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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럽의 추락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김구림 작품을 둘러보다가 문득 같은 공간에서 몇 달전 임옥상의 ‘지금 흔들리는 땅’ 전을 관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적인 작가였지만 그 틀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와 주제로 혁신적인 작품활동을 열정적으로 해 온 분이다. 특히 흙과 쇠를 주요 소재로 활용한 대형 작품들은 캔버스와 전시관을 넘어서 넓은 도시와 현장, 광장과 건물 들에 설치되어 왔고 그 혁신적인 방식과 선명한 주제를 좋아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전시에서도 흙으로 만든 캔버스에 그린 홍매, 백매 등의 매화 연작과 대한민국헌법 전문을 쇠판 위에 큰 산 형상으로 써내린 대작은 관람객의 눈길을 끌기 족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촛불시위 현장을 형상화한 그의 작품이 청와대에 걸리기도 해서 언론의 관심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자신의 주장과 논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다양한 계층의 전문가들과 교유관계를 넓히려 노력한 탓에 유명 셀럽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인 태도와 SNS를 통한 적극적인 소통노력이 더해져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누렸다. 그의 전시가 있는 화랑에서는 언제나 작가와 사진을 함께 찍으려는 수많은 관람객들, 사인을 받으려 줄을 선 젊은이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국내외의 많은 관객들로부터 환호를 받은 지난 전시회를 옆에서 보면서 ‘셀럽’이란 존재가 저런 것이구나를 실감하기도 했다. 학자나 작가들 가운데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려하고 자기 작업공간에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임 화백은 누구보다도 소통과 만남을 강조하고 또 즐기는 분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달만에 너무도 상황이 달라졌다. 과거 그가 데리고 있던 연구원에게 잘못된 행동을 했고 결국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충격파가 문자 그대로 일파만파다. 작가 개인의 이미지와 평판이 추락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설치되어 있던 곳곳의 작품들이 철거되었고 여러 활동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줄을 잇는다. 성추행이라는 사안 자체가 개인적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쉽지 않다. 작가로서 너무 많은 대중적 사랑과 인기를 누려온데다 어느새 정치적 도덕적 영향력까지 지니게 된 그간의 셀렵화가 이런 위험을 배태한 주요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고보니 작년 수많은 관람객들의 환호와 존경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모습을 보면서 저 과도한 인기가 가져올 위험은 없을까 일말의 불안감이 잠시 스쳤던 것 같기도 하다.

셀럽의 추락은 낯설거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고 21세기에 더욱 보편화되는 일이기도 하다. 셀럽이 실체가 불확실한 평판에 의존하는 까닭에 인기가 높아질수록 잠재적 위험도 따라 커지게 마련이다. 오늘날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대 공유되는 정보때문에 인기가 요동치는 속도와 폭도 상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뉴파워]라는 책을 쓴 하이먼즈는 오늘날 새로운 권력이 대두하는 증거로 오랜 기간 권위를 행사해온 인물들이 인터넷의 해시테그 비판과 대중의 인기 철회로 하루 아침에 몰락하는 사례들을 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성추행과 관련한 사안의 휘발성이 특히 커서 권위의 추락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한국에서도 하루 아침에 평생 쌓아온 권위와 영향력을 일순간 잃고 개인과 가족 모두의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셀럽의 몰락은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은 충격임이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이자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사건일 터이다. 하지만 셀럽으로서의 인기에서 비롯된 거품을 제거하고 단독자로서 다시 치열한 자신을 대면하는 실존적 전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불행과 불운으로 좌절하면서도 그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는 갱생과 회생의 역량을 보여준 사례도 적지 않다. 창조적인 작업에 종사하는 예술인의 경우는 고통과 단절, 비난과 자학, 성찰과 재생을 통해 예술혼이 새롭게 강화되는 전환도 가능할터이다. 셀럽의 부상과 몰락을 바라보며 내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인기에의 충동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