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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차 한독통일자문회의

13차 한독통일자문회의가 부산 해운대에서 이틀간 개최되었다. 독일에선 카스텐 슈나이더 연방 총리실 정무차관을 대표로 한 이십여명이 참석했고 한국에선 문승현 통일부차관을 대표로 한 이십여명이 발표와 토론에 참여했다. 독일측 참가자 중에는 슈납파우프, 콘첸도르프 등 여러 차례 만난 분도 있지만 새로운 얼굴도 많았다. 지난번 베를린 회의에서도 뵈었던 쉬뢰더 총리, 텔칙 차관 등은 이제 먼길 여행이 어려워졌다 한다. 한국측에선 통일부의 2030 청년자문단이 자리를 함께 해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양국 대표의 기조발제는 현재 두 나라가 처한 상황을 잘 짚어주었다. 문승현 차관은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가 최근 북한의 전략적 입장변경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설명했다. 향후 북한의 도발이 심화되고 한반도 군사긴장이 고조될 것을 예상하면서 북한의 의도가 미국신정부와의 핵담판, 한미일 안보협력구도에 대한 반발 등으로 보인다는 판단도 덧붙였다. 한국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 원칙에 입각하여 무력도발을 불허하고 대화와 외교로 해결을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북한주민 인권개선과 탈북민 적극 포용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란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통일담론의 확산을 주요한 과제로 제시하면서 “자유는 통일의 전제조건‘이라는 콜 수상의 말, 그리고 ’신의 옷자락을 붙드는 정치력‘을 강조했다.

슈나이더 차관은 최근의 동향과 조사자료를 근거로 현재 독일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특히 구동독 지역에서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인종주의적 정서와 에너지 문제에 우려를 언급했다. 구조적 차별은 뚜렷하지 않지만 자기 지역이 뒤쳐져 있다는 느낌, 지역이탈이나 지위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동독지역에 여전하다는 점, 그래서 통일에 대한 동부지역의 평가가 10년전보다 훨씬 부정적이 되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포퓰리즘 정치의 사회문화적 토양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면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강화로 ‘사회적 결속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통일과 통합을 위해 최근 두 나라에서 추진되고 있는 새로운 활동을 확인하고 공유한 것도 뜻깊었다. 독일은 재작년부터 사통당독재희생자 특임관 제도를 두고 희생자들에 대한 총체적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또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평화혁명과 유럽통합의 전환을 향한 미래센터’를 건립해가는 중이라 한다. 통일 30년이 지났지만 역사적 트라우마가 남긴 긴 상처를 해소하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런 결정들을 가능케 했다고 한다. 과거가 아닌 미래, 독일만 아닌 유럽, 공공 역사만 아닌 개인의 생애사를 포용하려는 새롭고도 과감한 시도가 놀라왔다. 한국의 새 정부 출범 이후 시작된 국립북한인권센터 건립계획과 북한인권문제를 국제화하기 위한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의 전방위적 활동, 그리고 최근 탈북자 동향에 대한 정책적 노력을 들은 것도 좋은 공부였다.

2024년 한국과 독일 모두 만만치 않은 도전을 받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 표방과 군사적 위협이 급증하고 지정학적 환경도 크게 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기본법 75주년, 평화혁명 35주년을 기념하는 독일은 점증하는 극우세력, 난민문제와 에너지 위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난관의 성격이 다르고 여건도 같지 않지만 서로의 경험이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런 지식공유의 노력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번 회의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환송만찬이 열린 누리마루에서 APEC 정상회의 때의 사진들을 보면서 20년이 넘은 지금, 또 이 회의가 13차를 거듭해 오면서, 우리의 시야와 정책적 역량은 얼마나 글로벌해졌고 깊어졌을까 자문해 본다. 올 해 이 회의에서 느낀 바들을 다섯 쟁점으로 정리하면서 이틀간의 소회를 내 나름의 질문과 결부시켜 기록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