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사학회 하계답사로 7월 1일부터 1박 2일간 전남 고흥의 소록도를 다녀왔다. 한센병 환자의 집단수용시설과 국립소록도병원이 위치해 있고 외지인의 접근이 자유롭지 않은 곳이다. 근대의학이 발전한 20세기 초까지만해도 “한센병은 격리 외에는 근절책이 없는 전염병‘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치료제가 개발되어 완치 가능한 병으로 인정되었음에도 집단적인 편견이 뿌리깊게 남아 사회적 차별의 대명사처럼 된 대상이기도 하다.
한센병과 한센인들에 대한 내 경험은 어린 시절 ’문촌‘과 그 마을 출신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시작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닌 서부 경남에는 60년대 초반 음성나환자들이 거주하던 마을이 더러 있었고 그곳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속해 있었다. 아이들끼리는 격의없이 잘 놀았던 것 같지만 ’문둥병‘과 관련된 무서운 속설이 내겐 늘 두려움을 불러왔고 문촌을 거쳐야 할때는 반드시 먼 곳으로 돌아갔다. 거부감이 수반된 감정의 시작이었다.
중학교 시절 [사랑의 원자탄] 이란 책을 읽었다. 나환자를 가족처럼 사랑해서 일생을 그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순교한 손양원 목사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후 그의 삶이 서린 여수 애양원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한센인을 도운 여러 선교사와 기관들도 알게 되었다. 한센병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도 차별과 기피의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은 분명해졌다.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 포용과 긍휼의 이웃으로 변했다.
80년대 초 문학작품들이 한센인을 또 한번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무진기행의 김승옥, 삼포가는 길의 황석영, 황토의 김지하, 농무의 신경림 등 당시 내가 접한 작품들은 대체로 남도 지방 서민들의 애환을 깊이 다루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도 그런 하나였는데 특히 한센인을 수용한 소록도 내부에서 일어나는 지배와 저항의 동학에 눈을 뜨게 했다.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당위적 명제에 공감하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한센인의 저항과 분노를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자립적이고 근면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소설 속 조원장의 생각에 공감하면서도 이 배후에 작용하는 시혜적, 일방적 개발독재의 논리에 비판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사회학자로서 내 연구의 시야가 넓혀지면서 푸코의 독특한 근대성 비판을 접했다. 병원, 수용소, 학교, 감옥 등 근대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지식권력, 통치 메카니즘과 함께 몸과 신체, 의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흥미로왔다. 한센인을 통해 근대의 규율권력과 인권의제를 깊이 탐구하려는 정근식, 주윤정, 김재형 등의 연구를 간접적으로나마 지켜보는 것도 큰 공부였다. 거버넌스, 헤게모니 같은 새로운 개념의 도움을 받아 일제의 식민권력과 기독교의 선교정책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한센인 관리방식을 통해 비교연구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해보기도 했다.
돌아보면 지난 50여년간 한센인에 대한 내 인식과 정서는 많이 변했다. 어릴적의 막연한 두려움은 중고등학교 시절 기독교적 동정과 포용의 대상으로 변했고 대학시절엔 권위적 개발독재 비판의 소재가 되었다. 이후 소수자 인권과 몸의 사회학에까지 관심이 확장되었는데 한국사회 전반의 지적 문화적 변화와 깊이 연동된 결과다. 나는 이런 변화를 오랫동안 내 의식의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이론적 시야가 넓어지고 비판적 관점도 강화되었으며 아는 것이 많아진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도 점점 또렷해진다. 이 반세기 동안 내가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 사회과학자가 되기위해 치룬 지적 기회비용이 무엇인지 되돌아볼 필요를 느낀다. 소록도 곳곳을 다니며 한센인보다도 오히려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니 답사는 성찰의 여정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