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에커트 교수 부음

카터 에커트 교수님 부음을 뒤늦게 접했다. 그의 온화한 웃음과 다정한 모습이 떠오른다. 4년 전 하바드대 패컬티 하우스에서 함께 점심을 하며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건강이 그동안 많이 나빠지셨다는 후문이다. 이제 뵐 수 없게 되었다니 안타깝고 황망하다.

에커트 교수님과의 인연은 1989년 내가 엔칭펠로우로 간 후부터 맺어졌다. 그때 에커트 교수님은 UW에서 학위를 받고 막 하바드에 합류한 젊은 교수였다. 아직 테뉴어를 받지 않았지만 한국 근현대사를 책임진 자리인데다 제자와 후배를 잘 챙기고 폭넓은 식견의 소유자여서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당시 하바드의 한국학 연구는 족보연구의 대가인 와그너 교수가 대표하고 있었기에 근현대사보다는 조선시대사가 더 중심을 이루었던 것 같다. 엔칭연구소 부소장인 베이커 씨도 한국관련 연구자들에겐 큰 힘이 되어 주셨다.

나는 체류기간이 좀더 연장되어 가족들이 먼지 귀국하고 혼자 6개월을 더 머무르게 되었다. 새로운 집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는데 에커트 교수께서 여름기간 해외에 가 계실 예정이라며 자신의 집을 쓰도록 해 주셨다. 덕분에 무더운 여름 두 달을 켐브리지의 멋진 아파트에서 기거하는 행운을 누렸다. 집을 깔끔하게 관리하시던 분이셨기에 여간 큰 호의가 아닐 수 없었다.

90년대에는 한국학과 관련한 국내외의 시각차가 현저해지던 때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청소년기를 지나는 때와 비슷하다할까. 주관적인 고집도 형성되지만 아직 어른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과도기… 당시 나는 청소년 같은 기개로 해외의 한국학자들을 다소 낮추어 보았다. 그건 80년대의 시대정신을 공유했던 많은 사람들과 다를바 없었다. 하지만 에커트 교수는 그런 태도들을 별로 개의치 않으셨을 뿐 아니라 종종 경청하기도 했다.

이후 에커트 교수는 자신의 박사논문을 수정해서 Offsprings of the Empire 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후일 [제국의 후예]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왔는데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민중주의 시관이 널리 확대되면서 민족주의적인 자의식도 강한 때였던 까닭에 삼양사라는 기업사를 통해 한국 근대의 식민지적 기원을 밝힌 저작에 호감을 갖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서평이나 학술적 토론보다 막연한 거부감과 선입견이 작용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신기욱과 로빈슨이 편집한 Colonial Modernity in Korea 책자에 에커트 교수가 쓴 “Hegel’s Ghost” 라는 챕터는 에커트 교수에 대한 한국학자들의 비판을 더욱 가중시켰다. 나 역시 이 글에 대해선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한국연구자들이 스스로의 세계관과 학문적 패러다임을 성찰적으로 사고하기 어려웠던 지적 지체의 소산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몇 년 후 나 스스로 한국사회사연구가 민족주의적 지향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되고 나아가 근대성과 식민성의 착종을 주요한 연구쟁점으로 제기하게 되었음을 에커트 교수가 아셨을까…

이 년 전 낸시가 저 세상으로 갔는데 이제 에커트 교수가 별세하셔서 내가 하바드에서 교류하고 인연을 맺었던 두 분의 소중한 분들을 더이상 볼 수가 없다. 안타깝지만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길… 명복을 빌며 지난 후의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