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노세키는 동아시아 근대화 과정과 관련이 깊은 도시인만큼 구시가지 일대에는 영국영사관, 니베초 우체국, 아키타 상회 건물 등 많은 근대건축이 남아있다. 반면 하기는 막부시대 이래의 오래된 전통마을, 구가옥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다. 특히 조카마치로 불리는 번청 성곽 주변의 마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을만큼 과거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시간 관계로 모든 곳을 방문할 수는 없지만 오가는 길에 마주칠 수 있는 곳들이어서 하기시의 공간배치와 건물의 형태 차이를 유심히 살펴보며 걷는 것 만으로도 고급스런 여행이 될 수 있다. 상층 무사의 저택, 하급 사무라이의 집, 상인의 가옥 들이 어떤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는지, 사찰과 신사, 교육기관 등이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흙벽 담장과 좁은 도로를 걸어보는 것은 즐거움과 공부의 두마리 토끼를 잡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기 일대의 대표적인 것을 간추려 소개해본다.
도코지 (동광사) – 1691년 3대 번주 모리 요시나리가 하기 출신의 명승 혜극을 개산으로 창건한 황파종의 사원이다. 총문, 삼문, 종루, 대웅보전은 모두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본당 뒤쪽 모리가문 묘소는 국가지정의 사적이며 요시나리에서 11대까지의 기수대 번주와 그의 부인 및 일족, 관계자의 무덤이 있다. 묘지 앞에는 500여개의 석등이 줄지어 있고 순난 11열사묘, 유신지사 위령묘 팔기 등이 있다.
쇼카손주쿠 – 요시다 쇼인이 1857년부터 2 년 반 동안 하급 무사와 서민의 자제들을 교육한 사설학원이다. 원래 야마가류 병학을 가르치던 사숙으로 설립자의 조카 요시다 쇼인이 재인수하여 존왕양이와 정한론를 가르치고 전파했다. 키토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타카스기 신사쿠 등 유신 지사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어 유신의 정신적 근거지로 평가받는다. 1859년 요시다 쇼인이 처형당하며 1차로 폐쇄당하고 1868년 메이지 유신 후 부활했다가 1876년 하기의 난으로 다시 폐교되었고 1890년 교육칙어로 완전 폐교됐다. 1907년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이 주변에 쇼인 신사가 건립되었고 2015 년 7 월 세계 유산 등록으로 등재되었다.
이토 히로부미 구옥 및 별저 – 이토 히로부미 옛 주택은 단층에 초가지붕을 얹은 100㎡ 넓이의 목재 가옥으로 1854년 그 부친이 입양을 통해 사무라이의 하인이던 미즈이 다케베 소유의 이 집에 정착했다. 이 구옥은 이토의 신분이 매우 낮았음을 잘 보여준다. 그 옆의 잘 지어진 별저는 1907년 일본 정계의 거두가 된 히토 히로부미가 도쿄 중부의 에바라군 오이무라 마을에 지은 별장의 현관,대청, 별실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은 것이다.
기토 다카요시 주택 – 목조 2층 건물 카와라부키(기와로 뒤덮인 지붕)형식으로 방 12개의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기토는 조슈와 사쓰마의 연합을 성공시켜 막부타도를 가능케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후일 정한론을 반대하고 입헌정체를 주장하였다. 그 아버지 와다 마사카게는 번의였는데, 하기의 주택에는 그 시절 의사의 생활을 엿볼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타카스키 신사쿠 집 – 일본판 양요였던 시모노세키 전투를 몸소 겪었던 타카스카 신사쿠는 막부의 조슈 정벌이 시작되자 고잔지에서 막부타도의 거병을 주도하여 메이지 유신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다. 그 동상이나 회천 기념비 등은 시모노세키에서 만날 수 있다. 하기의 집에는 산유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우물과 자작의 구비가 있다.
메이린칸 (명륜관) – 상층 사무라이만 입학할 수 있었던 하기번의 번교였다. 쇼카손주쿠가 신분에 무관하게 입학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하급무사는 물론이고 중인계급도 들어갈 수 없었던 전형적인 신분제 교육기관이었다.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로 지정된 본관 건물은 오랫동안 명륜 초등학교 교사로 사용되다고 최근 박물관으로 재정비되었다.
키쿠야 가문 저택 – 조슈번의 대표적 거상인 키쿠야 가문의 집으로 에도 초기에 건축된 일본 최고 주택에 속한다. 원래 오우치 가문의 호위무사로서 야마구치에서 살고 있었지만 오우치 가문이 멸망한 후에 상인이 되었다. 1604년에 모리 데루모토가 하기번으로 오면서 그에게 현재 장소의 부지를 하사받아 집을 지었다. 상인 가문으로서는 전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측에 속하는 400년의 역사가 있다. 본채에는 넓은 객실이 있으며, 본채를 비롯한 다섯 채가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약 2000평의 부지중 3분의 1만을 공개하고 있다고 한다.
쿠보타 가문 주택 – 쿠보다 가문도 포목상으로 시작하여 2대 번주 때부터 주조업으로 전환해 큰 부를 축적한 거상이다. 구보타 가옥의 주건물은 에도 시대 후기에 지어졌는데 창고와 노동자의 숙소가 합쳐진 형태로 마주보는 기쿠야 가옥의 주 건물보다 높이가 더 높다. 메이지시대 중기까지 사용한 이 건물은 메이지 시대 명사들의 숙소로서 자주 이용되었다.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전기에 걸친 건물로서 하기성 조카마치를 대표하는 건물로 평가받는다.
조카마치 (성하마을) 구역 – 모리 데루모토가 1604년에 지은 하기성 아래 마을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성은 지금 남아있지 않으나 260년간 번성했던 하기의 구 사무라이 가옥, 낡은 흙벽과 마을의 배치 구조는 막부시대 상인이나 번의 가신들이 살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지역이다. 모리 가문에게 다양한 편의를 제공했던 부유한 상인 가문의 주택, 도쿠가와 막부나 천황가에서 온 방문객의 숙소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환상적인 전통 고산수(가레산스이) 정원을 대중에게 개방하고 있다고 한다.
하마사키 지구 – 하기성으로 들어오는 항구지대로 전통적인 마을 도로, 부지 할당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조슈번의 수도 하기가 모리 가문의 통치하에 발전하면서 항구 하마사키도 함께 커졌다. 1998년부터 항구의 역사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하마사키는 2001년에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되었다. 현재 100채가 넘는 건물이 역사 지구의 일부로 보존되고 있고 이 중 44채는 1868년 이전에 지어졌다고 한다. 상당수의 건물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어 일본의 건축사를 알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