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상쾌한 삶 무거운 숙제

동네 사회학자를 자처하면서 새로운 삶의 형식을 실천하고 있는 조형근 박사가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연대사회를 갈구하는 어느 지식인의 자기성찰”이라는 부제 그대로 조박사는 진지한 사색과 성실한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생각들을 이 책에 담았다. 글의 형식은 딱딱한 논문투가 아닌 에세이 같지만 담긴 내용의 깊이와 폭은 매우 깊고 넓다. “계시가 아니라 고백이라 좋고 고뇌하되 중심을 잃지 않아 좋다”는 한 평자의 지적에 공감이 간다.

조박사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된 계기의 하나로 ‘그럭저럭 살기가 불가능해’진 상황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세월호 사건을 들었지만 글의 곳곳에서 그의 이런 지적 성실함은 그 이전부터 지속된 것이었음을 확인한다. 그는 세상을 비판하는 글은 동시에 자신을 성찰하는 고백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실제 그의 글은 자신의 경험에서 시대를 읽고 개인적 한계에서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섬세함으로 가득차있다.

저자는 자신이 동네 사회학자임을 자처한다. 실제로 신문지상의 저자 소개에 다른 수식어 없는 사회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 중 하나다.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동네책방과 크고작은 문화활동에 참여하면서 그의 마음은 편안해지고 시선은 더욱 예리해졌다.

더구나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살면서 동네라는 작은 현장,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발딛고 있는 생동감이 뚜렷하다. 1988년 사당동 철거촌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는 조박사의 글은 그의 말대로 ‘찾아온 길이면서 돌아온 길’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진솔함이야말로 변함없는 글과 생각의 힘이 아닐까. 조형근 박사의 책이 던진 화두 앞에 반가움과 무거움을 함께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