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고언”이라는 타이틀을 단, 한완상 출판기념 강연회가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있었다. 마지막 강연이 될지 몰라 작은 자리를 준비했다는 따님의 연락을 몇 주 전 받았을 때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나 생각했고 무거운 마음으로 종로5가로 향했다. 그런데 행사장은 어느 유명 인사의 출판기념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만원이었고 열기도 뜨거웠다. 한 교수님의 거동은 다소 불편했지만 목소리와 말씀은 여전히 또렷하고 열정적이었다.
”예수의 길을 가라” – 강연의 제목이자 책의 핵심화두다. 스스로 개척해서 수십년간 봉직한 새길교회 설교를 중심으로 그간의 메시지들을 정리한 책인데 ‘내가 만난 하나님, 내가 만난 성령님, 내가 만난 예수님’으로 구성된 목차를 보면 전형적인 신앙 간증집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책의 띠지에도 “나는 민중사회학자이지만 한국교회 신학자로 평가받고 싶다. 그리고 영원한 ‘예수따르미’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적혀있다.
사실 한교수님의 글에서 예수의 삶이 언급되지 않는 걸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모든 사회현상에 예수의 시각을 적용했다. 어릴 적 내면화한 신앙의 힘이 그 바탕이 되었을터지만 본의 아니게 학계를 떠나게 된 것도 그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가장 엄혹한 남북관계, 이념문제를 다루는 현장에서도 그는 예수정신을 강조했다. 교계는 물론이고 진보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이상주의자라는 평가를 넘어 현실을 모르는 낭만주의자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늘 꿋꿋하게 지론을 견지해왔다.
꽤 오래전 ‘평화’를 주제로 하는 어느 심포지엄 자리에서 나는 한완상과 라인홀드 니부어를 비교하는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말로 유명한 니부어는 정치영역에서 지나친 도덕론이 갖는 한계와 위험을 지적했다. 그에 반해 예수정신에 입각한 ‘우아한 패배’를 옹호하는 한교수님의 관점은 종교적 윤리의 한 전형일 수 있다. ‘심정윤리’와 ‘책임윤리’를 준별해야 한다는 막스 베버의 견해에 공감하는 나로서 당시 비판적인 견해를 발표했던 기억이 있다.
한교수님께 축하 인사를 드렸다. 반갑게 손을 잡으시면서 자네 작품을 책 앞에 넣었노라 했다. 작년 90 생신 무렵 학교와 교계 등에서 도움을 입었던 소수의 사람들이 저녁자리를 준비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의 인연과 사랑을 이어온 나는 화선지에 한교수님 얼굴과 그간 강조해온 화두들을 쓴 작품을 만들어 증정했다. 감사의 말과 함께 “평화의 땅 하나님 나라가 속히 오기 바라며”란 바램을 적어서..
이후 몇 분으로부터 한교수님 댁 거실에 그 족자가 걸려있고 한교수님이 자랑스러워 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유명한 김병종 화가의 작품이 걸려있는 그곳에 감히 어울릴 수준일 리 만무하지만 내 마음을 읽어주신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책을 펼치니 과연 내지의 첫 페이지에 그림이 실려있다. 반갑고 고마왔는데 원래 족자의 상하비율을 조정한 듯 글자가 너무 붙어있고 낙관의 붉은 색이 드러나지 않아 편집이 다소 아쉬웠다.
이만열, 김용덕, 이삼열 교수님 등 오랫만에 얼굴을 보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동기인 권태선 이사장도 논평자로 참석해서 반갑게 만났다. 스스로 그 자리가 계면쩍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진솔한 의견표명이 와닿았다. 젊은 세대의 참석자가 별로 보이지 않아 ‘청년 예수’를 내걸기엔 너무 고령화한 한국교계의 현주소를 보는 듯 했다. 종로5가, 기독교회관의 옛역사는 기억할 사람을 찾기 힘들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가르치는 시대가 되었다. 예수의 길을 가라 – 강연장 플래카드가 어딘지 낯설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