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시공간 여행

독도 5 의연함과 떨림

독도를 오가는 뱃길은 편치 않았다. 흐린 날씨에 파도도 높아 배는 꽤나 흔들렸다. 바다는 한 곳도 고요하지 않았다. 그러다 불현듯 마주친 독도는 의연했다. 끝없는 파도의 요동과 바람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독도의 모습에서 의연함이란 이런 것이라는 메시지를 듣는 듯 했다. 청마 유치환의 “저 먼 아라비아의 사막”이 이와 같았을까 모르겠다. 하늘과 바다가 함께 연출하는 거대한 정적 속에서 독도는 ‘존재 그 자체의 힘’ 을 강렬하게 대변했다. 우주에 비하면 티끌같은 크기이지만 그 우주적 스케일에 당당히 맞서는 인간이 저런 모습 아닐까.

돌아오는 뱃길은 더욱 파도가 거셌다. 순식간에 생겨나 몰려왔다가 부서지는 물결을 보면서 고등과학원 이필진 교수의 강의 “거시세계의 양자물리”를 떠올렸다. 최근 즐겨듣는 동영상 강좌 중 하나인데 미시세계든 거시세계든 존재의 본질은 일종의 파동 즉 움직임이며 모든 물질과 존재는 그 떨림으로부터 생성된다는 것이다. 입자와 반입자의 생성과 소멸이 끝없이 진행되는 양자요동의 이미지가 파도치는 바다에서 연상된 것은 엉뚱하면서도 신기했다. 자칫 색즉시공의 동양철학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경계할 일이지만 최신 물리학의 설명이 내 근대적 사유의 틀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좋은 자극제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의연함과 떨림, 그것은 모든 존재가 지닌 두 속성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삶 속에서 요동않는 무게감과 한없이 가벼운 떨림 사이를 수시로 오간다. 때론 손해를 알면서도 내 주장과 의지를 고수해 보지만 자신만만했던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또한 얼마나 많은가. 나침반이 언제나 북쪽을 가르칠 수 있으려면 미세한 움직임에도 흔들리는 가벼움이 필수적이라 했다. 그런 점에서 의연함과 떨림은 양자택일의 대상이라기 보다 동전의 양면이다. 문제는 균형이다.

국악 페스티벌 풍류대장 1회 우승팀 서도밴드가 ‘바다’란 노래를 불렀었다. 굿을 하듯 토해내는 그 노래는 끝없는 파도의 요동침을 moving 과 무너짐으로 표현했다. “이미 너는 알지 이 moving / 다시 무너진다는 걸.” 무너져 버리지만 끝없이 쉬임없이 움직이고 요동치는 것 – 이 속에 바다의 의연함과 떨림이 함께 하는 것이리라. 그 노래를 들으며 인생을 떠올리기도 했었다. 물리학자와 천문학자, 시인과 가수가 함께하는 섬여행, 별여행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