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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50년

서울대가 관악으로 옮긴지 50주년이 된다. 2년여에 걸쳐 그 반세기를 지성사의 맥락에서 살펴보는 공동연구를 수행했다. 나는 사회학 분과학 50년사와 별도로 전체 총론이 될 ‘사회과학 50년 지성사’도 집필을 부탁받았다. 그 결과물이 [서울대 사회대를 통해 본 사회과학 50년 지성사]라는 책으로 출간되었고 10월 14일 그 내용을 발표하는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내가 총론을 발표하고 각 분과별로 집필자들이 개별 학문의 역사를 정리하는 시간으로 뜻깊은 자리였다.

1975년 서울대학교의 대대적 학제개편을 기점으로 문리대, 상대가 없어지고 인문대, 자연대, 사회대의 소위 ‘기초과학 3 대학’ 체제가 자리잡았다. 이것은 단지 한 대학의 행정편제 개편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한국사회에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라는 학문분류방식이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 ‘사회과학’이란 말이 소개된지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학문영역이라기보다 일종의 이데올로기, 좌파적 정치담론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오랜동안 ‘사회과학’이란 이름을 단 연구나 교육단위는 자리잡지 못했다. 북한에서 일찌기 ‘사회과학연구원’이 매우 중요한 정치이념기관으로 자리잡았던 것과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준다.

한국의 사회과학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과 밀접히 연결되어 전개되었다. 대학의 팽창과 대학교육의 확장은 근대화의 주요 동력이자 그 결과였다. 한국의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가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회과학은 중요한 지적 자원을 제공했고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들이 그 인적 지적 자원을 제공했다. 1975년 사회대 출범을 가능케 했던 것은 1968년 4월에 확정된 ‘서울대학교 종합화 10개년 계획’이었는데 국가주도의 발전모델을 심화시키려던 시대적 상황이 그 배경이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이 종합화계획은 정부의 강력한 법적 재정적 지원을 배경으로 추진된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나는 총론을 발표하면서 반세기 지성사의 성과와 성취 못지 않게 여러 문제점도 지적했다. 80년대 사회대가 보여주었던 다학제적이고 종합적인 연구협력의 전통이 확대발전되었다기 보다는 학과별 내부화와 전문화로 더욱 치달은 점, 아카데미즘과 정책연구의 관계에 대해서도 대학의 자율성과 다양성, 교수의 독자성이라는 틀 속에서 공존해온 셈이지만, 진지한 논의를 통해 아카데미즘의 기본성격을 새롭게 정립하는 노력은 그다지 없었던 점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학생을 키워낼 것인가라는 교육론에 있어서의 반성이 부족하고 여전히 최고대학이라는 이름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성찰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1999년 임마뉴엘 왈러스틴은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이라 책을 편집 출간하면서 “21세기를 위한 사회과학”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근대형성기에 구축된 사회과학의 적합성이 현저히 약화되었고 새로운 세계질서는 새로운 사회과학을 필요로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책자였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그의 비관적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근대 초기 정립된 지식체계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데는 대부분 공감한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혁명의 급진전 속에서 대학의 개혁이 화두로 부상하는 오늘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회과학은 미래를 위한 어떤 전망을 내놓을 수 있으며 우리 시대에 어떤 희망과 꿈을 던져줄 수 있을까? 융복합의 시대에 인문-사회-자연의 학문 3분류는 얼마나 유효할 것인가?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온라인에 쏟아지고 인공지능의 능력에 전인류가 놀라고 있는 상황에 대학은 언제까지 지식생산과 고등교육의 전담기구로 존속할 수 있을까? 각자도생의 경쟁에 함몰된 젊은 청년들에게 사회대가 제공하는 삶의 향방과 지혜는 무엇이어야 할까? 그 답을 얻었노라 자만하지 않고 이 질문들을 진실되게 되물으며 지식인으로서의 존재양식을 새롭게 고민하는 것, 시대적 우환의식을 공유하는 것에서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해 가야 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