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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를 어떻게 만날까? (2)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조슈와 사쓰마에 관련된 글들을 많이 접했다. 가고시마는 들릴 기회가 있어 사쓰마 시대의 박물관과 사이고 다카모리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조슈는 막부 말기 가장 많은 인물들이 피해를 입었던 곳인데다 한국과 악연이 깊은 인물들이 다수 배출된 곳이어서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지금껏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 정년을 한 지금에야 이곳 탐방을 하게 되니 내가 조슈에 관심을 가졌던 때로부터 거의 35년만이다. 하기 일원의 지도를 펴고 여행계획을 구상하다 보니 하바드 엔칭 도서관에서 독학의 편식증을 무릅쓰고 조슈 지방사 책자들을 열독했던 때가 새삼 생각난다.

“한국과 일본의 근대국가 형성과정의 비교사적 연구”라는 타이틀의 내 학위논문은 19세기 말 조선과 일본의 근대개혁이 왜 실패와 성공이라는 차이로 나타났는가를 밝히려는 것이었다. 개항기 조선과 막부 일본의 내적 역량이나 개혁지향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고 다만 개혁과정에 작용한 외세의 강도와 성격 차이가 결정적이었다는 것이 주된 주장이었다. 당시 지배적이었던 세계체제론적 사고와 민족주의적 열정이 뒤섞인 가설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조선의 ‘개화파’와 일본의 ‘개혁파’를 가급적 상세히 비교하고 그 차이가 대단치 않았음을 밝히는데 많은 힘을 쏟았다. 요시다 쇼인, 다카스키 신사쿠, 오쿠보 도시미치, 사이고 다카모리 등 일본의 토막유신파들에 대한 상세한 연구에 비해 김옥균, 김윤식, 유길준, 김홍집 등의 전기적 연구가 부족해 비교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행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메이지 시기를 다룬 책자들을 빌렸다. 그 중 미요시 도오루가 쓴 [史傳 이토 히로부미] 책자가 상세하면서도 흥미있어 보여 먼저 읽기 시작했다. 조슈와 사쓰마에서 활동한 여러 인물들의 일화와 인물평들까지 담겨있어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저자가 저널리스트 작가라는 점에서 학계의 신중한 평가보다 대중의 반응을 염두에 둔 책 같은 느낌도 없지 않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이토를 비롯한 당대의 주역들이 모두 대단한 기지와 역량, 헌신성을 지닌 인물이고 일본의 미래를 염려하는 지사들로 그려져있다. 시바 료타로 사관이라 불리는 대중적 영웅주의의 또다른 버전일 수 있어서 주의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박영신 교수께서 내 학위논문을 출간하겠다고 동의를 구하신 적이 있다. 그때 선뜻 응하지 못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내 논지에 대한 논증이 아직 불충분하다는 판단때문이었다. 당시로서는 약간 더 실증적인 자료를 보완하면 출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고 일본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나는 내 기본논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크게 두 가지 쟁점이 심각한 질문으로 내게 떠올랐는데 1) 19세기 후반 한일의 정치변동을 성공과 실패라는 시각에서 대비하는 것이 타당한가 2) 한말 개화파 세력이 막부말기 개혁파세력과 역량과 세력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내리지 못해 결국 출간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일본에서도 메이지유신에 대한 평가는 성공과 실패라는 시각과 직결되어 있다. 한편에서는 일본의 근대국가형성에 성공하고 동북아에서 서구문명화를 선도하는 문명국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이를 높이 평가한다. 반면 천황제 군국주의로의 진행으로 일본이 전쟁국가가 되고 결국 패전으로 이르게 된 계기가 메이지유신에 있다고 보아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통상 보수적인 역사관에서는 메이지 유신을 높이 평가하는데 비해 진보적인 역사학계는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다. 최근에는 [메이지유신이라는 과오] 란 책이 간행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을 멸망시킨 요시다 쇼인과 조슈 테러리스트”라는 부제를 달고 있을 정도로 조슈의 메이지 주역들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유교의 선린평화론적 사상을 확장할 수 있는 싹을 억누르고 대외침략의 길로 나가게 된 결정적인 책임이 이들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국가중심의 역사해석은 불가피한 것일까? 근대 역사학이 국가학과 밀접하고 민족주의와 친연성이 강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내가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를 비교하겠다고 생각한 발상 그 자체가 이미 국가중심적인 패러다임을 수용한 것임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고보면 메이지 시기 조슈의 인물들을 다룬 많은 글들도 전형적으로 ‘국가사’의 관점에서 평가되고 있다. 사쓰마의 사이고 다카모리가 영웅시되어 영화로 만들어지고 도사의 사카모도 료마가 시바 료타로의 작품에 의해 구국스토리의 주인공이 된 것이 그 전형적 사례다. 조슈를 만나면서 그들의 영광과 우리의 치욕, 그들의 성공과 우리의 패배라는 이분법을 넘어설 어떤 스토리를 준비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