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인간 너머’의 상상

중장기 남북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는 한 심포지엄에 종합토론의 좌장으로 참여했다. 다양한 주제들이 논의되는 가운데 한반도 기후위기와 생태환경을 다룬 한 발제자가 ‘인간 너머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남북간 협력이 사람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동식물과 자연환경, 생태적 차원의 교류에까지 넓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사회과학의 ‘물질적 전환’, 행위자 네크워크 이론의 문제의식을 남북관계에 적용하려는 시도로 참석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여러 분야에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자는 주장을 접하게 된다. 인문학,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신학과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다. 근대 휴머니즘의 한계가 부각되는 반면 인공지능, 로봇, 알고리즘 같은 비인간적 행위자성 (Agency)은 더욱 확대되는 기술문명시대의 반영일 터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간과 자연, 생명과 무생물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던 상식이 크게 동요한 것도 한 요인이라 할 수 있겠다. 전근대적 사유라고 홀시되던 물활론, 생기론의 시각이 새로운 지적 자산이자 윤리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재조명되고 있고 SF 영화나 소설은 이미 비인간적 주체가 살아있는 행위자이자 사건의 주역으로 등장한지 오래다.

인간 너머의 접근이라는 시각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떳떳하게 내놓을만큼 우리는 그동안 인간중심적이었던가도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효율과 발전, 성장과 성공의 추구 속에, 민주화와 개인주의의 확산 속에 인간의 위치는 어디였을까? 전쟁과 대결, 불신의 시대를 살아온 한반도의 이념대립과 안보계산 속에 인간이 차지할 자리가 얼마나 확보되었던 것일까? 문화적 동질성이 외쳐지고 이산가족상봉의 감격을 공유하며 탈북자를 수용하고 교류 협력의 상생을 추구하자는 민족 담론 속에는 과연 진정한 인간적 시선이 자리하고 있었던가?

향후 우리의 접근은 인간을 뛰어넘는 것을 지향해야 할까? 오히려 인간을 주목하는 관점을 회복하자고 주장해야 할까? 아니면 인간-비인간을 함께 고려하는 제3의 길을 모색해야할까? 인간 너머를 강조하기에 앞서 던져보아야 할 질문이라 생각된다. 제3의 길이 종종 애매한 종합이 될 우려가 없지 않지만, 근대 휴머니즘에 내장된 인간중심성의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그것에 담긴 인류적 자산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반도의 엄중한 현실 앞에서 인간의 자리를 제대로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고도 절실하다. “인간과 함께 인간을 넘어”- 이런 모토는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추구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