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리포트를 읽다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는 어휘가 달라지고 있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몇 년 전 N포세대라는 말이 많이 쓰였는데 언젠가부터 소확행이나 욜로라는 말이 강조되었고 올해엔 유난히 갓생이란 말이 곳곳에 등장한다. 취업, 연애, 결혼, 주택 등을 포기해야 한다는 N포론은 미래에의 희망이 사라진 세대의 좌절감을 표상한다. 소확행이란 말은 대단한 목표의 추구 대신 소소한 즐거움, 일상의 작은 만족을 추구하려는 지향을 가리킨다. N포에서 소확행으로의 변화가 유의미한 새로운 움직임인지 아니면 현실도피적 자기위안에 그치는 것일지 불분명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2023년에 처음 접한 갓생이란 말은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지닌다. 신이라는 뜻의 ‘갓(God)’과 인생의 ‘생(生)’을 합친 갓생은 신과 같은 삶, 모범이 되는 부지런한 생활을 뜻하는 말이라 한다. ‘갓생 살기’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매일 30분씩 걷기, 하루에 영어 단어 10개 외우기 등과 같은 소소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열심히 이루어 가는 삶을 가리킨다. 거창한 목표를 향한 경쟁은 아니지만 자기성장과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적극적 계획, 예컨대 다이어트, 영어회화, 음악활동, 춤배우기 같은 것이 갓생의 내용을 채운다. “갓생 가자!”, “겨울방학 때 정말 갓생 살 거예요.” 같은 표현에서 이런 경쾌한 부지런함을 느낄 수 있다. 양극화 현상에 분노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힘들어하던 이전의 N포론이나 현실도피적 소확행론에 비해 건강한 적극성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갓생이 젊은 세대의 정서가 새로운 형태로 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일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갓생이란 말을 쓰고 ‘갓생 가자’고 외치는 그 태도 속에 이전의 모습, 익숙한 태도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대론에 더이상 갇히고 싶지 않은 건강한 자신감이 갓생이란 말 속에 담겨있지만, N포세대의 불안과 좌절을 어쩔 수 없는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체념의 그림자도 없지 않다. 비트코인 광풍처럼 일확천금을 노리는 로또 심리가 스며있다는 평가도 있다. 한마디로 갓생은 적극적인 주체성을 반영하는 말이면서도 체념적 현실수용의 또다른 표현일 수 있다.
어쨋든 N포와 소확행과 다른 새로운 말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N포라는 말에 부수되는 세대적 우울감을 부정하고, 소확행이라는 수입어에 담긴 수동적 자기위안도 벗어나 개성적인 주체성과 적극적 생활태도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부분적이나마 확인되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 교수가 소확행 대신 대불행 (크고 불확실한 행복)을 추구하자고 주장한 적이 있지만 젊은층에게 불확실함을 직면하라는 권유가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개인별로 적절한 새 화두를 찾아가는 저 흐름 속에 담겨있는 절박함, 상상력, 수용과 혁신의 발상을 포괄적으로 파악하고 격려하는 것이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갓생이 2024년에는 어떤 의미를 지니며 젊은세대의 공감을 불러올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