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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을 위하여 1]

놀라운 세상이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보내세요 함께 못가서 정말 미안해요’ – 한 때 선망의 도시였던 로스앤젤레스가 작년엔 대형산불로 올해는 격렬한 시위충돌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혐에 놀라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유럽의 예측불허 긴장이 초래할 충격에 놀란다. 코로나 펜데믹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동남아에서 전해지는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 소식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놀라움은 지구적 대형 사건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내 일상에서도 나를 놀라게 하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난다. 갑자기 키오스크 주문으로 바뀌고 사람대신 로봇이 등장한 동네 식당에서 놀라고 인공지능 탓에 일취월장하는 학생들 보고서에 놀라다가 그런 AI 비서를 손바닥에 두고 사는데 점점 길들여져가는 자신에게 놀란다.

놀라움을 느끼는 것 – 나쁜 게 아니다. 놀랄 수 있기에 위험을 감지하고 대처할 수 있다. 또 놀람 자체가 무미건조함을 해소하는 활력이 되기도 한다. ‘놀라는 것’이 활발한 삶을 가능케 한다는 뇌과학자의 강연을 들은 적도 있다. 그래서일까 한 시인은 ‘절대로 달관하지 말고 아이처럼 울고 웃으라’고 했다. 달관한다는 것은 곧 놀라워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우리말 ‘놀라움’에는 두가지 전혀 다른 감정이 포함된다. 경이로움을 느끼며 놀라워하는 wonder 와 두려움을 느끼며 움츠려드는 fear가 그것이다. 노란 국화꽃 앞에서 우주의 신비를 느낀 시인이 표한 놀라움이 wonder 라면 전쟁의 소식이 들려오는 위험지대 젊은 초병이 겪는 놀라움은 전형적인 fear 다. 희로애락을 넘나드는 우리는 너나 없이 이런 두 종류의 놀라움을 겪으며 산다. 가급적이면 wonder 의 감탄과 함께 살기를 기대하지만 현실이 꼭 그럴 수는 없다. 특히 2025년 오늘은 fear 의 놀라움을 증폭시키는 시대다.

뇌과학적으로 놀라움은 낯선 외부자극으로 뇌가 고도의 각성상태로 돌입한 것을 의미한다. 곧이어 이 자극이 위협적인가 안전한가에 따라 상반된 두 반응이 분기된다. 안전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wonder 의 느낌이 뒤따르고 ‘몸은 편안, 뇌는 보상모드’라는 하이브리드 상태가 되어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태도가 강화된다. 반면에 자극이 위협이라고 판단되면 교감 신경이 활성화되고 회피 회로가 강화되며 스트레스를 높여 fear, 즉 두려움의 정서를 가져온다.

외부자극에 대한 내적 의미부여에 따라 wonder 와 fear가 분기된다는 설명은 흥미롭다. 외부자극 그 자체보다도 이것을 인지하고 평가하는 주관적 해석체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살면서 체득한 누적된 경험과 장기기억, 내면화된 world model 이 판단의 중요한 참조기준을 제공한다. 인간이 신처럼 외부환경을 초월할 수는 없지만 격동의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여지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fear 의 감정을 격동시키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경기불황, 혐오와 불신, 전쟁위험, 기후위기 등 모두가 부정적인 놀람의 요소들이다. 외부자극에 눈을 감고 무관심해짐으로써 감정의 동요를 회피하려 하지만 그것이 해법일 수는 없다. 그런 소극적 태도로는 평정심을 강화하기보다 정서적 회복력의 감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피할 수 없다면 맞서라 – 이것은 놀라움의 감정에도 적용가능한 지혜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놀라움의 정서에 좀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나아가 외부자극에 의미부여하는 독해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의 경이로움을 찾아 내 정서의 면역력을 키우는 일을 시작하려 한다. 초등학교 시절 나를 들뜨게 했던 보물찾기 시간처럼, 지나치기 쉬운 놀람과 감동의 소재들을 세밀히 관찰하고 찾아내려 한다. 일상 속에서 경이로움을 확인하는 것은 곧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일상의 주변에 널려있는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고 그 신선한 파장에 놀랄 마음의 준비를 하려 한다. 그리고 이렇게 단단해진 내 놀람의 힘으로 격동의 시대가 빚어내는 염려와 불확실성에 당당히 맞서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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