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서울대 화목회 정기전시회가 10월에 열리는데 최치원의 글을 그 대상으로 정했다 한다. 나름 이 전시를 위해 방학 중 틈틈히 굴원의 어부사를 써보곤 했는데 뒤늦게 내용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덕분에 내가 쓸 글을 정하는 과정에서 최치원의 글들을 훑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된다. 그가 남긴 글이 꽤 많은데 과연 한국 명문장가의 우두머리로 삼을 만하다.
처음 내가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이었다. 전문은 전하지 않으나 그 일부분이 남아있는데 한국의 고유한 사상적 특성을 밝힌 뜻깊은 내용이다. “國有玄妙之道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即孝於家 出即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그 가르침의 근원은 선사에 자세한 바, 세 종교를 포함하여 뭇 생명을 접하여 교화하는 것이다. 집에 들어와선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나라 사구 (공자)의 뜻과 같고,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나라 주하자(노자)의 종지와 같으며, 악한 일을 금하고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 (석가모니)의 교화와 같은 것이다) – 3교통합의 사상적 특징을 이처럼 명료하게 밝힌 글이 신라시대에 쓰여졌다는 것이 새삼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먼저 택한 분이 있어 나는 ‘등윤주자화사상방’이란 시를 쓰기로 마음을 달리 정했다. 최치원이 당나라 관직에 있을 때 방문한 윤주 자화사에서 쓴 시로 대표적인 명시로 종종 언급되던 글이다. “登臨暫隔路岐塵 吟想興亡恨益新 / 畫角聲中朝暮浪 靑山影裏古今人 / 霜摧玉樹花無主 風暖金陵草自春/ 賴有謝家餘境在 長敎詩客爽精神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대략 뜻을 옮기면 “산에 올라 잠시 속세를 떠나서 흥망을 생각하니 한이 더욱 새롭다/ 뿔피리 소리에 아침저녁 일렁이던 물결과 푸른 산 그림자 속에 담긴 고금의 사람들 생각한다/ 서리내린 나무와 꽃 주인은 간데없고 따뜻한 바람 금릉의 풀만 봄을 알리는데/ 사조가 남은 집터 둘러보니 그 오랜 가르침 시인의 정신을 맑게 하네)
하동군 화개면의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화개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약 4.2km의 계곡길은 임진왜란 때 고승 서산대사가 지리산에 머물며 걸었던 길이자 신라시대 최치원이 지리산에 입산하여 거닌 길로 알려져 있다. 서산대사는 최치원의 글과 사상을 새롭게 부각시킨 인물인데 쌍계사 중창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옛날에 유불(儒佛)에 정통하고 내외를 통달한 자는 공명을 헌 신짝처럼 벗어 던지고 하나의 표주박으로 가난을 잊었다. 천지와 더불어 나란히 서고, 신명과 더불어 동행하면서 무위진인(無位眞人)과 함께 노닐고, 시종(始終)이 없는 자와 벗을 삼았다. 그는 자신이 걱정할 것을 걱정하고, 자신이 즐길 것을 즐겼으니, 어느 겨를에 유교의 입장에서 불교를 비난하고 불교의 입장에서 유교를 비난하면서 서로 원수처럼 배척하였겠는가. 우리나라의 최고운(崔孤雲)과 진감(眞鑑)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고운은 유자(儒者)이고, 진감은 불자(佛者)이다.” 저런 고수들은 벽을 허물고 화통하는데 역사는 늘 편당을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로 시끄러워지곤 한다. 서산대사가 평한 저런 마음을 담아 작품을 써 보려 하는데 붓을 잡은 손이 자꾸 흔들린다. 무위로 쓰는 정성을 더 배워야 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