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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이번 회의에서 독일측 참석자들이 자주 언급한 것이 ‘사회’와 ‘인간’이었다. 경제적인 문제가 논의될 때도, 정치적인 쟁점을 다룰 때도, 기억과 문화를 언급할 때도 사회와 개인을 소환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것이 현재 독일문화 전반적인 특징인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통일 이후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는 구동독지역 지식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화두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귄터 총장은 분단시절의 지역별 특허출원을 검토한 후 발명정신은 체제와 무관하다는 결론을 맺었다. 사회주의 집단경제 하에서는 창의력과 기업가정신이 발휘되기 어렵다는 통설에 대한 반론처럼 들렸다. 김병연 교수가 북한의 경제발전모델을 설명하면서 시장화를 일종의 필수적 전제로 강조한 것과도 결이 다른 발제였다. 귄터는 어떤 체제 하에서도 혁신과 창의의 아이디어는 출현할 수 있고 그것이 실현되는 영역이 있게 마련인 바, 전환과정에서 그 경험을 해체하거나 무화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정치적 판단과 경제적 타산 하에서는 종종 무시당했던 동독 하에서의 긍정적 자산들을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으로 읽혀졌다.

동서독간 소포에 담겼던 문화적 함의를 발제한 콘스탄체 조흐 역시 ‘독재사회에서 일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이런 영역을 주목했다. 그 일상은 일방적인 억압과 감시, 수동적인 행동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의 기쁨과 애환을 담고 있는 삶의 현장이며 다양한 정서들이 축적되던 영역이었다. 동서독 사이에 오고간 소포는 단순히 동서독 교류, 경제적 효과, 정치적 함의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소포상자를 대하는 태도와 감정도 세대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통일 후 소포상자에 담겼던 우호적인 애틋한 기억이 변질되기도 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작년 베를린에서 들었던 징치교육센터장의 발제가 떠올랐다. 독재에 대한 해석은 그 독재 하에서 느꼈던 평안함과 익숙함까지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제대로 된 독재경험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 — 독재와 억압도 사회와 개인의 삶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라 할 만했다.

미하일 마르텐은 공식 기억에서 놓치기 쉬운 개인적인 차원을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통일 이후에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기념할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인데 그는 누구든 과거의 독점은 곤란하다고 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보면 기억의 충돌과 대립이 오히려 정상적인 것이다. 국가가 과거를 서술하는 주체가 되어서도 곤란하며 개인의 삶, 각각의 생애사 속에 담긴 다양한 경험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특정한 경험과 기억에 특권을 부여하지 않고 모든 기억과 경험을 민주적으로 대하고 상호소통의 기회를 허용하는 것, 기억을 영구적이고 살아있는 과정으로 되살리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기억의 공간이 그 어느 곳보다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북한과의 교류 협력 경험보다 단절과 위험이 심화된 오늘 한국에서 북한 및 통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은 훨씬 단순해지고 공식화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체제가 동독에 비할 수 없을만큼 전체주의적이어서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다양성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탈북자와 북한인권문제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다. 현재 추진되는 국립북한인권센터가 북한, 인권, 남북관계를 어떻게 서술하고 이미지화 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최근 김정은 주도하의 북한동향과 악화되는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을 신경쓸 여지는 현저히 좁아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북한인권을 공식화, 평면화, 정치화하지 않고 그 다양한 차원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이 찾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먼저온 통일’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정부가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관리하는 탈북자에 대한 정책적 대응도 그들의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생활사를 놓치지 않으려는 섬세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탈북자가 독특한 경험을 공유한 집단임은 분명하고 이들에게 한국의 통일이라는 큰 과제와 연결시키려는 스토리텔링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실제로 ‘먼저온 통일’이라는 말에 자부심을 느끼는 탈북자도 있고 그런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포용성이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탈북자라는 범주로 자신의 삶이 규정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개개인이 탈북과 정착 과정에서 경험하고 갖게된 독특한 삶의 이야기를 다면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노력은 지금보다 더 섬세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서독의 발명으로서의 동독] 처럼 한국의 발명품으로서의 탈북자 서사가 되지 않도록 그들의 다면적 삶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한 관계, 통일과 평화의 주제가 언제나 정치적 의제로 다루어지는 우리 사회에서는 김병연 교수가 보여주는 경제적 접근조차 신선하고 새롭게 여겨진다. 이런 한국적 현실에서 징치와 경제를 넘어서 사회와 개인을 강조하는 시각은 힘을 얻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일상현실조차 정치와 경제가 중심을 이루는 현실에서 시민들의 사회적 공간과 개인의 독특한 경험을 중시하는 것은 애매하고 불투명한 태도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차원을 얼마나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느냐가 정책의 고급성을 좌우하고 선진국으로의 이행을 보장할 것은 분명하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북정책이 요동치는 우리의 현실도 사회와 인간에 대한 깊은 숙고가 부재한 탓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