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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교육과 제도지체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장병탁 서울대 AI 연구원장 등과 함께 저술한 책자 [AI 시대 대학교육의 미래] (나남출판) 가 출간되었다. 한림대 도헌학술원에서 기획한 도헌학술총서 제1권으로 대부분의 필자들은 1년여 전에 개최되었던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한 분들이다. 나는 그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책을 기획하면서 관련 주제의 글을 청탁받아 추가로 참여하게 되었다.

필자들 대부분 유수한 대학이나 관련 기관의 운영을 책임진 분들인데다 인공지능이나 과학기술 분야의 학자들이어서 책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 나도 광주과학기술원에 초빙석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니 직함만으로는 어색하지 않지만 그동안 내가 연구하고 가르쳐온 주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전의 나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내가 이런 주제의 책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을 생뚱맞게 여길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십여년 전부터 나는 테크놀로지가 핵심적인 변수가 된 시대가 도래했다고 느꼈고 그런 맥락에서 관련 연구들을 기획하기도 하고 [커넥트파워]라는 책을 공저하기도 했기에 내 자신으로는 전혀 엉뚱한 관심확장은 아니다.

한림대 측으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글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이유도 그런 저간의 변화 때문이었다. 사회학회장을 하면서 가졌던 여러 관심사들에 더하여 코로나 19 시기의 충격이 내게 미친 영향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다. 그 경험은 단지 개인의 실존적 생활경험에 한정되지 않고 불현듯 나타난 온라인 경제, 플랫폼 사회, 커넥트 파워들의 충격으로 이어졌고 광주과학기술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그런 문제의식은 더욱 깊어졌다. 이제 다시 이 모든 변화를 아우르면서 인공지능의 쓰나미가 들이닥치고 있어 커즈화일이 말한 ‘특이점이 오고 있다’는 주장을 새삼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이런 변화가 일상, 경제, 문화, 종교 등 각 영역에 두루 나타나지만 특히 교육현장과 학교라는 제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한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내가 계속 떠올리는 개념이 ‘제도지체’인데 이 첨단의 기술변화를 제도와 관성이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각종 문제들을 말한다. 챗 GPT 3.5로부터 시작된 LLM 기반 인공지능의 급성장은 조만간 AGI라 불리는 일반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확대시키고 있다. 한국의 고도성정기를 뒷받침해온 강력한 교육시스템이 겪고 있는 제도지체의 여러 측면들을 점검하고 대비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절실한 우리 사회의 숙제다.

나는 네가지 차원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답찾기식 교육과 분과학주의에 갇힌 연구방식을 넘어서는 것, 그래서 창의적 발상과 융복합적 소통이 교육과 연구방식에 상시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캠퍼스와 지역사회가 단절되어 있는 구조를 넘어 산업계, 지방정부,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과 결합되는 지식생태계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고 젊은 세대의 청년들이 새로운 꿈을 꾸고 미래를 향해 비상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대학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쉽지 않은 목표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 할 수도 있겠다.

글을 쓰면서 늘 느끼는 것지만 분석하기보다 제안하기가 어렵고, 제안하기보다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제안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과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안하고 주장해야 하는 것은 해야 한다. 제도지체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상당한 혁신이 불가피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에게 권유하는 제안이기 이전에 내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한 까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