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사단법인 ‘통일과 나눔’에서 주최하는 정책 심포지엄이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고려할 때 어떤 통일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이에 필요한 새로운 전략적 구상과 쟁점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해 보자는 취지였다. 특히 연초에 북한이 적대적 2국가론을 내놓은 상황이어서 더더욱 현실감과 정치성이 담긴 심포지엄이 되었다. 애초 2주제의 발제를 부탁받았지만 보다 젊은 세대의 이야기가 더 필요하리라 생각해서 덕성여대 이수정 교수를 추천했다. 대신 나는 종합토론을 맡았다.
1주제를 발제한 윤영관 교수는 지정학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통일을 향한 꿈’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폴란드가 오랜 피억압상황에서도 독립의 꿈을 잃지 않았기에 오늘의 폴란드가 있다는 마무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두번째 발제자인 이수정 교수는 최근 젊은 세대의 통일에의 무관심, 북한에의 거부감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솔직하게 논의했다. 달라지고 있는 정체성, 감수성에다 분단 70년의 무게감이 더하여 무관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변화이지만, 남북대결이라는 현실이 갖는 규정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가 보이는 딜렘마, 혼란, 위기감을 공감할 수 있었다.
세번째 주제를 발제한 김병연 교수는 남북한의 통일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분단 70년의 역사를 통해 전혀 다른 체제와 경험을 공유해온데다 경제적 조건이 크게 다른 남북이 급속한 통합을 이루기도 어렵거니와 그 후유증은 매우 클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로의 과정에서 남북간 정치와 문화의 이질성과 독자성을 상당기간 용납하도록 구상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기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적 통합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런 중간단계가 안정적일 수 없으므로 중간단계로 경제공동체를 상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김교수의 주장이다. 이런 중간단계 설정을 위해서 북한의 전략적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긴 하다.
종합토론에서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 이신화 북한인권대사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나는 패널 참석자들에게 현재의 한반도 상황악화를 가져온 근본 요인을 무엇으로 보는지, 그리고 향후 방향설정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종석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강경일변도 대북정책이 가장 큰 요인이며, 남북한이 별개의 국가로 지내면서 평화로운 통일을 먼 미래의 과제로 설정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했다. 천영우 수석은 미중의 패권경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변화와 그에 편승한 북한의 전략적 선택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북한과 평화공존을 추진하려는 발상을 낭만적이고 무책임한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진보, 보수의 입장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자리였다.
워낙 입장 차이가 뚜렷한 주제여서 애초 화기애애한 토론이 진행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양측 모두 현실의 무거운 상황을 직시할 수밖에 없기에 진솔한 고민을 나누고 공유가능한 방향을 탐색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했다. 결과적으로는 문재인 정부 책임론과 윤석렬 정부 책임론으로 서로를 비판하고 좌장, 또는 사회자로서의 역할이 개입할 수 없는 논쟁이 되고 말았다. 시간도 충분치 못한데다 정파적 입장까지 더해진 탓에 제대로된 마무리도 하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나름대로 기대를 갖고 시작하는 토론이지만 결국은 뻔한 논쟁으로 귀결되는 경험을 또 한번 겪은 셈이다. 청중과 언론은 각기 원하는 내용들만 취사선택에서 제2, 제3의 논쟁거리를 재생산하리라. 이런 토론도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와 청중에게 도움이 되려니 생각해보지만 그런 믿음의 강도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다. 지혜를 구하는 토론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자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