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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정치의 시작?

’20대 대선과 한국사회’란 주제의 발표를 부탁받았다. 그것도 대선이 끝난 바로 다음날인 3월 11일 조찬모임에서다. 대통령 선거 자체가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이해를 결집시키는 큰 이벤트이고 그 결과가 많은 정책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지만 특히 이번 대선에 쏠린 시선은 놀라울 정도다. 사회의 여러 쟁점들을 진지하게 토론하는 지혜포럼에서 이 주제를 선정하고 발제를 요청했는데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공동의 화두를 던지는 수준의 발표를 하는 것으로 수락했다.

결과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화두를 정리하는 것도 쉽진 않았다. 결국 선거일까지의 과정에서 표출된 여러 현상들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특히 1 ) 많은 논란에도 강한 정권교체론이 지속된 이유 2) 세대변수, 특히 젊은 세대의 성향이 부각된 이유 3) 이대남, 이대녀 논란에서 드러난 젠더이슈의 정치화 4) 진보와 보수 진영의 대립이 정서적 균열과 집단감정에 의존하는 경향 5) 비호감선거라는 평가에도 높은 투표율을 보인 까닭을 중심으로 검토하면서 대선 결과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변화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채 1%도 되지 않는 표차로 야당의 윤석렬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새벽에 확인하고, 출구조사 분석에 기초한 언론기사를 살펴본 후 핸드폰의 SNS 글들도 잠시 훑어보았다. 언론은 야당의 신승은 부동산정책실패와 내로남불 정치에 대한 정권교체론에 의한 것임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이대녀의 정치적 결집이 나타났다는 점에 근거하여 이준석 류의 젠더 갈라치기가 성공할 수 없었음을 지적한 글이 눈에 띠었다. SNS에서는 예상대로 극단적으로 다른 감정들이 생경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어 당분간 저 후유증이 정치영역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마음과 정서에도 오래 가겠구나 싶었다.

이전의 대선과는 달리 정책평가보다 혐오와 분노가 집단동학의 주요한 자원으로 등장한 것, 그것을 의도적으로 동원하고 소비하며 증폭시키는 기술적, 심리적, 사회적 조건이 마련된 것, 그리하여 옳바름을 둘러싼 공정한 경쟁이나 소통가능한 정책싸움의 장으로부터 노골적인 피아구분과 무조건적인 팬덤정서에 바탕한 감정정치로 퇴행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사실 감정의 문제는 정치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 보여지는데 개인이나 집단이나 감정동학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온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