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달라지는 잔디와 나무잎의 초록빛을 감상하다가 아 어제가 5월 18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자 고요하던 마음에 파문이 인다. 40년 전 그 날 아침 신문을 보면서 느꼈던 당혹스러움과 그 이후의 역사적 부침, 오늘의 정치적 소란에 대한 소회까지 파장의 폭은 넓다. 평온하던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이 싫어 애써 생각의 깊이를 축소시키려 하는 나를 발견한다.
개인이 실존적으로 경험하는 시간과 공동체의 역사가 구성되는 시간은 그 결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라의 흥망성쇄가 개인의 생노병사와 별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할 수 없으니 양자가 모두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인류 공동체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실존적 시간은 부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헤겔은 ‘역사의 간지’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종교가 가르치는 우주적 시간, 신의 개입, 카이로스의 순간은 국가공동체가 전유하는 시간감각의 한계를 더 문명론적이면서 실존적인 차원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코로나의 위험, 기술문명의 충격 앞에서, 여전히 삶의 무게와 질병의 두려움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5월 18일을 맞이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간감각을 국가화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실존적 삶과 문명사적 시간성까지 포괄하는 해석의 폭과 다양성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