳐다본 자들이 아니었을까. 냉정한 분석, 치밀한 계산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희망하는 미래, 포기할 수 없는 꿈의 진정성을 재확인해야 할 시대가 오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