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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차 세계코리아포럼

제25차 세계코리아포럼 (WKF)이 8월 14, 15 양일간 이스탄불 공과대학에서 개최되었다. “글로벌 대전환과 한반도의 대응”을 주제로 총 7개 세션에서 40여편의 발제와 패널, 토론이 이어졌고 마지막 행사로 국악 공연도 있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 일본 등 전세계에서 온 50여명의 전문가들이 최근 세계정세의 변화와 한반도 문제를 중심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4반세기의 기간동안 주요국 전문가들이 매년 만나 한반도 문제를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해온 이 포럼은 보기 드문 민간주도 지식인포럼의 한 사례라 할 만하다.

제1회 모임이 2000년 뉴욕에서 “남북정상회담과 동북아 신질서”를 주제로 개최되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포럼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난 남북정상회담이 자리한다. 그 이후 전개된 남북한 협력과 교류, 한반도 평화정착을 향한 전세계의 공조가 이 포럼의 성장과 발전의 조건으로 작용한 셈이다. 물론 이창주 의장의 헌신적 수고와 주위의 협력이 일차적인 동력이었지만 탈냉전기 한반도 주변상황이 이런 만남을 가능케 해준 긍정적인 배후환경의 도움도 부인할 수 없다. 참석자들의 국적과 전공, 배경이 서로 달라도 전문가들의 의사소통과 국제협력의 가능성을 공유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남북간의 협력과 화해, 평화와 통일이라는 큰 지향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포럼이 지속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지난 수년간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국제정세가 달라지며 국내의 정치지형과 국민정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북핵위기가 고조화되는 가운데 남북간 협력과 화해의 기조가 현저히 약화되었고 북한정권 및 남북협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훨씬 차가와졌다. 북한은 ‘적대적 2국가론’을 주창하고 러시아와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수립하면서 선대 이래의 남북 교류와 상호협력을 단절했다. 미중간 패권대립과 상호긴장이 커지고 한미일 공조가 기술경제 차원을 넘어 군사분야에까지 확대되면서 신냉전이란 시각도 커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전쟁의 여파가 다시금 안보불안, 이념적 대결, 민주주의 위기의식을 불러온다. 요동치는 국제정세의 충돌지점으로 한반도나 양안이 심심찮게 언급될 정도로 실질적인 전쟁 우려조차 나타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사정을 반영하듯 이번 모임에서는 학자들 사이의 견해 차이가 두드러졌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측 발제자들은 자국의 입장을 반영하여 한국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쏟아냈다. 어쩌면 신냉전은 담론의 장에서 더 먼저 형성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측 6자회담 대북특사를 지낸 조셉 디트라니는 미리 보낸 원고에서 북한의 더욱 대담해진 위협을 언급하면서 북한은 단지 한국에의 위협에 그치지 않고 동북아 지정학적 불안의 핵심임을 지적했다. 이제는 중국이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그린 포드 전 유럽의회 10선의원이자 아시아 투트랙포럼 대표는 달라지는 지정학적 상황에서 북한이 어떤 임장에 놓여있는지를 검토하면서 약자로서의 블러핑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가장 큰 견해차는 신냉전의 도래와 같은 대립상황을 야기하는 근본 원인을 보는 관점의 차이임이 확연이 드러났다. 중국과 러시아측 발제자들은 일관되게 한미일 연대가 위기의 본질이고 이에 적극 동참하는 한국의 책임을 지적했다. 이에 반해 유럽 및 한국, 인도의 학자들은 고조되는 북핵위협, 북중 및 북러 결속을 선행하는 위협으로 간주한다. 지구적 현안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진핑-푸틴 정상회담, 북한의 대러시아 무기제공과 김정은-푸틴 회담과 조약갱신 및 핵무력 강화시도 등을 보는 시선에서도 양자의 입장차는 현저하게 컸다. 숩슬라 스텐젤 전EU 의회 한반도위원장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에서 나토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은 러시아의 길에 동참하기를 꺼려하고 미국은 일본과 한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으며 유럽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을 반영하듯 신냉전 상황을 야기한 근본원인을 미국에서 찾으려는 러시아 학자들에 대해 EU의 전문가들은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중국 인민대 스인홍 교수는 현재의 한중관계가 자칫 ‘블랙홀’로 이어질 수도 있을만치 악화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야기하는 주요인이 한미일 동맹강화와 이를 최우선시하는 한국의 가치외교 탓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길림대학 장예지 교수도 한미일 협력강화가 신냉전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중국측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북중관계는 언제나 전략적이고 그런 속성은 지속적일 것이라고 보았다. 중국은 신냉전 상황을 원하지 않으며 여전히 지역내 안정과 평화를 바라고 유엔합의를 존중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중국의 국가이익을 견고히 지킬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알렉산더 제빈 박사도 현재의 위기 상황이 한미일 동맹강화에서 초래된 것이라 지적하고 러시아로서는 한러관계를 존중하지만 한국의 행동여하에 따라 보복성 조치도 나올 수 있다는 발언까지 덧붙였다.

