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80주년이 되는 2025년 광복절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안으로는 탄핵정국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 정부가 출범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고 있는데다 밖으로는 트럼프 충격 속에서 미러간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서울과 평양에서 전해질 이 날의 메시지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는 북한을 향한 메시지를 비중있게 담고 있다.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 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고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남과 북은 원수가 아니다.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관계”라며 “특히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단계적으로 복원해 나가겠다”고 했다. 동시에 “비핵화는 복합적이고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하면서도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임을 강조하고 남북, 미북 대화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겠다고 했다.
서울의 시각은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선언, 판문점 선언, 9·19 공동선언까지 남북 간 합의를 관통”하는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는 입장에 서 있다. 남북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전제가 바탕에 놓여 있다. 북한이 몇차례 담화를 통해 남북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니며 적대적인 국가관계로 변화했다고 주장해온 것에 대한 정중한 반론인 셈이다. 한국은 대북적대시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이고 평화와 공동번영을 지향하지만 한 민족으로서 남북이 공동으로 점진적인 통일을 추구할 것을 확실히 표명했다.
평양에서도 “조국해방 여든 돐” 기념식이 김정은 위원장 참여하에 거행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념식의 발언 어디에도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이다. 하루 전날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의 담화에서 한국에 보내는 메시지가 충분히 담겨있다는 뜻으로 보이지만, 대남관계에 대해 굳이 김정은 위원장 수준에서 언급하지 않겠다는 무시의 의미도 담겨있을지 모르겠다. 대신 2차대전에서의 쏘련의 역할을 강조하고 현재 ‘조로관계’가 새로운 동맹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힘주어 역설하고 있다. 기념식에서 러시아 국가회의 의장 바체슬라브 월로찐이 푸찐의 축사를 대독했고 ‘인터내셔널’ 가의 연주로 대회를 마감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조국해방절’이 ‘우리 민족의 숙원이 실현된 승리의 날’이라고 했다. ‘조선인민’의 불굴의 애국심과 혁명열기가 김일성의 영도력 하에서 빛났던 역사임을 강조했다. 분단극복이나 조선해방, 한반도 평화구축 등 메시지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고 사회주의 애국주의, 우리국가 제일주의가 부각되고 있다. 특기할 점은 ‘조선의 해방을 위하여 우리 혁명군과 어깨걸고 싸운 쏘련군 장병들의 숭고한 국제주의 정신’을 높이 치하하고 이것이 ‘위력한 동맹관계로 승화발전되는 “조로친선의 영원한 생명력” 을 강조한 점이다. 올해의 연설에서 새롭게 확인되는 바다.
서울과 평양의 광복절 메시지를 접하면서 예상은 했지만 마음은 더욱 무겁다. 두 메시지의 간극은 현재 한반도 상황의 엄중함을 반영함과 동시에 향후 남북관계의 전망도 어두울 수 있음을 예감케 한다. 비록 서울의 메시지는 작년에 비해 훨씬 유연해졌지만 평양의 반응은 이전 정부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김여정 부부장이 담화에서 말했던 “보수든 진보든 한국은 우리의 적”이란 기조가 강하게 관철되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라 하겠다. 이 기념식에서 유난히 ‘조로’동맹을 강조하면서 공산주의 국제주의를 소환하고 있는 것도 한반도 문제의 탈민족화, 이데올로기적 진영화로 이어질 개연성을 보여주어 걱정을 더한다.
어떤 적대행위도 흡수통일시도도 없을 것을 분명히 하고 평화와 공동번영을 향한 신뢰재구축을 제안한 이재명 정부의 메시지는 남북기본합의서 이래의 기존합의를 존중하려는 기존의 흐름과 부합한다. 하지만 북한이 적대적 2국가를 공언한 상황의 엄중함과 무게감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약화되는 민족감정과 커지는 대북불신의 내부변화도 너무 가볍게 취급된 것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급진전되고 있는 북러동맹의 강화와 조만간 열릴 미러대화, 미중대화 등의 국제적 상황변화가 충분히 감안된 것인지도 미지수다. 우리의 대응논리가 너무 오래되고 관성적인 것이 된 측면은 없는지 모르겠다. 임무는 중한데 갈길은 멀다는 임중도원(任重道遠) 이란 말이 절로 떠오르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