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묘한 9월

9월 개학으로 4학기 만에 대면강의가 시작된다. 여전히 감염자 숫자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경각심이나 조심스러움은 많이 사라졌다. 식당이나 커피숍은 이미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 모습이고 학교 캠퍼스도 예전같은 활기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개인적으로도 코로나로부터 벗어나는 날이어서 반갑다. 국민비서 구삐의 이름으로 귀하는 격리대상자이며… 위반하면 처벌될 수 있으며… 어려움이 있으면 아래 번호로 연락하십시요라는 영혼없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기분이 떠오른다. 마침 날씨도 선선하고 마당의 대추나무와 감나무 잎새들에는 옅은 주황색이 비치기도 해서 신선한 가을, 해방감을 느껴도 되리란 기대감이 차오른다.

한 주일 전 좌담을 위해 몇 시간 대화와 식사를 함께 했던 사람 중 한 분이 감염되었는데 며칠 내로 참석자 3명 전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금까지 잘 피해왔는데 결국… 하는 안타까움도 없지 않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인 담에야 언젠가는 올 일이 이제 왔다는 담담함이 더 컸다. 둘러보면 드러내지 않으면서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자발적 격리라 하지만 좁은 자기공간에 갇혀있어야 하는 생활이 쉬울 리는 없다. 혼자 있을 공간의 경계선을 치면서 ‘위리안치’라는 옛 유배형을 떠올렸다. 사람의 이동을 제한하고 만남을 통제하는 것이 태형이나 장형보다 훨씬 가혹한 형벌임을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이다.

21세기 유배형이 있다면 집주위의 가시울타리를 치는 대신 스마트폰을 압수하거나 전원을 차단하는 것이 되었을 듯 싶다. 격리기간 중 유투브가 친절한 방문객 노릇을 톡톡히 했으니 말이다. 마음에 드는 동영상은 마치 나를 찾아 먼길을 온 벗과 같이 반가왔다. 온라인 상에서 이런 저런 강연과 정보들을 접하면서 나는 위리안치 상황에서도 빈객을 맞아 담소할 수 있었던 조선조의 선비를 떠올렸다. 간혹 내 상태를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추천동영상을 접할 때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빅브라더를 만나는 놀라움에 흠칫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공간의 격리감을 뛰어넘고 정서적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도 전형적인 포노사피엔스로 변모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격리 해제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 돌이켜보니 잠시나마 강제적으로라도 휴식하게 된 의미있는 기간이었다. 약간의 열과 기침이 동반되긴 했으나 크게 어려움 없이 회복된 것 매우 감사한 일이다. GIST 부임 후 네 학기만에 처음으로 대면수업이 시작되었는데 그 첫 주 수업부터 휴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못내 아쉽다. 하지만 학생들은 언제나 그러하듯 휴강을 환영했으리라. 아! 묘한 느낌으로 맞이하는 9월이다.