전 북한주재 영국대사를 역임한 외교관 존 에버레드는 중국과 러시아의 현실인식의 기본구조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즉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원인은 기본적으로 북한, 러시아, 중국에 있는 것이고 한미일 협력강화는 기본적으로 방어적인 것임을 잊어선 안된다고 했다. 연세대 장동진 명예교수 역시 같은 견해를 피력하였고 인도 델리대학의 선닐 교수도 동북아 및 동남아, 서남아 등지에서 중국이 지역의 불안과 우려를 심화시키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영국 캠브리지대 라이트 교수는 북한의 위협이 심화되고 북중러 협력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미일 삼자협력구조가 어떻게 형성되고 추진되어 왔는지, 그 중요성과 함께 과정상의 여러 어려움을 정리한 발제를 했다. 임반석 교수는 중국몽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통해 중국의 전략적 지향이 제국주의 경쟁시대 열강이 보여준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지적했다. 중국은 주변 국가들과의 협력과 공존을 통해 지역평화와 발전의 공공재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변모해야 함을 주장했다.

오프닝 세션에서 문정인 교수는 현재 상황을 보는 여러 시각들을 조망하는 발제를 했다. 미중 패권대립으로 큰 변화가 진행중이지만 신냉전이란 개념보다 차가운 평화의 시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평가하면서 지금이라도 평화와 안보를 향한 새로운 처방으로 유엔협약에 기초한 다자주의를 강화해야 함을 주장했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 동북아 안보협의체, 동복아 안보정상회의, 동북아 비핵지대화 등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장동진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러한 시각이 과연 현실성이 있겠느냐고 비판적 코멘트를 했고 청중석에서 동북아비핵지대화를 중국이 받아들이겠느냐는 질문도 제기되었다. 오랫동안 한국의 대외정책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현실정치에 깊이 관여해온 학자의 발제로서는 너무 막연하고 이상적인 내용이란 느낌을 피하기 어려웠다.

25년을 이어온 이 포럼이 더이상 지속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한 현실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뒤이은 서울-평양의 교류확대, 북핵해결을 위한 국제공조가 이루어지던 시기의 동력이 현저이 약화되면서 그 계기로 출범한 포럼의 역동성 역시 약화될 것은 예상되는 바였다. 하지만 어려워진 재정여건과 세대 교체 등으로 이 포럼의 지속여부가 불투명해진 모양이다. 민간 분야에서 이만큼 광범위한 국제적 네트워크가 지속되어온 다자적 학술장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상황이 아쉽지 않을 수 없다. 변화한 시대상황에 걸맞는 또다른 형태의 플랫폼이 새롭게 출현하리라 믿으면서도 당분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대화와 이해보다 비난과 논쟁이 심화될 것을 예감하는 듯해서 염려가 앞선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국악공연에서의 퉁소 소리가 더욱 애잔하게 내 마음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