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이 주도해온 평화재단이 20주년을 맞았다. 11월 14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2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개되되고 저녁에는 축하모임도 있었다. 한동안 그 활동을 지원하고 참여하기도 했던 터라 축하모임 자리에 함께 했다. 헌신적인 활동가들, 오랫동안 참여해온 전문가들, 종교단체 대표들, 후원하던 단체와 정치인들 등이 꽤 많이 모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차분하다 못해 다소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남북교류와 대북지원, 평화구축이라는 재단의 활동이 거의 모두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그래도 저 정도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것은 법륜 특유의 친화력과 함께 종교적인 헌신성을 내장한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법륜은 인사말에서 20년을 회고하며 안타까운 심경을 피력했다. ‘예측은 맞았는데 실현해낼 힘이 부족했다’는 그의 자평이 가슴에 남았다. 그가 말한 예측은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고난– 중국이 세계적 강국으로 힘을 얻기 전에, 북한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생긴 시기에 남북간 평화를 이루고 통일의 기틀을 놓아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역부족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되었고 북한은 핵무력에 의존하는 퇴행적인 노선을 선택했다.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고 느끼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참석자들의 연령대였다. 지난 시기 활동했던 분들 중심으로 초청된 결과 그리되었겠지만 60대 전후의 세대가 대부분이었다. 남북관계 민간단체와 민간운동을 담당할 젊은 세대, 새로운 역량이 양성되지 못한 현실의 반영인 듯 해서 마음이 아팠다. 사실 이것은 비단 평화재단에 한정할 일이 아닌 보편적인 현상이다.
평화재단의 성격 상 종교들과의 관계도 강했다. 소위 7대종단협의회가 남북교류의 한 부분을 담당하면서 그 활동폭을 넓힌 것이 지난 20여년이었다. 천도교를 비롯하여 천주교, 기독교, 불교, 원불교 등이 두루 참여했다. 하지만 상당히 형식적이고 느슨한 연대였을 뿐 개별 종교들 간에 편차는 심했다. 한국 종교계의 현실과는 무관하게 구색에 맞춘 평균주의, 민족종교의 과잉대표성도 뚜렷한 한계로 보였다. 그것을 반영하듯 개신교 대표는 아무도 없었고 불교나 천주교 역시 종단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또 하나 주목된 것은 참석한 정치인 면면이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비교적 중도적이라 할 분들의 모습은 여럿 보였다. 안철수, 이준석, 정세균, 김성곤… 내가 일면식이 있고 두어번 자리도 함께 했던 사람들인데 현재의 정치인, 특히 민주당 주류세력은 거의 보이질 않았다. 그러고보면 인권문제나 인도적 지원에 주목하는 평화재단 활동을 강성 진보정치인들은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차 시간에 맞춰 조금 일찍 나서 서울역으로 걸어오면서 마음이 여러모로 착잡했다. 이렇게 한 시대가 흘러가고 이제 저런 활동이 가능한 시절은 요원해진 것인가? 이들 세대가 지나고 나면 어떤 세력과 지향들이 인도주의와 평화주의를 부르짖게 될까? 종교가 그 마지막 보루일수도 있는데 최근 종교조차도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그 힘을 잃어가는 듯해서 앞날을 내다보려는 마음이 자꾸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