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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3) – 영화로의 초대

소록도 답사기를 공유했더니 도진순, 한경구 두 분이 각각 한센병과 관련된 일본 영화를 소개했다. 도 교수가 추천한 ’앙, 단팥인생 이야기‘는 일본식 단팥빵인 ‘도라야키’를 만들어 파는 중년남자 센타로를 주인공으로 한 단정한 스토리다. 어느 날 기형 손가락을 가진 도쿠에 할머니가 나타나 자신을 아르바이트생으로 써달라고 말한다. 처음엔 거절했다가 마지못해 받아들였는데 할마니가 정성스레 씻고 달여서 만든 앙의 맛이 소문이 나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정작 단것을 싫어하던 센타로도 비로소 도라야키의 참맛을 알게 되고 일상이 상당한 활력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도쿠에 할머니가 한센병 환자임이 알려지면서 가게는 손님이 뚝 끊긴다. 그 사실은 안 도쿠에는 가게를 그만두고 격리시설로 돌아갔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는 대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벚꽃이 참 아름답지 않나”라는 말을 하며 주변 사람들이 한 번 더 하늘을 올려다보도록 만들고, “팥에는 진심을 담아야 해”라며 열성을 다해 팥을 젓는다. 벗을 삼으라고 가져다 준 새장의 새를 숲속으로 날려보냄으로써 자유에의 갈망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영화의 시나리오와 연출은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맡았고 이 영화는 제68회 칸 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개막작이었다. 나가세 마사토시가 센타로를, 영화 <도쿄 타워> 등에 출연했던 배우 기키 기린이 도쿠에 역을 맡았다. 일본다운 잔잔한 영화로 한센병 환자의 차별과 격기에 대한 문제제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한경구 교수는 ‘모래그릇’이란 일본 영화를 강추했다. 일본의 유명한 추리작가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모태로 한 것인데 노무라 요시타로 감독이 1974년에 발표한 영화다. 이 ‘모래그릇’은 이 작품 외에도 2004년, 2011년 TV 드라마로 거듭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끈 작품이었다 한다.

도쿄 열차역에서 한 노인이 살해된 채로 발견되어 수사가 진행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신원조차 밝혀지지 않았던 그 희생자는 한 시골 마을에서 순경으로 재직하며 많은 덕망을 얻었던 선량하고 성실한 인물이었다. 아내와 사별하고 퇴직을 한 뒤 고향에 와서 잡화점을 운영하다가 어느 날 그렇게 시체로 발견된 것인데 대체 그는 누구고 왜 죽었으며 누가 살해한 것인가를 추적하는 형사의 집념을 그린 내용이다.

작은 단서를 바탕으로 수사를 집요하게 전개해가는 중견형사 이마니시(탄바 테츠로)와 젊은 형사 요시무라(모리타 켄사쿠)가 스토리를 구성하는 주역이다. 이 두 형사는 ‘카메다’ 라는 단어의 추적에서 시작하여 흥미로운 발상의 고리를 통해 좀더 분명한 단서를 찾게 된다. 마침내 정치계의 거물의 딸과 연애하는 젊고 유망한 음악가 와가 에이료(가토 고)라는 인물에 주목하게 된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고아라고 알려진 에이료는 스스로 자수성가한 음악가로 큰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고, 전직 장관의 딸 사치코 라는 아름다운 연인과 연인 관계이지만 뭔가 외골수적 모습으로 음악에 몰두하는 인간이다.

많은 대사와 복잡한 수사극으로 전개되던 작품이 어느 순간 대사도 거의 없이 거지처럼 유랑하는 소년과 병든 아버지의 가슴 아픈 여정으로 돌변함으로써 영화는 전혀다른 결말로 이어진다. 나병에 걸려서 정처없는 떠도는 아버지와 함께 거지 부자 생활을 하던 어린 소년, 이 소년을 양자로 받은 이가 곧 죽은 형사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자신을 철저히 숨겨서 비로소 사회적으로 성공 직전에 다달은 에이료가 자신의 신원을 눈치 챈 은인을 죽이게 될 정도로 한센병에 대한 극도의 혐오와 배제가 심했던 사회의 비극적인 결말이 강렬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수사 드마라 장르지만 잔혹하고 비정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가슴 아픈 인간적 내용을 담은 전개. 사건의 진실을 발표하는 이마니시 형사가 감정에 북받쳐하는 장면도 인상적이고, 한센병 이라고 불리우는 나병환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지적하는 엔딩 부분도 인상적이다. 현재 이 한센병은 적절한 치료가 되면 전염되지 않고 치료와 완치가 가능한 병으로 분류되지만 예전에는 문둥이라고 불치병처럼 인식되었다. ‘벤허’ ‘빠삐용’처럼 이 영화도 모든 비극의 시작이 나병이 원인이 된 것이고 복잡한 인간사, 가족사를 거치면서 30여년전의 비극이 결국 예기치 못한 살인사건으로 옮겨간 종말이었다.

두 작품 모두 한센인과 한센병을 직접 조명하거나 거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이것을 매개로 작동하는 일본 사회내의 강한 편견, 거부감, 그로 인한 아픔과 비극을 그리고 있다. 아름다운 인간애, 한센인도 꼭같은 인간이라는 자각, 잘못된 사회적 관습과 규범에 대한 비판이 잔잔하게 깔려져 있는 수작들이다. 소리높여 외치는 개혁이나 정의의 주장이 아닌, 평범한 일상 속에서 확인하는 고귀함과 어리석음이 새삼스럽다. 일본에 비해 우리는 너무 요란한 구호들이 난무하면서 저런 조용한 내면적 성찰은 오히려 부족한 면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