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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문 횡단의 다리”

신한대 탈경계문명연구원 (원장 최완규)과 연천군이 2월 17일 공동으로 개최한 [경제횡단연합과 한반도] 국제학술회의에서 기조강연을 했다. 급하게 부탁을 받아 준비하기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주제가 흥미로왔고 낮익은 후배 제자들이 참여하는 회의여서 수락을 했다.

발제문을 준비하면서 [남북경계선의 사회학] 책을 출간한 10여년 전 생각을 떠올렸다. 그 당시 내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남북한 사이에 형성된 다양한 경계들의 성격과 변화, 그 다중적 기능을 주목하는 사회문화적 연구의 필요성이었다. 휴전선 일대의 군사분계선은 물론이고 체제, 이념, 문화, 의식, 기호와 감정의 영역에까지 드리운 다양한 경계의 존재와 그 동학을 무시한 채 민족동일성이나 체제중심적 접근만으로 남북관계를 논의하는 것은 한계가 많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맥락에서 게오르그 짐멜이 말했던 경계의 양면적 기능을 주목했다. 분단 70년을 지나면서 다양한 경계선이 형성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런 현상일 뿐 아니라 그 경계가 반드시 단절과 분리만 가져오지 않을 가능성에 주목하자는 뜻이었다. 나는 짐멜의 “다리와 문”이라는 건축학적 비유를 차용하여 경계가 양쪽을 연결하고 소통하는 접경이 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당시는 아직 개성공단이 가동중이었고 남북교류의 동력도 곳곳에서 확인되던 시점이어서 경계횡단의 힘이 점차 커지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그때로부터도 크게 달라졌다. 코로나 상황과 미중대립의 격화가 큰 변수지만 남북간 단절이 더욱 심해진 것도 큰 변화다. 2018년 이후 한반도 평화를 향한 큰 움직임이 1년 여 지속되었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휴전선의 담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개성공단도 폐쇄되었고 다시 열릴 전망도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분리와 접촉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 경계가 있는 곳에 횡단의 가능성도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그 가능성을 구체화하려면 우리사회 전 영역을 나누고 있는 분할과 대립의 경계들을 넘어설 경계횡단의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이다. 탈경계가 시대적 화두가 되는 21세기의 흐름과 같이 가면서 그런 역량이 지속적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