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기념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하고 있는 “향수 고향을 그리다” 전시회를 관람했다. “일제강점기에서 현대까지 각 시대의 표정이 담긴 한국의 풍경화를 살펴본다”는 것이 이 전시의 기획의도라 한다. ‘Landscape of Homeland and Longing“이라는 영어 표현 그대로 ‘고향’과 ‘향수’와 ‘풍경’이 핵심 키워드이고 작품명에도 피난, 먕향, 귀로 등의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총 4부로 나뉘어진 전시실을 둘러보면 한국현대사를 파노라마처럼 만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20세기를 고향이란 화두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풍경화라는 그림 장르가 그런 정서에 잘 어울리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림 사이에 배치된 정지용, 윤동주, 이상화, 김기림 등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들의 시도 그런 느낌을 더한다.
전시의 첫 공간은 1920-40년대에 그려진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빼앗긴 땅‘ 이미지로 식민지 상황을 형상화한 풍경들이다. 암울한 시대를 조선색, 향토색을 탐구하면서 견뎌내려 한 이들의 정서를 지금 내가 공감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론 새로운 미학적 표현욕을 추구하면서도 식민지라는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딜렘마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김용조, 이인성, 금정연 등의 작품이 언뜻 유럽의 미술관에서 보던 풍경화와 비슷해 보이지만 가로수, 마을, 인물 등 소재가 모두 향토에 대한 짙은 애정을 담고 있는 것이 그런 내면을 드러낸 것 아닌가 싶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의 형 이상정의 작품은 처음 보았다. 군인이자 독립운동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망향곡’이란 서정시를 쓰기도 했고 망명생활을 ’표박기‘라는 일기로 남겼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가 사용하던 여러 중류의 낙관도 전시되어 있는데 작년에 그의 백부가 조카의 귀국을 기다리며 쓴 서예작품을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이상정, 이상화를 보니 뛰어난 사회학자이자 초대 IOC 위원이었던 이상백의 얼굴도 떠오른다. 한국 대표 명문가의 3형제를 이곳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셈이다.
2부는 광복 직후의 상황을 그린 작품들이다. 입구에 전시된 이상범의 6폭 병풍은 ’효천귀로‘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1945년 작품이다. 해방 직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감격을 풍경 속에 담은 것이 아닌가 싶은데 수묵화의 잔잔한 배치 속에 정겨움과 그리움이 안개처럼 서려있다. 나는 1948년 문신의 작품인 ’뒷산과 하늘‘ 앞에서 한참 머물렀다. 파란 하늘의 색감과 구름의 흰색이 너무도 선명해서 광복 이후의 흥분과 기대감이 표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오지호의 1948년 풍경도 당시의 기대와 희망 속에 약간의 염려를 담고 있는 듯 했다.
3부는 ’실향‘이란 타이틀 하에 ’폐허의 땅‘이란 부제를 붙인 전시공간이다. 6.25 전쟁의 참화와 피난의 애환을 담은 그림들이다. 피난민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이종무, 서석규, 윤중식, 남관의 여러 그림들은 당시의 상황을 찍은 보도 사진 이상으로 시대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증언자료라 할 만하다. 솔직히 나는 전쟁과 분단, 이산의 역사가 이렇게 많은 미술 작품으로 남아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수억의 ‘625 동란’, 남관의 ‘피난길’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고 1951년 전쟁 중 윤중식이 그린 ‘전쟁드로잉’과 이달주의 ‘귀로’ 앞에서는 작가가 느꼈을 비애를 공감하는 듯 했다. 후일 한글의 조형화에 앞장섰던 이응노 화백이 전쟁의 폐허와 전후 도시풍경을 여러 화폭에 담았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전시실 한 켠에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가 걸려있다. “아모도 그에게 수심을 알려준 적이 없기에 힌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 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려서 공주처럼 지쳐서 도라온다 ” 인터넷 상의 설명을 빌어본다면 시에서 나비는 순수하고 연약한 인간존재를, 바다는 문명에 의해 만들어진 혹독하고 냉혹한 현실세계를 상징한다. 해방 후의 현실이 ‘청무우밭’인 양 환호했던 자신의 모습이 마치 물정모르는 흰 나비같다는 당혹감이 이런 시상을 낳았을 것이다.
마지막 전시실은 ’망향‘이라는 타이틀 하에 ’그리움의 땅‘이란 부제를 달았다. 전쟁은 끝났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수많은 실향민들의 한, 망향의 그리움이 핵심 주제다. 대부분의 실향작가들은 개인적으로 이산과 가난의 고통을 겪어야 했고 한국화단의 중심에 서기도 어려운 시기를 살았다. 박성환, 이중섭, 홍종명, 최영림, 전화황 등의 그림에는 주변성이란 값비싼 비용을 치루면서 일구어낸 독특한 미학이 아름답게 담겨있다. 이석우의 ‘피란길’은 남부여대하고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을 그렸는데 작년 그리스에서 보았던 ‘이주인의 애환’ 전시의 대표작을 생각나게 했다. 실향과 이산의 경험은 전세계 공통의 이미지를 낳는게 아닌가 싶다.
급격한 근대화 속 60년대 변화상을 그린 작품들을 만난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만익의 서울역 (1962)과 청계천 (1964), 김원의 서울전경 (1961) 등은 60년대 초 한국사회가 겪은 대변혁의 현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나는 이들 작품이 어떤 사진자료나 신문기사보다 이 시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소망을 그린 작가들의 상상력과 이상향의 추구도 새롭게 와 닿았다. 박돈의 ’성지‘ (1957), 홍종명의 환희 (1970), 윤종식의 삶(1953) , 이석우의 ’낙원‘(1970) 등이 그러하다. 굳이 사회성이나 시대성을 명시적으로 표방하지 않아도 구도와 소재, 표현에서 드러나는 당대의 분위기는 그 자체가 역사적 자료라 할 만하다.
21세기 오늘 젊은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노년세대들조차 고향의 정서는 예전같지 않다. 죽기 전 고향땅을 밟아보겠다던 실향민의 망향 정서도 세월과 더불어 현저히 약화되었다. 그래서인가, 망향으로 끝나는 전시가 웬지 허전하다. 어딘가 망향 이후의 그리움을 전시하는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21세기 도시인은 어디를 향한 향수를 노래하고 어떤 그리움을 그릴 수 있을까? 인생이 지향해야 할 ‘본향’이 어딘가 있지 않을까? 덕수궁을 나서면서 그런 물음들을 혼자 던졌다. ‘본향을 향하네’ 흑인 영가의 한 귀절이 귓전을 맴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