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아트 뮤지엄의 특별전시를 관람했다. The Power of Photography 라는 부제를 달고 잡지 The Life 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전쟁, 폭동, 축제, 슬픔, 기술 등 삶의 현장 곳곳을 카메라에 담으려 애쓴 작가들, 그 순간의 진실을 보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던 기자와 편집인들의 수고와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대전, 한국전쟁, 아폴로 달착륙, 르완다 내전 등 현대사의 장면들이 여러 사진 속에 담겨있었다.
아마도 사진의 힘은 현실의 정확한 재현능력에 있을 것이다. 부인할 수 없는 현장성, 살아있고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의 사실성을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호소력과 증언력을 지닌다. 죽음이 널려있던 전장에서 망연해하는 병사의 모습이나 1945년 8월 17일 종전 소식을 듣고 길거리에서 환호하는 시민의 모습은 평화에의 갈망을 그 어떤 매체보다 더 리얼하게 보여주는 힘을 지녔다.
하지만 사진의 힘을 대체하는 매체환경의 변화로 인해 The Life 지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퇴장을 안타까와하는 여러 움직임과 목소리가 있지만 텔레비젼을 필두로 하는 전자영상 기술의 확대는 사진의 힘을 현저히 약화시켰다. 아폴로 우주선의 달착륙 소식을 전하는 순간, The Life 지의 독점적 영향력을 텔레비젼 중계가 대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전시공간에는 웬지 쓸쓸함이 자리한 듯 했다.
온갖 영상물이 범람하고 사진이 일상의 취미가 되어버린 요즈음 ‘사진의 힘’은 더 이상 사실성과 재현성에 있지 않다. 사진은 과시와 자랑과 취향의 도구가 되거나 상상의 이미지로 변형되기 일쑤여서 이제 사진 그 자체의 사실성에 감동하는 경우는 현저히 사라졌다. 팩트와 허구가 결합된 팩션 (faction)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영상 기술의 발전과 깊이 결부된 현상이다. 이미지의 시대, 상상력의 시대라고 불리는 21세기에 사진의 힘은 어떻게 변형되고 존속할 것인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